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상열 '뮤지컬 용이 나리샤'

clint 2024. 1. 19. 10:26

 

 

어느 대학의 사학과 강의실 시청각교재에 의한 노교수의 강의가 한창이다.

갑자기 강의실의 영상이 흔들리다 아나운서가 화면에 나타나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발표문을 긴급뉴스로 전한다. 내용인 즉,

은하계로부터 청룡 한 마리가 대기권으로 진입 이내 극동의 한반도 쪽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놀라는 학생들

사학과 학생들은 청룡수색대를 조직하여 노교수의 인솔하에 청룡수색 작업에 나선다.

그들의 장비는 촬영장비 일체에다 뗏목이다.

노를 저어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역사의 와중에서 표류하다가 무녀의 점지에 의해서 다시 항로를 잡는다.

수색대원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역사의 시작 나라의 꼭대기 환웅천왕의 신시…..

환웅천왕은 비 구름 바람을 이끌고 신단수 아래 도착하시여 짐승들의 환대 받는다.

현지 특파원은 이것을 현실세계에 영상으로 전한다.

야영에 들어간 수색대원들 청룡의 분노로 폭우를 만나게 되어

긴급히 대피한 곳이 어느 혼란의 시대 질병과 가난과 고통의 시대속에 휘말린다.

제각기 흩어졌던 수색대원들 겨우 어느 역사의 지점에 도착한다.

그곳은 태평성대의 축복받은 시대 즉 삼국시대의 선덕여왕의 내전

수색대원들 노래와 춤으로 영원한 역사의 잠 속에 빠진 선덕여왕을 깨워서

통치의 이념과 지혜 그리고 백성들의 화목함을 노래하게 한다.

멀리 난파하여 표류했던 일군의 수색대원들이 본대원들과 합류하며

자기들이 영상으로 기록한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영사막에 투영해준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시대…. 그곳은 서커스 무대가 된다.

성군의 시대 문화가 꽃피던 세종대왕시대 용비어천가의 이미지들,

즉 문자의 창안이 무용으로 표현된다.

암흑의 시대 일본군대들의 행군이 펼쳐지고 파고다 공원의 삼일만세가

현장의 다이나믹하고 상징적인 율동으로 연출되는데 창을 부르는

소녀(유관순)에 의해서 민속고유의 판소리와 탈춤의 형태로 구사된다.

전쟁과 새로운 시대의 이미지 수색대원들은 6·25 전쟁의 포연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불의 환타지가 펼쳐지고 끝내는 여의주를 입에 문 청룡과 만나게 된다.

대합창과 허공에서 내려오는 여의주를 받는 수색대원.

 

 

 

김상열 작가의 글 <또 하나의 돌파구를 찾아서>

'한국연극사'를 쓰는 분들이 앞으로 뮤지컬 역사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그 맥락을 정리하게 될지 자못 기대가 크다. 신극사를 근 80년으로 보고 있는 관점에서 신극의 시작을 원각사나 「협률사」로 보는 견해는 대개 일치하는 듯하지만 뮤지컬이라는 서구개념의 공연형태의 시발이나 그 주류를 정립하는 게 그리 용이치 않으리라 믿는다. '악극'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다소 무리라면 그 발상의 영향이 서구적이든 순수 창작적이든 간에 '예그린'의 등장은 분명히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적어도 창작뮤지컬에 대한 신념과 희생을 아끼지 않은 몇몇 선배님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그 뒤 '미리내'와 현재의 몇 개의 '가무단'까지 이어지는 연면한 물줄기는 분명히 연극사에서 중요하게 언급이 되리라 믿는다. '예그린'의 순수한 정신이 왜 꺼질 듯 끊어질 듯 진통을 겪었는지는 일천한 소견으로 가늠할 길 없으나 창작뮤지컬이 70년대 이후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의해서 어딘지 모르게 왜소하게 외곽으로 밀려가는 듯한 인상은 모든 공연예술인들에게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맛이 변해 가는 것인지 아니면 비교적 구색을 갖춘 서구뮤지컬에 심취해 가는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양쪽의 작업이 상호 자극과 견문이 적절한 밸런스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모든 분들의 소망이다. 다양한 공연형식과 방법을 쉴새없이 추구하는 게 무대예술의 속성이라 하는데 적어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양상을 관찰해 보아도 음악과 윤동의 에센스만을 집약하는 형태, 그래서 사건과 줄거리를 배제시키고 지극히 청각적이며 시각적인 부분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수퍼스타」나 「캣츠」가 분명히 뮤지컬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분명하고 그에 따른 작곡과 악기 편성에서 대단한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듯하다. 전자악기의 발달로 뮤지컬은 그 기능 면에서 상당히 젊고 생동감이 넘쳐흐르고 그것을 즐기는 관객의 폭 또한 다변화됐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인 듯하다. 어쨌거나 줄달음치는 저쪽 사람들의 뮤지컬을 뒤쫓다보니 어느 한 구석 허전해 가는 우리들의 속마음은 더욱 깊어만 간다.

창작 뮤지컬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돌파구 모색은 그런 와중에서 꾸준히 계속되면서 80년대 초부터 대두된다. 민속연희 형식을 취합한 '마당극'은 대중이라는 또 다른 관객층을 형성하며 전래의 풍자해학의 주체적 연희성을 분명하게 내보인 것이다. 일본의 '다까라스까'의 공연 형태가 독자적 고유성을 띤 일본의 것으로 세계시장에 나왔듯이 우리의 음악극(뮤지컬)이 우리의 독자적 예술성을 띠고 세계 속에 뛰어들 때는 분명히 온 것 같다. '예그린'에서부터 시작된 독창적 주류를 잘 더듬어 간다면 현재의 '마당극' 형태와 의 중간지점에서 사생아가 아닌 독생자가 나오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그러나 오늘 막이 오르는 이 뮤지컬이 그 맥락에서 기획된 것은 분명히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뮤지컬에 대한 대중화를 모색하고 현재 영상매체 속에서 남발되는 쇼와 오락적 기능을 좀더 일목요연하게 집약해서 일관된 메시지 위에 일반적인 버라이어티를 구사해보자는 제작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음악과 율동을 부담 없이 즐기면서 동일한 주제를 공감해 보자는 특별한 뜻에서 시도되는 것이다. 정통 뮤지컬에서 빗나가는 듯한 인상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예술성과 오락성의 중간에서 남녀노소가 한마당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대중 뮤지컬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돌파구라 생각하며 '한국방송공사' '시립가무단'의 박만규 단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1988년 프로그램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