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1970년대를 처절하게 살았던 한 젊은이의 고해성사 같은 에세이를 각색한 것이다. 1970년대는 경제의 고도성장에 따르는 사회경제적인 격동기로 기록할 수 있으며 누구나 한번은 풍요와 소비풍조의 신기루에 휘말렸던 시기였기에 이 젊은이의 피맺힌 기록은 우리에게 분노와 반성의 계기를 주고 있다. 엄밀히 말해 소설이나 수필의 범주에 낄 수 없는 특이한 자서전에세이의 형식을 빌리고 있는데 문학적 표현이라기보다 즉흥적 절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솔직 대담성이 높이 평가되었던 것이다. 당시 젊은 나이에 청운의 꿈을 품고 제세 산업이란 기업을 천신만고 끝에 창업하여 젊은 웅지를 막 펴려고 할 때 투옥되어 재판을 받다가 집행유예선고를 받고 석방되기까지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좌충우돌하는 그의 달변과 박식, 해학이 전편에 흘러 넘쳐 그가 한낱 장사에 몰두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사랑과 긍지로서 포옹하려 했던 외로운 속 마음이 엿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이 민족을 사랑하므로 이 글을 썼노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고발이나 자조 혹은 흥밋거리의 단순성을 뛰어넘는 한 젊은이의 인생관과 국가관까지 성실하게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도 이 사회의 도처에 뿌리박고 있는 전시대의 유물인 비리나 부패, 부정적 사고의식을 따끔하게 매질하는 양식의 저울로서도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리 모두 같은 뗏목을 타고 가다 실종되었던 한 젊은이의 진혼곡으로 파악함이 마땅할 줄 안다.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김상열이 그의 실제 무대 경험을 백분 살려 변화무쌍 하고 자유분방한 무대를 형상화 시키고 있다. 다분히 서사극적(Epic Drama) 형식을 취하면서 대사와 분위기는 판소리와 탈 춤의 장단과 넉살이 넘쳐흐르는 무대, 객석 일체감의 마당극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상투적인 줄거리 전개와 설명적 연극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12장면의 단편적인 이미지를 연결시켜 전체를 하나의 놀이로 확대시키고 있다. 특히 각색자 특유의 재담과 익살을 가미하여 민속극적인 율동을 극대화시키고 있는데 출연자 7명 전원이 여러 역할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과 흥미를 고조시키고자 하고 있다. '민속음악극'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이 연극은 다분히 실험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데 서구연극 형식과 우리 민속극적 내용이 얼마만큼 밀착 융화할 수 있는지 흥미의 실험장이 될 것 같다. 연기자는 야유와 조소 그리고 달변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의 참여를 유도하며 관객은 구경꾼에서 무대창조의 동참자로서 무대와 객석의 간격 을 뛰어넘는다. 각색 연출자 자신이 1년간 미국 연수에서 감지했던 Total Theatre(총체연극)의 묘미를 백분 살린 것인데, 극본은 단순한 재료로서 머물게 하고 즉흥진행 (코메디아 델 아테)의 연기자 재량권을 부여하여 연기자와 관객이 맞서는 굿판의 진수가 펼쳐진다. 무대는 강렬한 인상으로 캐리커처될 것이며 무대는 하나의 거대한 굴절된 거울로서 우리의 변형된 자화상을 자각하게 하며 사회정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각색 연출자의 말 <아냥과 액땜> 김상열
이 작품을 쓴 원작자만큼 처절하게도 현명하게도 유별나게 살아보지 못한 나로서 각색하고 연출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모순을 갖고 있다. 더구나 경제문제나 재계에 대하여 손톱만큼 아는 것도 없으며 아직도 부가가치세가 뭔지도 잘 모르고 어느 여자가 거액 어음사기를 쳤다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떼돈을 손에 쥐었는지 밉기는커녕 그냥 모를 뿐이다. 어느 술자리에서 견질어음이 뭐냐고 물었다가 친구들에게 대망신을 당한 일까지 있다. 명색이 연출가요 극작가라는 게 이 꼴이니 요즘 설왕설래하는 저질 연극의 원인이 당연 한지도 모르겠다. 원작을 3번 정도 읽으니까 대충 그렇구나 하고 아련히 감이 잡힐 뿐이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난처한 판국에 등짝 떠밀리는 심정으로 각색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나보다 천배는 똑똑한 사람이고 만배는 용기 있는 사람이며 누구 보다 제 땅을 사랑했으며 누구보다 제 백성 염려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남의 욕 많이 한 사람이고 보니 개인적으로 은근히 존경심이 가는 사람이 분명하 다. 욕하고 싶은 응어리가 내장 속에서만 뱅뱅 돌다가 고작 잠자리에서 헛소리하거나 사지를 뒤쳐 연로한 홀어머니만 놀라게 하는 주제가 아닌가 천국과 지옥이 뒤범벅이 된 뉴욕에서 연극공부 한답시고 1년간 어정거리다 돌아와 보니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었고 그때만 해도 별 관심 없이 흔해 빠진 화제작이나 문제작의 하나려니 하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꼭 도깨비 같은 이영윤 형이 한번 읽어봐 하고 권유할 때도 이번엔 무슨 땅재주 넘으려고 그러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읽게 된 것이다. 우선 솔직담백한 넉살이 좋았고 자유분방한 박식함도 매력이었으나 분노와 욕설의 행간에 가득 찬 나와 동시대에 살았던 한 젊은이의 따뜻한 속마음에 끌렸다. 더구나 이 사람의 욕심과 넉살을 우리 고유의 말뚝이 놀이식 덕담으로 받아준 이 사회가 고마웠다. 세익스피어의 광대들은 왕에게 욕설을 하는 특권을 부여 받으며 왕은 애교 있게 그것을 받아주는 아량으로 다른 재앙의 액땜을 부여 받는다. 나는 이 작품을 덕담으로 받아주는 아량으로서 새시대의 재앙을 액땜하는 작은 약초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특정 부류나 계통에 대한 욕설도 아니고 특정인에 대한 비방도 아닌 것이다. 70년대라는 경제 혼란기, 고도성장의 회오리에 모두가 휘말렸던 과거를 냉철히 반성하고 차분히 옷깃을 여미고 내일을 밝고 맑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옛날 옛날 한 옛날의 전설로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원작자 자신이 무대 공연되는 것을 꺼려했던 이유도 단 한 번의 분노와 넋 두리가 책으로서 끝났으면 하는 것이었고 이 책의 명성을 업고 또 다시 사회 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것도 관객들은 이해하셔야 될 줄 안다. 나는 이것을 각색, 연출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험극으로 유도했으며 기왕에 뉴욕에서 어깨 너머 보고 온 바람직한 형식을 가미 시켜 줄거리의 추적에서 탈피하여 각기 단편의 이미지를 배열하여 하나의 그림이 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수완을 부려봤을 뿐이다. 소위 저질연극의 말석에 낄지 순수연극에 낄지는 알 바도 없지만 무더위에 땀 흘렸던 참여자들에게 감사드리며 이 공연을 가능케 해준 고마운 여러분들 과 덕담으로 받아준 이 사회의 아량에 긍지와 희망을 가지며 밝은 내일의 연극을 감히 자신한다. - 1982년 프로그램 글 중에서
70년대 중반, 제세 신화를 창조하고 「하루아침」에 몰락한뒤 세인의 이목에서 사라졌던 이창우 전 제세그룹대표. 1974년 4월 설립된 제세산업의 사장 이창우다.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1971년에 졸업하고 삼일빌딩의 스위스 기업에 입사했다 그런 젊은이가 당시 최고 수준의 봉급과 복리후생 첨단 수준의 근무환경을 갖춘 꿈의 유럽계 기업에서 일을 하게 되었단다. 본인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사람팔자 모르는거구나" 했다는데,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건지 근무하다 보니 이 꿈의 직장이라 불리던 곳에도 묘한 갈등이 있었고 결국 노동쟁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내건 조건이라는 게 '(사측 나라의) 민족적 우월성을 나타내지 말 것', 뭐 지금 보면 싱겁기까지 한 조건이다. 두둑한 퇴직금을 받은 그는 1974년 4월, 그 돈으로 마포인지, 당인리인지, 어느 촌구석에 폐업한 소금창고를 빌려서 중고 고물 선반을 한 대 사다가 놓고 창업을 한다. 그의 이름은 '이창우', 회사이름은 '제세산업'이었다. 기계부품 가공사업을 몇 년 하다가 사업에 자신이 붙은 그는 시내에 사무실을 차리고 1977년 8월 무역업 등록을 하고 중동 수출바람에 힘입어 창업 4개월만에 천만 달러라는 수출실적을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당시 '원기업', '율산', '대봉그룹' 등과 함께 '앙팡테리블' 즉 재벌을 위협하는 무서운 아이들로 불렸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일본에서 컨테이너 선박을 사서 '제세엠비션호'라고 이름 짓고 해운업에 진출하고 '쌍미섬유', '진영전자', '대성건설'을 인수해 제세그룹이 된다. 마지막으로 인수한 기업은 중동 건설시장 진출을 위해 탈세 혐의로 무너진 유수의 중견 건설업체, '대한전척'이었다. 당시 중동에서 제일 잘 나가던 이란의 테헤란 외곽의 신도시 건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성공하면 무려 4억 달러를 버는 건수였다. 지금 4억 달러라면 우습지만 1973년은 한일합섬이 단일 기업 사상 최초로 1억 불 수출 목표를 달성해 대한민국 모든 언론과 온국민의 찬사를 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제세가 인수한 다음 날 대한전척의 해외 건설면허가 취소된다. 그로서는 거금을 끌어모아 대한전척을 인수한 이유가 사라져버렸고 대한전척의 막대한 부채만 남았다. 자금난에 빠진 제세는 은행을 돌면서 구제금융을 요청했지만 모두 차갑게 거절당하고 맨주먹으로 창업 3년 만에 수백 억대의 자산을 축적했던 제세가 겨우 천백만 원수표를 막지 못해 부도를 맞는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당시 제세그룹의 투명성은 수사관들이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사장! 우리가 수많은 경제사범들을 다뤘는데 이사장만큼 깨끗하게 사업한 사람이 없었소 대단하오!!" 그러나 잘 나가던 기업의 추락에 신이 난 당시 언론들은 기사를 이렇게 때렸다. '시멘트 대신에 돌멩이를 위장수출한 사기꾼' 분위기는 급변했고 못 본 체하지 말라던 수사관들의 태도 역시 돌변했다고 한다. 1978년 10월, 그는 구속되었고 1979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난다. 나와서 보니 제세산업은 공중분해되어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이창우는 여기에 굴할 사람이 아니었다. 1981년 그는 대한민국 정, 재계 특히 신문사 기자를 상대로 요즘 김구라 김용민은 명함도 못내밀 신랄한 막말 독설 저주와 육두문자를 넣어 '옛날 엣날 한 옛날'이라는 제목을 달아 책을 냈다. 표지사진은 자신이 수갑차고 끌려가는 장면을 넣었는데 이게 베스트 셀러가 된다.
이 책을 연극으로 만든 것이 위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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