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중세는 정복의 역사가 가장 극렬한 시기였다. 그 중 13세기 고려는 일곱 번의 몽고 난을 겪고 전답과 사찰을 귀족들에게 빼앗겼다. 국권을 회복하려는 최우 무신정권은 임금을 강화도에 피신시키고 대몽 항쟁에 나섰다. 그들은 백성들을 깊은 산 속으로 이동시켜 산성을 쌓게 했다. 끌려간 사람들이 낮에는 성을 쌓고 밤에는 씨를 뿌리던 곳이 바로 청산이다.
그러나 점차 몽고 군이 내륙지방을 거의 다 차지하게 되자, 백성들은 해안 지역으로 옮겨졌다. 해전에 약한 몽고 군에 대항할 수군으로 동원된 것이다. 그 곳에서 그들은 청자를 만들었다. 해안가 곳곳의 마을에는 수백 개의 가마가 형성되었고, 이는 쫓기고 쫓긴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이 때 청자는 교역 물로써 많은 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이 작품은 팔 만개의 새가 새겨진 청자를 쿠빌라이의 황성에 바쳐야 하는 도공의 이야기를 만들어, 청산별곡을 부르던 고려인의 유민생활을 그린 것이다. 작자 미상의 이 노래 "청산별곡" 은 당시에 유행하던 대중가요로서 애환을 노래하며 불행을 극복했던 한국인의 정신이 담겨져 있다. 청자의 새는 "자유"의 이미지이며, 예술가 만경은 모든 것을 잃고 힘이 다 빠져나갔을 때에야 비로소 새를 떠오르게 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고려인(천민) 들은 비폭력주의로 자신들의 운명을 완성하면서 아름다운 청자와 팔만대장경 등 빛나는 문화를 창조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초월정신을 체험하고 우리 삶 속에 이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줄거리
1막 청산
일곱 번 계속된 몽고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고려. 땅을 빼앗기고 청산에 모여든 고려의 유민들은 낮에는 산성 쌓고 밤에는 씨를 뿌린다. 도공 만경은 청자에 흰 새를 새겨 넣지만 가마의 화염 속에 새들은 모두 녹아 버린다. 고뇌하는 만경에게 새의 정령이 찾아오고 새를 붸던 만경은 순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림자극
재주꾼 광대들이 그림자 인형을 공중에 나부끼며 언덕을 넘어올 때, 악사들이 그림자 연극수레를 끌고 들어온다. 해, 달, 산, 소나무, 구름, 바위, 새들의 그림자가 차례차례 막 위로 나타나면서 청산이 완성된다. 잠시 후 말발굽 소리와 함께 몽고장수가 나타나 쌍칼을 휘두르자 청산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새마저 모두 날아가 버린다.
혼례식 / 제의
신랑 신부로 단장한 만경과 순이. 재주꾼들이 한바탕 놀이가 천체의 별처럼 펼쳐진다. 만물의 생성을 기원하는 부채춤이 끝나면 무동이 오곡의 씨를 뿌리며 축복한다. 지신밟기와 두레춤을 추며 생명력을 펼쳐내는 집단 무와 사랑의 춤으로 행복을 기원한다. 만경과 순이는 그릇의 완성을 위한 기원의 제사를 연다. 바라를 든 제관들이 벽사진경, 국태민안을 기원하고 유민들은 그릇을 제물로 바친다. 기원의 화답으로 북소리 울리기 시작할 때, 언덕 위로 달이 떠오르고 몽고 병사들이 쿠빌라이의 깃발을 들고 등장한다.
몽고장수의 방문
먼지 바람 말발굽 소리와 함께 침입하는 몽고의 병사들. 고려의 아름다운 흰 새가 새겨진 청자를 요구하는 몽고장수의 일행 앞에는 빈 하늘만 가득한 고려의 청자들이 뒹군다. 분노한 몽고장수와 울분을 참지 못하는 만경의 대립이 극을 이룬다. 결국 몽고장수는 만경의 눈을 찌르고 신부 순이를 납치해 간다. 붉은 보름달 속에 청산이 불타오른다.
2막 쌍화점
몽고의 침입으로 변질되어 버린 고려. 몽고 병정들의 환락의 잔치가 벌어지고 애첩이 되어 버린 고려 여인들의 관능적인 춤과 꼭두각시 인형극이 펼쳐진다. 몽고장수의 노리개가 되어버린 순이는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을 하였어도 이미 넋을 잃어버린 죽은목숨이나 다름이 없다. 순이는 고려 유민들의 죽은 혼들과 함께 넋춤을 추며 죽음을 예감한다. 몽고 장수의 희롱 속에 순이는 마지막 힘을 다해 머리장식으로 몽고장수의 목을 찌르고 긴 수건에 목이 졸려 죽음에 이른다.
3막 바다
청산을 빼앗기고 바다로 쫓겨온 고려인들. 눈 먼 만경은 바닷가에 앉아 청자를 빚는다. 마침내 시신이 되어 돌아온 순이를 품에 안고 만경은 사랑의 춤을 춘다. 둘이 한 쌍의 새처럼 되어 춤출 때 순이는 저절로 나는 듯 흰 새로 환생한다. 멀리 비취빛 하늘에 새가 날고 북두칠성에 이르는 하얀 다리가 놓아질 때, 만경의 청자 속에 새가 새겨진다.
아스라한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녘 끝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하얀 옷고름에 은장도를 지닌 아낙들과 비취색 청운의 꿈을 키우는 도공들이 청산으로 바다로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땅,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처 없이 떠나는 발걸음들. 청자의 비취색 하늘에 아름답게 날아오르는 새를 그려 넣던 만경이와 고운 웃음을 가진 순이는 아름다웠던 짧은 사랑을 약속하는 혼례식을 올린다. 그러나 사랑이 채 봉우리를 터트리기도 전에 몽고군에 의해 산산히 조각난다. 해동의 청자를 보물로 간직하겠다며 만경에게 청자를 내 놓으라 협박하는 몽고인의 집요함, 생명이 부서져 우주의 먼지가 될지라도 예술혼을 회회 것들에게 내 놓을 수 없다는 만경의 고집은 결국 몽고장수에 의해 시력을 잃게 되고, 순이는 몽고인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끝내 죽게 된다. 잃어버린 청자의 꿈과 사라진 순이의 웃음을 좇던 만경은 상실과 절망속애 캄캄하게 가라 앉는다. 청산으로 바라로 쫓기고 내몰리고 죽임을 당하여도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며 다시 부르는 노래,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고유어의 사용과 함께 뛰어난 서정성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려가요의 하나이다. 8연으로 구성된 은 [악장거사]와 [시용향악보] 두 문헌에 전하는데, [시용향악보]에는 그 첫째 연만이 악보와 함께 전한다. 특히 청산별곡은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고독한 지식인, 유랑농만, 실연(失戀)의 아픔을 간직한 여성 등) 그 내용이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노래와 춤과 음악이 있는 무대, 청산별곡은 한국형 댄스 뮤지컬로 전통공연의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간결하면서 생동감 있는 안무, 개성 있는 악기 구성과 라이브 국악 연주, 그림자극과 꼭두극 등 흥미 있는 전통 연희양식으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우리나라 전통예술에 기반한 현대적 세련미 형상화해 호평을 받았던 <청산별곡>이다. 이 공연에는 무용, 음악, 노래 각 장르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에 초점을 두어 "한 도공의 사랑과 집념이 예술 혼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담아 국내외 관객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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