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마갈리 무젤 '쉬지 스톨크'

clint 2024. 6. 24. 11:11

 

 

 

쉬지 스톨크는 어느 시골 작은 집에서 남편과 아이 셋과 사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젖먹이를 돌보고 아이들을 유치원 보내고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며 지낸다. 

하지만 태양이 내리쬐는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그녀는 반복된 일상에 지쳐 있다가 문득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살면서 자기 자신이 포기한 것과 체념한 것에 대해 인식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가 불가능함, 절망을 느낀다. 

그러다 이러한 모든 것을 자신도 모르게 한순간 놓아 버리고 만다.

 

 

 

이 작품은 살아가면서 (NO)’라고 말할 줄 몰랐던 어느 평범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녀는 어머니와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딸로서, 부인으로서 사회적 관습이 요구하는 대로 따르느라 힘에 부치고 지쳐간다. 어느 여름날 오후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그녀의 머리도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그녀는 향상 예스(Yes)’만 하다 문득 깨닫는다. 낳기를 원하지 않았던 아이들과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심한 남편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잊고 살아왔다는 것을. 이때부터 그녀는 라고 말하는 법을 배운다. 쉬지 스토르크는 자신의 집, 자신의 감옥에 불을 지르고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코러스가 암시하듯이 마지막에 결국 혼자 죄인이 되어 남는다. 넓음 의미에서 남자, 여자라는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해,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그 외에도 여성의 본능이라고 말하는 모성애, 부부 강간, 친부모의 자식학대, 아동폭력 등에 대한 주제도 무게감 있게 들어있는 작품이다.

 

 

 

형식에 대해

현재 30대 프랑스 신예 여성작가인 마갈리 무젤이 2013년에 쓴 이 희곡은 6년 정도의 결혼 또는 동거생활을 하며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어느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실주의 극은 아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1, 1장히는 식의 전통적인 장면구성이 아니라 시퀀스, , 플래시백 등의 기법을 사용하는 영화처럼 12개의 시퀀스(Sequence)로 구성되어 있다.  12장의 드라마 앞뒤를 코러스가 둘러싸고 있고 드라마 사이사이에 코러스가 개입해 극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12개 장면은 반복적인 대사가 많고 전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승전결 형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인간의 기억이 시간 순서대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듯이 불쑥불쑥 왔다 갔다 한다. 크게 보면, 코러스가 사건이 벌어진 현재를 처음소개하고 플래시백처럼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기도 하고 더 먼 과거로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현채로 돌아오는 구조다. 각 시퀀스 테마를 대강 요약해보자면, 사건 발생-커플의 첫 만남- 결혼 또는 동거 생활- 쉬지의 취업노력- 행복하지 않은 부부 생활 출산, 양육 스트레스- 깨어나는 쉬지의 자의식- 태양아래 방치된 유모차에서 죽게 된 아이 이야기가 들어있다 12개의 시퀀스를 프롤로그, 에필로그가 앞뒤로 감싸고 있고, 코러스가 들어있어 언뜻 보면 고대그리스 비극 형식을 환기시키지만, 프롤로그는 코러스가 시작하고 에필로그는 여주인공 쉬지가 끝을 맺는 점이 독특하다.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에필로그에서 코러스 아닌 여주인공에게 마지막으로 발언할 기회를 주고 있는 작가의 의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전통적인 비극 형식을 띠면서도 아주 독창적인 방법으로 현대적인 비극을 만들어 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코러스는 전통적인 의미의 코러스가 아니다, 다수로 구성된 복수의 인물이 될 수도 있고 코러스의 선창자 코리페처럼 혼자 말하는 단독 인물이 될 수도 있도록 해놓았다. 전체적으로 지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는 각자 해석해야 할 부분이기도하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코러스는 주변부에서 합창단처럼 같은 소리를 내는 집합이 아니라 주인공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는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지문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인물이 정확하게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 상태에서 발화하고 있는지 자꾸 질문하게 되는 작품이다, 한면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해석이 기능한 작품이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 쉬지의 대사는 무대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완전한 독백(monologue)처럼 읽을 수도 있고, 누가 옆에 있지만 반응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또 다른 독백형식인 솔리로키처럼, 또는 관객이나 어느 대상과 같이 나누는 대화체처럼 읽을 여지도 남겨놓는다. 이 작품은 코러스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어느 커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극중극 형식이다 그 속에 든 드라마는 코러스의 기억 속 인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쉬지가 자신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돌아보며 스스로 관찰하고 해석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신문 사회면에 나올 법한 이 인물들은 코러스의 기억의 장단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또한 코러스는 이 인물들의 거울, 분신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코러스의 대사와 인물의 대사가 겹치고 반복되거나 연주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 인물들의 성격에 대해

작품에는 쉬지 스토르크, 그녀의 남편 또는 동거인 앙스 바시리 크러즈, 쉬지의 어머니인 마담 스토르크, 여 취업 면접관, 그리고 코러스가 등장한다. 코러스를 제외하고는 주인공을 비롯해 나머지 등장인물들 모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평범한 인물들이다. 쉬지 스토르크는 많이 배우지 못한 시골 출신 여성이고 결혼 생활 전에는 닭고기공장에서 일한 경력이 전부인 가정주부다. 작가는 오늘날 어느 평범한 여성의 초상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취업 선택 기회가 많지 않은 지방에 사는 2030대 젊은 여성 쉬지 스토르크는 아동의 잠재력을, 장래를 일찍이 결정해버려는 사회 결정론에 좌우되는 개인 운명의 비극을 보여주는 인물이여, 가부장제의 강요된 시스템, 여성의 취업 조건과 가사노동의 현장, 숨 막히는 공간인 가정을 떠나지 못하고, 창밖을 내다보며 화가 난 남편이 돌아오는 것을 두려움 속에서 초초하게 기다리는 우울한 여자 이미지다. 그녀에게선 고독, 소외, 유폐, 감금, 일그러진 일상, 혼란, 파괴, 살인, 죽음 같은 심리 상태가 유지된다. 쉬지 스토르크는 여자가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 일이며, 부모에게 손자를 안겨주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회적 틀에 속한 인물이다. 결혼 또는 동거한지 몇 년 만에 젊은 나이로 연이어 아이 셋을 낳은 그녀는, ‘아이를 생산하는 부부의 의무 같은 경제적이고 신체적이고 개인적인 속박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동안 노라고 말하지 못한 채, 부인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을 맡아 참고 수행해나간다. 그녀는 사회 관습에 순종하며 처음에는 남편이 자랑스러워하는 부인이 되기 위해 그리고 엄마한테 창피하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잘 참고 살다가 어느 날 한 순간 실수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게 된다. 감옥처럼 느껴지는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고 가정이 잘 돌아가도록 출근하고 등교하는 식구 모두에게 행복한 척 억지미소를 짓는 쉬지 스토르크는 비상할 수도 없고 출구도 없는 평범한 일상의 비극 속 여주인공이다. 작품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이날 6 17일은 땅속에 매장되어 있던 신체, 잊어버렸던 몸을 땅에서 파내오듯이 그녀의 숨겨진 이야기, 그녀의 자의식이 온전히 드러나는 그녀에게 중요한 날이다. 사실 대단하거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연장이겠지만 이날은 그녀가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아침에 일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과 이것이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이가 죽게 되는 불행 속에서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한 날이다남편인지 동거인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쉬지와 같이 사는 앙스 바시리 크러즈는 알자스 지방 사람으로, 사실 그는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다. 쉬지가 자기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며 쉬지의 심리를 전혀 이해 못하는 남자다. 부인과 아이 셋을 둔 착실한 가장으로서 가정이 안정적으로 잘 돌아가도록 직장, 집에서도 혼자 모든 일을 다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다. 이 부부에게는 여보’, ‘당신 같은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 없다. 이름만 부르거나 성까지 붙여 이름을 부르는 것이 독특하다. 특히 코러스가 이 두 인물을 지칭할 때 이름만 부르지 않고 그들의 이름과 성을 함께 부르는데 이는 이 인물들에 대한 묘한 객관적인 거리감, 아이러니, 코믹한 느낌을 준다. 한편, 쉬지 스토르크만 통념과 사회 시스템의 희생자로 부각되는 것은 아니고, 남편 앙스 바시리 또한 사회적 요구를 따라가느라 지쳐가는 남성으로 묘사된다.

 

 

주제에 대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분야에서 여성이 거부되거나 비하되고 평가 절하되는 환경과 조건, 특히 결혼한 여성을 일상적인 가사노동, 의무 속에 가둬 버리는 사회적 구속과 억압에 대해 수술 매스를 대듯 해부하고 있다. 사회질서, 기성관념, 사회 통념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 쉬지는 매일 기계처럼 집안일을 해나간다. 작품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사 노동으로 하루하루 지쳐가는 주부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부부의 성에 대해서도. ‘쉬지 스토르크는 앙스 바시리 크리즈의 밤 사정으로 아이 셋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작품은 냉소적이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대두되기 시작한 합의 없는 부부 강간, 데이트 폭력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작가는 모성, 모성애에 대해 질문한다. 쉬지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혼자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힘든 노동, 양육스트레스, 양육 번아웃증후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성성, 여성의 정체성, 모성, 모성애, 여성의 노동조건, 노동에서 여성소외, 가정주부의 소외감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평범한 한 여성이 처한 사회조건을 보여주며 여전한 가부장제 속 여성의 정체성과 독립성, 자유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는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가 읽히는 작품이다.

 

작가에 대해

프랑스 신예 여성 극작가 마갈리 무젤(Magali Mougel)은 1982년 독일과 근접한 프랑스 보주 지방에서 태어났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2008년, 연극 학교로 유명한 리옹의 국립 무대예술전공학교(ENSATT) 극작과를 졸업(석사)했다. 이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공연예술학과에서 여러 해 동안 강의했고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 출판부에서 편집인으로 일하다 2014년부터는 극작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여성, 자연, 정치라는 세 가지 주제로 집약되고 있다. <바르바라 에세 1>과 <워터릴리 에세 2>로 ‘2007극작가들의리용에서의나날들’ 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 국립연극 센터의 창작지원금을 비롯한 여러 창작 기금을 수혜작과 수상작을 다수 발표했다. 현재는 여러 극단의 연출가와 예술가들(무용, 미술)과 활발한 협업을 통해 수편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쉬지 스토르크>를 비롯해 <Elle pas princesse Lui pas heros>, <Poudre noire>, <Je ne veux plus>, <Coeur d’acier>, <Erwin Motor devotion>, <Penthy sur la Bande>, <The Lulu Projekt>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