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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 '우리들의 초상'

신중현 이 흐른다 한 광대가 책 한권을 옆에 끼고 걷는다. 걸음에서 봄바람이 느껴진다. 계속 걷는다. 하지만 제자리 걸음이다 어느 덧 여름이 되었다. 더위에 지친 듯한 걸음이다. 책 겉장이 파랑에서 빨강색으로 바뀌었다. 조명도 강렬하다. 계속 걷는다. 하지만 제자리 걸음이다 어느 덧 가을이 되었다. 가을바람이 부는 듯 옷깃을 여민다. 여전히 음악은 계속된다. 아름다운 강산이다. 계속 걷는다. 하지만 제자리 걸음이다 어느덧 겨울이다.  어두운 모습이다. 지친 모습이다. 커다란 상자위에 광대가 엉거주춤 앉는다.  무릎 위에 책을 펼쳐 놓고 본다. 그러나 백지다. 음악이 서서히 줄어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커다란 책 한권 옆에 끼고  걷고 있는 광대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보는 ..

한국희곡 2024.11.09

이철 '산재일기'

연극은 두 개의 숫자로부터 시작된다. '2,080/122,713' 이 숫자는 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와 재해자 수다.  통계는 산업재해를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저마다 사연을 지닌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작가는 산업재해를 주제로 17명의 인물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들의 말이 쌓일수록 산업재해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외피를 벗고,  저마다 제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하나하나가 겪어낸 사건으로 드러난다.  연극은 우리의 삶과 노동이 어떻게 재해와 연결되어 있는지 질문하며,  몸을 잃은 사건이 몸으로 겪어낸 사건임을 증명한다. 겹겹의 말, 겹겹의 만남 - 김소연 (연극평론)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후면을 꽉 채우고 있는 이름들이 보인다. 이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

한국희곡 2024.11.09

장진 '택시 드리벌'

거대한 도시 속에서 개인 택시를 몰며 사는 서른 아홉의 노총각 장덕배. 그는 컵라면을 살까, 봉지라면을 살까로 고민하는, 자물쇠를 위부터 열까, 아래부터 열까로 고민하는 소심한 남자이다. 새벽부터 속을 빡빡 긁어대는 동네 아줌마, 바쁜 출근 시간 떼거리로 올라타 택시 안을 점거해 버리곤 "공항"을 외쳐대며 나몰라라 쉴새없이 지껄여대는 여자 아이들, 목이 제대로 붙어있는 지도 모를 정도로 잔뜩 쫄게 만드는 깡패들, 술에 절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밤손님들 속에서 짜증마저 내성이 되어버린 채 하루하루에 지쳐 꿈을 잃고 사는 소시민인 것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몽상에 빠진다. 누군지 모를 아가씨가 두고 내린 핸드백을 놓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달콤한 꿈을 꾸는 것이다. 그 상상은 회상과 맞물리며 뭉게뭉..

한국희곡 2024.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