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훈구 '발목'

clint 2024. 8. 24. 11:47

 

 

 

막이 오르면 돌궐의 창세신화 중 발목 잘린 아이에게 고기를 먹여 키운 
한 늑대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산업재해를 입은 비정규직의 
상실된 몸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몽골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웃 나라에 의해 부족이 전멸되고
10살 사내아이 혼자만 발목이 잘린 채 풀밭에 버려진다.
늑대가 그 아이를 발견하여 고기를 먹이고 보살펴 아이를 살리고,
아이는 장성하여 자신을 키워준 늑대와 교합한다.
적국의 왕은 사내아이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사람을 보내 아이를 죽였다.
늑대 역시 죽임을 당할 위기에 몰리자 고창국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도망쳐 
동굴에 숨어 지내며 10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들이 자라서 결혼해 자손을 낳고 각자 하나의 성씨를 이루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아사나'다.
아사나의 후손들이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가 바로 돌궐이다.
'아사나'는 '푸른 늑대의 눈'이라는 뜻이다.

 

 


한 남자와 또 한 여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군 입대를 앞둔 젊은 청년으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화력발전소에서 일한다. 
말이 화력발전소지,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는 한국의 현실답게 
청년이 일하는 곳은 열악한 하청업체다. 
자동화된 화력발전소 설비를 관리하는 것이 이 업체의 역할이지만 
현실은 그와 동떨어져 있다. 발전소는 노후화돼 설비를 개선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하청업체가 원청에 설비를 개선해달라고 요청하기는 어려운 탓이다. 
그랬다가는 원청으로부터 재계약은 없다는 통보를 받아들기 십상이다. 
결국 하청업체는 제 직원들에게 열악한 현장에서 일하도록 요구할 밖에 없다.
 그 어느 날 문제가 일어난다. 2인 1조가 원칙이라지만 세상에 쏟아지는 수많은 
산업재해 기사처럼 현장엔 남자 혼자뿐이었던 날이었다. 
설비에 석탄이 끼여 문제가 생기고, 남자는 끼인 석탄을 밀어내려다 
제 다리가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한다. 그렇게 그는 한쪽 발목을 잃는다.


이번엔 여자 이야기다. 여자는 이삿짐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이삿짐 업체는 몽골 이주노동자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역시 
가격이다. 현장에선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않는 업체가 허다하고, 최저임금을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격한 업무를 이 가격에 소화할 내국인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극은 몽골인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한국인 업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우리 시대 어딘가에서 펼쳐질 법한 부조리한 상황을 
관객들이 대면하도록 이끈다.

 

 


발목은 화력 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발이 잘린 청년과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돌궐의 기원 신화 중 발목 잘린 아이에게 고기를 먹여 키운 한 늑대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산업재해를 입은 비정규직의 상실된 몸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강훈구


작가 강훈구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숨진 故김용균 씨의 사건을 계기로 이 작품의 집필을 시작했다. 작품은 이주 노동자의 문제와 비정규직 청년의 산업재해 등 현재진행형의 시사적 이슈들을 거론하며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현주 극본 "뮤지컬 광개토대왕"  (1) 2024.08.25
고선웅 구성 '한국인의 초상'  (1) 2024.08.25
하유상 '메아리'  (1) 2024.08.24
송천영 '세 소녀'  (1) 2024.08.23
최정 '안녕, 오아시스'  (1) 2024.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