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현재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한국인의 초상>을 공동창작이라는 신선한 방식을 통해 탄생시킨다.
배우들 스스로가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제기하며 즉흥연기로 풀어낸
이야기들을 고선웅이 한데 모아 그만의 블랙코미디로 다듬어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고선웅과 최고의 앙상블을 자랑하는 국립극단이
직접 울고 웃으며 일구어낸 우리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작품이다.
무대 위에서 발견하는 오늘날의 나, 거울 속에 비친 자화상을 만나다!
초고속 인터넷 평균 속도 1위, 학업성취도 2위, 경제경쟁력 3위.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국가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하지만 그 곳을 사는 우리의 실상이 그리 아름답진 않다.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버티어내는 경비원,
게임에 중독되어 사랑을 잃어버린 아내,
그리고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 전봇대에 포스터를 붙이는 청춘들.
거울 속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세태를 남 탓으로 돌리기에만 바쁜 오늘의 나를
무대 위로 옮겨놓아도 별반 다를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대에서는 진흙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다.
무대 위에 비쳐진 나를 보다보면 한껏 부끄럽다가도,
유쾌하게 들추어진 민낯에 그만 웃음이 터진다!
연출가 고선웅(48·)이 국립극단과 협업한 연극 '한국인의 초상'은 한바탕 난장의 소품이다. 2016 3월 12일 초연한 이 작품은 배우들의 연기와 콘셉트에서 고선웅식 과장된 멋이 엿보이지만, 예전보다는 힘을 뺐다. 그가 구성·연출을 맡되 12명의 배우들과 공동창작을 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 '한국인의 초상'을 스케치한 작품이다. 여러 미디어 보도와 배우들 또는 그들의 주변 이야기를 엮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27개의 에피소드가 만들어졌다. 배우들은 이를 바탕으로 즉흥연기를 했고, 고 연출과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선별·집필 과정을 거쳐 연극으로 완성됐다. 좀 더 객관성을 갖출 수 있게 된 이유다. 놀랍게 러닝타임 85분 안에 이 수많은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엮어내며 한국의 현재 모습을 스케치하는데 성공한다. 한국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주병 연주를 시작으로 출퇴근길 지옥철, 카톡 해고, 묻지마 범죄, 성형 권하는 사회, 대리 기사 셔틀, 마마보이, 인력시장, 도박판, 섹스리스와 원조교제, 온라인 게임에 빠진 이들 등이 메모된다.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는 블랙박스 극장인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 객석을 사면으로 깔아 관객들은 지켜본다는 느낌을 한층 더 갖게 된다. 그 중심에 마련된 무대는 마당놀이 판 같다. '24:00'가 아닌 '25:00' 등 다양한 기호와 그림 등이 적힌 그 판은 마치 사람들이 바삐 움직여야만 하는 보드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 연출의 기존작인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겹쳐지기도 한, 거대를 지향하는 수컷들에서 그것 대신 대형 바게트를 사용하는 등 그의 재기발랄함이 곳곳에 묻어나면서 극은 끝날 때쯤 한국의 단면을 그린 풍경화로 자리매김한다. 아크릴판의 다양한 문구와 공연장 곳곳의 소품은 한국의 다양한 현재를 반영하는데, 이는 에피소드들과 오버랩되서 팝아트의 콜라주처럼도 보인다. 화면에 종이, 인쇄물, 사진 따위를 오려 붙이는 콜라주처럼 다양한 요소를 난장처럼 엮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모습이 만들어진 셈이다. 다만 군대 후유증, 여성 혐오를 다룬 것으로 보이는 현상에서 남자의 시각으로만 그렸다는 생각에 일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부정적인 내용들은 계속 나열되나 이처럼 무겁지 않다. 익숙한 곡들이 분위기를 환기한다.
로큰롤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마이 보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감독 세르지오 레오네·1984) 삽입곡 '아마폴라', 동요 '반달', 영화 '길'(감독 페데리코 펠리니·1954)의 주제곡 '길'(la strada), 샤데이'의 '스무드 오퍼레이터',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등 모두 저작권료를 지불한 곡들이 그런 역을 맡는다. 특히 BGM극으로 부를 만큼 상황과 곡이 딱 들어맞는 적확한 선곡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에피소드들을 보고 '헬조선'을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태양이 점차 떠오르듯 막판에 긍정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놀라운 묘가 발휘된다. 마지막 부분, 양극화에 따른 빈민의 삶을 노래한 트레이시 채프먼의 '패스트 카'를 배경으로 심야 버스에 힘겹게 몸을 실은 이들의 내용이 나온다. 이후 새벽, "나는 다시 일어나리"라고 노래하는 한대수의 '물 좀 주소'가 울려퍼지고 극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를 적절하게 담았다. 하지만, 극 후반부에선 갑자기 작품의 색깔이 180도 바뀐다. 버스 기사인 한 노인이 ‘해(sun) 보는 거야’라고 외치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버스에 탄 승객들도 ‘해(do)보는 거야’라고 긍정의 응답을 보낸다. 보통의 연극이라면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 장면이 어색할 만도 한데, ‘과장’과 ‘비개연성’을 무기로 한 이 작품에서는 되레 ‘매력’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엔 위의 사진과 같이 모두 반가사유상이 된다.
동이 터오자 그들의 얼굴에 빛...
희열과 눈물과 회한이 가득한데 끝까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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