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나그네>는 산골에서 주막을 운영하는 홀어머니와 노총각 덕돌이집에 나그네(젊은 여자)가 찾아와서 하룻밤을 청한다. 행색이 옹색하고 더구나 여자인지라 불쌍하게 여긴 母子는 나그네를 며칠 묵게 하고 나중엔 노총각 덕돌과 혼인한다. 하지만 나그네에겐 병들고 지친 남편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그네는 마을입구에 있던 물방앗간에 숨어있던 서방과 혼수물 약간을 들고 야반도주하는 이야기이다. 병에 찌든 남편을 위해 거짓 혼인을 하고 옷가지와 약간의 양식을 훔쳐 도주하는 더구나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정조마저도 팔며 다니는 여자의 이야기는 당시 농촌의 궁핍함과 참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를 자신만의 고유한 정감 어린 언어와 묘사로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다.
<소낙비>에서 춘호는 노름 밑천 2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내를 동네 유지인 이주사에게 매음하려는 사내로 등장한다. 부자인 이주사는 자신의 돈으로 동네의 아낙들을 유린한다. 이런 이주사와 춘호처가 소나기 때문에 같이 머물게 되고 춘호처도 남편의 등살에 못 이겨 매음을 해서라도 돈을 마련해 주려 이주사에게 접근한다는 내용이다.
<봄·봄>에선 주인공이 화자인 '나'이다. 1인칭 주인공 나는 유랑민으로 봉필네에서 그 집 둘째 딸인 점순과 혼인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벌써 3년 7개월 동안이나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나를 사람들이 놀리고 나는 화가 나 장인어른 될 봉필을 찾아가면 점순의 키가 크지 않아서 안된다는 말만 듣게 된다. 마침내 장인과의 다툼이 벌어지는 와중에 나에게 혼인에 대한 방법까지를 일러주었던 점순은 장인 편을 들어 나는 도대체 이해를 못하면서 장인에게 매를 맞는다.
<안해>에선 자신의 아내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며 살아볼 방도로 아내를 들병이로 만들고자 수업을 한다. 하지만 미모도 떨어지고 소리도 못하는 아내에게 애당초 기대할 바가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사내자식을 낳아 결국 아들들이 벌어올 돈을 생각하며 아내의 가치가 자신보다 훨씬 더 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가을>에선 아내를 소장수에게 판 복만과 팔려간 후에 도망친 복만 처, 그리고 그들을 찾으려는 소장수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복만은 소장수에게 아내를 팔고 그 돈으로 빚을 모두 갚은 후에 동네를 떠난 것이고 소장수는 돈 주고 산 복만 처가 없어져서 찾으러 다니다 '내'가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뭔가를 안다는 기대감으로 나를 위협한다는 내용이다.
<땡볕>은 김유정의 농민소설들을 농민의 몰락과정을 그린 연작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때 그 대단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덕순과 사산아를 배에 가진 채 13개월이나 살아온 아내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사산인지 모르는 두 사람은 아기가 안 나오는 것이 특별한 병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특별한 병은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해 주고 더구나 월급까지 주면서 조사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을 이고 아내를 짊어진 덕순이 병원에 도착해서 듣는 내용은 사산아를 수술해야 한다는 것과 수술을 안하면 일주일을 처가 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돌아서서 오는 지게 위에서 아내는 덕순에게 하나씩 유언을 한다.
이렇듯 간단하게 설명한 6편의 단편들은 내용상 계절이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이어져 있고 하나 하나 독립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시점도 일인칭에서 삼인칭까지 다양하고 주인공들도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농촌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과 농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일관되게 하나의 흐름을 만들 수 있었다. 즉 이 연극에선 위의 6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동시대 한 마을에 같이 살며 전체 이야기를 꾸려가는 식이다.
<봄봄>의 이야기를 큰 뼈대로 하여 나머지 작품들로 마을사람들의 삶의 동심원을 그려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기 위해 '나'를 순구라는 인물로 설정하고 해설자 겸 전체의 작품에 관여하는 광대로 뭉태를 확장하였다. 기실 뭉태는 <안해>에 잠시 스치는 인물인데 이 극에선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하게 된다. 삶의 고통과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데 치중하다 보니 갈등의 요소가 전면에 내세워져 다소 격앙된 감이 없지 않으나, 그런 갈등들이 마지막에 소설처럼 결말에 다다르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고, 재미있는 여러 감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사실 김유정의 단편에선 생생한 방언, 문어가 아닌 구어, 구연체라고 불러야 할 씹히는 언어가 압권이다. 그럼에도 각 인물들 사이에 통일성의 결여나 강조된 갈등양상, 지나친 나열식 구성으로 초점이 다소 산만해진 점은 다소 있으나 원작의 뛰어남도 있지만 그것을 같이 한곳에 뭉쳐 극화하고 풀어낸 각색 홍정미의 재치가 돋보인다. 일제 식민치하에도 우리 고유의 해학을 작품화해 낸 작가 김유정의 대표작 6편에 연극의 옷을 입힌 옴니버스 작품이다. 토속성과 해학이 가득한 원작의 하이라이트를 한 무대에서 편히 감상한다는 즐거움이 무엇보다 크다. ‘봄봄’에서 사랑하는 점순과의 결혼승낙을 받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 욕필 영감과 실랑이를 벌이던 순구가 엎치락 끝에 영감의 물건을 잡아당기는 장면 등 ‘소나기’, ‘산골 나그네’, ‘봄봄’, ‘아내’, ‘가을’, ‘땡볕’ 등 김유정의 명단편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김유정(金裕貞) 1908~1937. 소설가.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연희 전문 학교 문과를 중퇴하였다.
1935년에 소설<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외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9세에 폐결핵으로 죽기까지 불과 2년간에 30여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여 문단에 그 이름을 굳혔다. 그의 문학적 특징을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하여 인간의 욕망과 생활 풍속의 단면을 현실주의적 수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표작으로 <동백꽃> <산골 나그네> <봄 봄> <금 따는 콩밭>등이 있다.
<작품 세계 : 어두운 해학과 반전의 미학>
김유정은 1930년대 소설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주제인 가난을 표현함에 있어, 당대의 그 어떤 작가들보다도 탁월하고 냉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독특한 개성을 통해 형상화하여 독보적인 문학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김유정 소설의 특징은 향토적인 서정 속에 펼쳐지는 해학과 익살, 그 속에 스며 있는 삶에 대한 애잔하면서도 진지한 성찰, 그리고 결말 부분에 나타나는 극적인 아이러니의 미학에 있다. 그 짧은 소설들은 특유의 반어적 기법과 해학을 통해 당대 농민들의 혹독한 가난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특히나 계층 간의 모순되는 애정 관계를 훌륭하게 그려낸 <봄봄>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수작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당시의 한국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마름인 장인과 데릴사위로 들어온 머슴의 관계를 통해서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주인공인 '나'는 처가집에 들어가 3년 7개월 동안 새경 한 푼 받지 못하고 머슴살이를 한다. 그러나 마름인 장인 영감은 딸의 키가 크지 않은 것을 핑계로 성례를 시켜 주지는 않고 소작인처럼 부려먹기만 한다. 이것은 바로 지주를 대신한 마름이 소작인들을 착취하고 혹사하던 당시의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김유정의 다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 착취나 계층 간의 불협화음을 드러내 놓고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사위와 장인간에 벌어지는 대화를 중심으로 작가 특유의 해학과 토속적인 언어를 사용해 그러한 상황을 은유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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