외국희곡

앨리스 거스텐버그 '오버톤즈'

clint 2026. 7. 24. 05:15

 

 

고급스러운 거실에 해리엇이 앉아 있다. 그녀는 옛 친구 마거릿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때 그녀의 내면 자아인 헤티가 나타나 해리엇을 충동질한다. 헤티는 마거릿이 오면 
우리가 얼마나 부유하고 행복한지 보여주어 그녀를 기죽이자고 해리엇을 조종한다.
마거릿이 온다. 그녀의 뒤에는 굶주림과 욕망의 내면 자아 매기가 그림자처럼 붙어있다.
외면 자아들이 차를 마시는 동안, 뒤에 있던 헤티와 매기는 서로에게 으르렁거린다.
매기는 해리엇의 집에 있는 값비싼 가구와 빵을 보며 격렬한 부러움과 시장함을 드러낸다.
헤티는 마거릿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그녀의 비참한 현실을 꼬집으며 존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니 빼앗아 오겠다고 선전포고한다.
마거릿이 해리엇의 집에 온 진짜 목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매기는 마거릿에게 "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해! 남편 그림을 팔아달라고 해!"라며 등 떠민다. 
반면 헤티는 해리엇에게 "존을 다시 만날 기회야. 존에게 네 초상화를 그리게 해"라고 
속삭인다. 이 과정에서 네 명의 배우가 얽히며 기괴한 대화가 이어진다. 두 외면 자아가 
차를 마시며 미소를 짓는 순간에도, 내면의 자아들은 무대 위에서 서로를 밀고 삿대질을 
하며 거친 난투극(심리전)을 벌인다. 결국 거래(?)가 성사된다. 해리엇은 존에게 거액의 
초상화 의뢰비를 주기로 하고, 마거릿은 그 돈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내면 자아들의 본심이 폭발한다. 매기는 해리엇을 향해 
"멍청하고 돈만 많은 년!"이라고 침을 뱉으며 퇴장한다. 헤티는 남겨진 거실에서 
"위선자 같은 가난뱅이 년!"이라고 소리치며 분노한다. 해리엇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울을 보며 매끄럽게 옷매새를 다듬고, 내면의 헤티는 그 옆에서 부르르 떨며 증오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모습으로 끝난다..

 

 

 

 

교양 있는 여성들이 대화할 때, 원시적인 자아들은 여성들에게 부과된 사회적 제약에 대해 

모욕과 분노를 던진다. 여자들이 항상 궁지에 몰린 세상에 누가 이 기지싸움에서 이길까? 

앨리스 거스텐버그의 이 작품은 해리엇과 마가렛의 속마음을 등장시켜  평범한 스토리를 

심도있게, 재미있게 만들어낸다.  

20세기 초 상류 여성들이 지켜야 했던 사회적 관습, 체면, 에티켓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드러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2명의 인물을 4명의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교양 있는 자아'와 가슴속 깊은 욕망을 드러내는 '원시적인 자아
(무의식)'가 동시에 무대에 등장하여 프로이트가 정립한 '자아(Ego)'와 '원초아(Id)'의 

갈등을 연극적 장치로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관객은 인물들이 말하는 '가짜 

대화'와 마음속 '진짜 생각'을 동시에 들으며 인간 소외와 분열을 목격하게 된다.
제목 'Overtones(배음)'은 음악에서 하나의 음을 낼 때 함께 울리는 미세 진동(배음)

처럼, 인간이 겉으로 내뱉는 언어 뒤에는 항상 숨겨진 본능과 욕망의 오버톤즈가 

흐르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 작품의 특징은 표현주의의 형식으로 여자의 심리를 파헤친 데에 있다.

'겉치레'의 여자와 본심의 여자는 같은 인물의 표면과 이면이다. 표면이 즉 겉치레

이쪽은 거의 감정을 표면에 나타내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연기자로서는 사교적인

번지르르한 말로서 일관한다. 연기의 면으로 본다면 표면적이라 재미없는 점도 있다. 

그러나 이면의 인물이 바로 곁에 있어서 지껄이는 말에 곧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반응을 마음속으로 꾹 누르고 표면의 사교적인 말을 해야 하니 어렵다고 하면 

본심보다도 겉치레쪽이 더 어렵다. ‘본심’은 단순하다. 화가 나면 맘대로 화풀이하고

과자가 나오면 멋대로 먹으려고 한다. 그러기에 연기자의 나이를 따지면 겉치레쪽이

약간 나이가 위인 사람이 알맞을 것이다. 연출상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 '본심'

어떻게 무대 위에서 움직이게 하나? 하는 것이다. 처음서부터 끝까지 겉치레'에 붙어

다니는 것은 재미가 적고 그녀들의 독자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본심의 소리는 전혀 외부에는 들리지 않고 '겉치레'의 대화만이 계속되는 것인데

이런 심리의 소리가 끼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연극의 템포가 느려진다. 

 

 

 

1915년 11월 8일 뉴욕의 Bandbox Theatre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제작 당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미국을 처음 방문했으며,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켰다. 이 연극은 유진 오닐 (Eugene O'Neill)을 비롯한 많은 후기 극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유진 오닐 (Eugene O'Neill)은 그의 희곡 Strange Interlude(기묘한 막간극)에서 비슷한 기술을 사용했다. 이 작품은 단막의 소품이지만 오늘날에도 극장과 대학에서 여전히 공연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프로이트 이론이 잘 반영된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다.

 

Alice Gersten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