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도스토옙스키/ 괴테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clint 2024. 6. 23. 19:53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그 한계를 통감하며 

환멸과 좌절감에 빠져버린 파우스트 박사. 

어느 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로부터 의문의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에게 솔깃한 제안을 하는데...


친애하는 내 친구 파우스트 박사에게. 난 요즘 자네가 신적인 지식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번민하고 있다고 들었네. 그래서 세상의 학문에 염증을 느꼈을 테고, 자네처럼 모든 학문에 통달한 자가 그런 고민을 하면 쓰나? 내, 자네의 친한 벗으로 도움이 될만한 내 친구, 이반의 문학작품을 소개하려 이렇게 펜을 들었네. 모든 사람처럼 이반은 죽었지. 어제 아님. 그제. 하여튼 잘 모르겠네. 그도 역시 신이 되기를 꿈꾸었고 마침내 그것을 이루었다네.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를 추도하기 위해 서재에 들렸다가 우연히 그가 젊었을 때 쓴 작품 하나를 발견했다네. 아마 도움이 될걸세. 제목은 <대심문관>이라네. 자네의 절친한 친구 메피토펠레스로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인가? 괴테의 파우스트인가?

누가 우리를 구원할 신이 될 것인가.
선한 사람 이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는가?

 

 


이 극은 1인극으로, 배우는 도스토예프스키와 괴테의 치열한 인간 구원의 문제에 

마주서며, 냉소적 인신주의자 이반과 따뜻한 신인주의자인 

그의 동생 알료샤, 신처럼 되고 싶은 파우스트, 

그리고 신이 사라진 자리를 대체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현존을 

무대 위에서 홀로 감당한다. 

삶의 의미가 붕괴되고 혼돈 속에 빠져버린 

비극적 실존 상황과 직면한 우리에게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것인가? 라는 지고한 질문을 던진다.

 

 

 

 

각색및 연출 - 나진환
이 작품은 휴머니즘(인본주의)의 선상있는 어느 지점이다. Neo 휴머니즘은 단순한 '신인본주의'가 아니다. 연출자로서의 본 연구자는 휴머니즘을 인본주의'로 번역한 일본식 한자는 적당한 번역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휴머니즘의 휴먼은 라틴어로 '후마누스(humans)에서 유래한 것으로 근본정신은 물질이나 동물과는 비교되는 "인간다움에 대한 강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애한 번역 또한, 최담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Neo-휴머니즘에 대한 개념은 "인간의 아름다운 인간다움에 대한 강조인 것이다. 즉, 인간의 비극적 실존상황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여기서 인간을 구원시킬 진리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에 대한 강조'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Neo휴머니즘이 연극을 통하여 드러나는 '인간의 지고한 아름다움에 대한 창작작업의 총체적 현상을 우리는 연극의 trees(신-인문학, 人文學)이라고 명명한다. 이 작품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는, 이러한 연극의 Neo-Humanities'의 범주에 당연히 소속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과 괴테의 <파우스트>가 이러한 우리의 Neo-Humanism Neo Humanities으로 드러나게 하길 희망한다. 

 

나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