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6월 15일 동경.
40년대 징병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간 세 명의 젊은이 강대웅 정윤철,기철 형제.
자신들이 조선인임을 숨기려 일본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인도 일본인도 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던 중,
우연히 마쯔리 축제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던 김건우를 도와주게 된다.
치명상을 입은 김건우를 업고 도움을 받으러 간 강대웅의 애인 이토에의 땐스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김건우가 숨지고 땐스홀로 찾아온 김건우의
일본인 부인 나츠카를 통해 그들은 김건우와 이토에가 땐스 파티를 열어
동경 시청장을 암살하려 한 계획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다양한 장면이 한 공간에서 펼쳐지며, 두 가지 시점이 교차한다.
사건 당시에 있는 당사자들의 시점과 사건을 역추적하는 취조관의 시점이다.
취조관은 이질적인 두 개의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연기자인 동시에 극의 내용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찰자가 된다.
관객 또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바라보며 함께 따라가게 된다.
<청춘, 18대1>은 자연스런 극의 몰입을 이끌며 ‘청춘’에 대한
관객의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 연극이 비극이란걸 알고있어서일까. 전체적인 내용의 단면을 보여주는 시작부터 날 울컥하게했다. 정확히는 암전된 상태에서 희미하게 움직이는 두 남녀의 왈츠가 내 눈물을 자극했지만....작가와 연출의 섬세한 감정이 묻어났다.
극의 줄거리로 봤을땐 너무도 몹시도 진부한 드라마라서 다음 전개될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끝으로 갈수록 반전이라고 하기엔 좀 뭐하지만 암튼 가슴이 뻥 뚤려 먹먹하게 만든다. 독립운동이라는 주제. 어릴때부터 역사 교과서와 다양한 매체를 통한 학습으로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극을 보면서 난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순간순간의 눈물은 극이 슬퍼서가 아니라 답답함의 눈물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 시대 살고있는 사람이라면 '청춘' 이라는 이름의 무모한 독립운동보다 이토에의 입장이었을꺼란 생각. 이런 이유가 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걸까. 정확히는 방관자의 태도가 여기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쉽게쉽게 힘든길은 멀더라도 돌아서 가려는 나의 성격이 극을 보는 내내 화끈거리게 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려 했지만 결국 그건 끝없이 쏟아지는 눈물로 다시 날려버렸다. 눈물로 식혀버린 내 마음은 파도와 싸우는 작은배를 또 다시 지켜보는 방관자로 돌아왔고, 난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끼며 나의 청춘은 어느새 희미해져 갔음을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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