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남과 민두상은 50대 동갑내기이다. 고등학교 때 전학온 민두상의 기선을
잡겠다고 학교 건달 짱이었던 안광남이 싸움을 걸었다가 처절하게 지고
(그 사실을 비밀로 지켜준 의리를 보고) 친구가 되었다. 둘 다 결혼에 실패했다.
안광남은 대학 2년 후배인 고이랑과 결혼했다가 헤어졌고,
민두상은 독신으로 있다가 은행 본부장 시절 여비서로 갓 입사한 신세대 여성과
결혼했다가 헤어졌다. 둘은 사업에도 실패했다. 민두상은 안광남의 재정보증을 섰다가
망했고, 안광남은 연쇄부도로 자신의 회사는 물론 주위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망하게 되어 두 사람에게 엄청난 부채가 빚으로 남았다.
하루에 5천 원씩 모아서 그 엄청난 빚을 갚겠노라 다짐하지만 맨주먹으로 바위치기이다.
안광남은 크게 자책하며 산다. 출세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잘 올라가던 민두상을
졸지에 곤두박질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오히려 민두상에게 늘 시비 걸고 투정하고
'너 혼자 빚 다 갚아라'고 소리를 지른다. 민두상은 그러거나 말거나, 늘 안광남을 다독인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었어도 진정한 친구와 함께 있다는 든든함으로 그는 외롭지 않다.
안광남의 처 고이랑은 남편의 고약한 술버릇, 친구와의 신의와 우정을 더 소중히 여겨
가정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함 때문에 딸 하나를 데리고 이혼을 한다.
옥수동 산동네에서 한복집을 하면서 민두상을 통해 남편을 몰래 돕고 있는 순박한 여자다.
남편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아는 현명한 여인이기도 하다.
안광남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짐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안광남은
항상 '아름다운 거리(距離)'를 둔다. 안광남과 민두상의 형재애보다 진한 우정을 지켜보는
고이랑은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이해하며, 또 한편으로는 부러워한다.
무대는 민두상이 운영하고 있는 사진관. 낮에는 사진관이지만 밤에는 둘의 숙소가 된다.
안광남은 택시 기사이기 때문에 잠만 자러 들어온다. 그러나 그렇게 암담하기만 하던
어느 날, 그들 앞에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다. 신기루 같은 이 행운 앞에 희비가 교차되고
다시 감당하기 어려운 일상이 그들을 기다리는데…….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뗏목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행진곡은 애틋하고도 처절하다.
홀로 있으나 결코 혼자이지는 않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은 아닐는지…….
50대의 사랑과 우정,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인생 역정이 아름답게 수놓아진 드라마다.
제목 '아름다운 거리(距離)'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간격을 뜻한다. 사람은 어차피 혼자일 수밖에 없다. 결혼을 하고 의형제를 맺는다고 해서 합쳐지는 것이 아니다. 습관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자 가설일 뿐이다. 마주보든 한 곳을 같이 바라보든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둘레가 있다. 그 둘레의 부피만큼 서로 고독하게 되고 그 안개의 질량만큼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정녕코 둘이 하나일 수는 없다. 오히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조절해 가는 삶의 지혜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거리(距離)란 둘이 합일(合一) 될 수 없는 상태를 뜻함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본능적으로 둘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이를 극복해 나간다. 희생과 용서로 서로 하나를 이룩해 나간다. 정신의 승리다. 따라서 역설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운 거리(距離)'란 둘이 둘인 상태가 아니라 둘이 하나가 된 묘유(妙有)의 경지를 뜻한다. 관계의 미학(美學)이다. 나이가 들게 되면 더욱더 아름다운 거리를 느끼게 된다. 연출가 강영걸 선생과의 작업은 늘 유쾌하고 신선하다. 그는 다분히 문학적이고 그만큼 순수하다. 이번이 여섯 번째 만남이다.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불 좀 꺼 주세요', '피고지고 피고지고', '아름다운 거리(距離)' 초연, '돼지와 오토바이'를 함께 만들었다. 그 무거운 거북이 등짐을 둘이서 반씩 지고 사는 것 같다. 우리말의 묘미를 가장 절묘하게 살리는 작가 그가 만들어내는 대사 속에는 재미와 철학이 조화되어 주제를 드러내 강요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그에게서 새로운 만남의 미학(美學)을 경험한다
편안한 좌석에 좋은 자리. 깔끔한 무대. 이어 빛이 오르고 어스름이 물러가는 무대가 부스럭대기 시작한다. 푸르름이 낮게 깔린 무대로 쏠린 눈동자에 기대감은 부풀어가고… 사진관 주인 민두상과 택시 기사 안광남. 고교동창생인 이들은 둘 다 결혼에 실패한데다 부도로 빚더미를 끌어앉고 사는 신세다. 더욱이 민두상은 안광남 빚보증을 섰다 홀라당 같이 망해버린 인생이다. 그나마 민두상은 사진관 안에 간이침대를 놓고 안광남을 거둘 수 있을 뿐. 절친한 친구 사이일망정 한쪽은(민두상) 신중하고 성실한 반면 다른 한쪽은(안광남) 성질급한 허풍쟁이로 성격도 판이하다면 부대끼는 것이 당연하다. 매일매일 5천원씩을 저축해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두 친구의 모습이 풍경이,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가슴 아리게 그려진다. ‘정’, ‘사랑’, ‘우정’ 등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따스한 시선으로 보여주며, 우리의 삶을 바라볼 여유를 준 극이다. 『아름다운 거리』는 두 남자와 한 여자, 세 사람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거리’가 웃음과 울음, 위트와 애틋함과 융합되어 있는, 젖어드는 가을 감빛과 같은, 꽤 괜찮은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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