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는 실어증 환자로 아내 한씨와 아들의 도움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면서 도시 영세민촌에서 과거를 버리고 살아간다. 그곳 사람들은 미싱사, 도배사, 청소원, 노동자 등 보잘것없는 벌이로 살아가지만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옮겨가는 소망, 전세방에서 내 집을 갖는 계획, 자녀를 교육시켜 미래를 기대하는 등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가난 때문에 주거, 교육 등 생활의 불편요소가 늘 따라와 그들을 우울하게 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가난이 싫어서 핏덩이를 버리고 가출하는 여인, 연탄가스에 목숨을 잃는 처녀, 뒷산 우범지역에서 청소년들이 벌이는 사고들이 그것이다. 한편, 청소원 부부는 수십 년의 근검절약으로 작지만 내 집을 장만하여 떠나고, 도배사 부부는 지물포를 차리는 그들의 계획을 향해 한발씩 다가가고, 편직기 가내업자는 집나간 아내를 오래도록 기다리면서 쌍동이와 병든 장인장모를 공양하는 따뜻함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때 천강일이라는 떠돌이 늙은 노동자가 이사 오면서 마을엔 이상한 활기가 돌고, 그의 기억에 의해 김재호의 실어증 이유와 사회에 대한 묵비권, 인생에 대한 묵비권이 어떤 것이고, 묵비권의 대물림은 어떤 것인가? 그것이 한인 간과, 한 가족과, 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밝혀진다.
사실주의 기법을 추구해온 작가 윤조병이 가난하고 힘겹게 현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서글프게 그린 세대극이다. 작가는 도시적 삶을 배경으로 변두리 영세민의 삶의 애환을 저변에 깔고, 현대사의 이면에서 정치적 억압에 의해 파멸해가는 한 좌절당한 지식인 가정의 비극을 집중 조명한다. 아버지 김재호는 기자 출신으로 국토건설대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은 후에 그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리고, 교사였던 어머니는 타의에 의해서 교직에서 물러나 지금은 구멍가게를 꾸려간다. 딸 은경은 운동권 학생으로 이목을 끌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데 아버지에 대해 오해를 하고 외면한다. 어느 날 동네에 나타난 떠돌이 노동자가 김재호를 알아보고 낡은 사진을 한 장 들고 와 국토건설단과 삼청교육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에게 기억을 일깨워주려고 애를 쓰지만 소용이 없다. 은경은 어머니의 간청으로 실어증에 걸린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집에 돌아온 은경은 함께 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고 집을 떠나려 한다. 달동네 밑바닥 인생들이지만 훈훈한 시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90년 전국연극제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현대는 부권(父權)이 상실된 시대’라는 말이 이제는 그다지 혼란스런 느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구절이 된 듯하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면서부터 부권이 사라졌다고 하기도 한다. 진정으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인가. 윤조병의 희곡 <아버지의 침묵>은 이러한 물음에 몇 가지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이른바 달동네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그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벼슬아치는 반장이다. 그는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화장실 사용권으로 위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곳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김재호이다. 그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의 딸 하나는 감옥에 가 있고, 둘째딸은 동네 젊은애들에게 윤간을 당한다. 그의 아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김재호는 왜 말을 하지 못할까. 그 답이 새로 이사 온 젊은이에 의해 주어진다. 글쓰는 직업을 가졌던 김재호는 국토건설대, 삼청교육대에서 고통을 당했고, 말을 잃어버렸고, 그의 가족들은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둘째딸이 반장의 아들을 비롯한 이웃 청년들에게 윤간을 당한 뒤, 재호의 가족은 이사를 간다. 그들에게는 적당히 머물 곳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적당히 머물 수 없는 까닭은 아버지가 제 노릇을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 권력에 의해서 부권이 없어진 때문이다. 김재호는 착오적 시대의 희생물이지만 말하지 못하니 그걸 분명하게 증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답답하다. 이 작품을 연극 무대에 올리자면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까 점검해 보기로 하자.
첫째, 이 작품에서는 작품을 끌고 가는 갈등이 없다. 등장인물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대화에 있어서 난제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배우들끼리 연기하기도 어렵고, 관객들에게도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상적 삶은 눈에 띄는 갈등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적인 연극에서는 영웅적 삶이 많이 다루어진다. 이렇게 갈등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감동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앙상블 연기가 필요하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와 같은 앙상블이 있어야 지루한 느낌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이 작품에는 핵심적인 성격이 없다. 다시 말하자면 이 작품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럭저럭 사는 사람들의 그런 저런 이야기를 얘기하는 연극에서 시종 일관 배우들의 목소리에 높낮이가 없이 연기가 지속된다면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들이 많아질 것이다. 셋째, 무대 세트의 고정성에서 오는 지루함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무대는 여러 세대가 좁은 공간에서 서로 쳐다보고, 벽 너머로 말을 하면서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리고 한씨와 은경이 만나는 면회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들은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회색 공간이다. 90분 이상 무대 위에 배치되어 있는 공간에 변화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가 있어야 관객들의 관심을 붙잡아 둘 수 있다. 넷째, 결말의 침통함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적은 지금까지 얘기한 것과 서로 충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의 결말이 갖는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결말의 침통함은 이 작품에서 강조되어야 할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한씨 가족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그네들이 가고자 하는 곳에도 인간적인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거기에서도 아웅다웅 살아야 하는 인간들, 권력에 의해서 침해를 당하고서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힘없는 서민들, 윤간을 당하고서도 어쩔 수 없는 여자들. 그들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떠나가는 행동을 느릿느릿하게 하고, 비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서 관객들의 가슴으로 슬픔이 배어들어가게 해야 한다.
셸던은 관객들이 극장에 가는 이유를 무언가 배우기 위하여, 기분을 전환하기 위하여, 누군가와 즐기기 위하여 등등으로 지적하고 있다.<아버지의 침묵>은 배우고, 전환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느낄 수 있는’ 공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침묵하는 아버지를 증언하는 방법이다.
작가의 뒷소리 - 윤조병
1. 동기가 된 한 통의 낯선 여인의 편지
이 작품의 구상은 어느 낯선 여인의 편지를 한 통 받는데서 시작된다. 이름이 낯설고 주소가 낯설었다. 인쇄하듯 반듯하게 깨알처럼 박힌 글씨 또한 낯설었다. 유행병처럼 번지는 소위 행운의 편지가 나돌아 다니는 때라서 그냥 버리려다가 혹시나 해서 위험물을 분해하는 기분으로 현관 밖에서 조심스레 겉봉을 뜯었다. 다행히 행운의 편지는 아니었다. ‘아저씨,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편지는 뜬금없이 이렇게 시작했다. ‘멍청이처럼 인생을 실패로 끝내야 하나요?’ 이어서, ‘잡혀간 우리 하나는 어떻게 되나요?’ 다시 이어서, ‘남편의 병을 고칠 수는 없나요?’ 문장마다 물음표를 달고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것이 여간 정성을 쏟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열한 줄의 의문문이 오리 떼처럼 계속되다가, ‘이렇게 비관만 하고 있어야 하나요?’
열두 번째의 질문을 던져놓고 편지는 시작처럼 뜬금없이 마침표를 찍었다. 그 편지를 받은 이후, 나는 편지 속의 한 구절인 ‘도시 영세민의 주름살이 펴지는 세상은 오나요?’ 하는 물음에 대해 골똘하게 되었다.
2. 수도국산 똥 고개 마을에서 얻은 동기 1, 2, 3.
수소문해서 그 편지의 주인공이 살고 있을법한 인천 수도국산의 속칭 똥고개마을을 찾아갔다. 이 땅은 동대문 밖 시구문이 시체를 버린 곳이었듯 이름 그대로 똥을 퍼서 언덕고개에 내다버린 그런 버려진 땅이었다. 그 후 그곳을 자주 드나들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얻어들었는데, 그것들이 작품 집필 동기가 되었다. 그걸 세 가지로 집약하면 이런 것이다. 하나는, 처녀 여공「하나」의 죽음이다. 도시 변두리 영세민촌 이층 다락방에 세 들어 자취를 하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돼서 죽은 것이다. 이 사건은 허물어진 블로크 담과 깨진 슬레이트 조각이 널려있는 고샅을 질척거리게 한 진눈개비가 잠시 멈춘 오후에 벌어졌다. 가족들은 딸「하나」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집주인은 집이 낡기는 했지만 겨우내 쓰던 방인데 일부러 끌어들이지 않으면 연탄가스가 방으로 들어갔겠느냐 했다. 시체를 검사한 병원에서는 사인은 어떻든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것만은 확실하다고 했다. 주변을 조사한 경찰은 다른 이유가 발견되지 않으니 자살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하나」의 대학 동기들과 여공 동료들은 누군가가 그 험한 일을 꾸몄다고 했다. 어떻든 죽음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이런저런 소문이 골목길을 맴돌면서 사람들을 답답하고 불안하게 했다. 둘은, 해방이후 우리에게는 엄청난 드라마가 전개되었다. 사상이념 드라마, 분열 드라마, 전쟁 드라마, 휴 냉전 드라마, 장기독재 드라마, 혁명 드라마, 경제성장 드라마, 재벌 드라마, 빈민 드라마, 민주화 드라마 등 한없이 열거된다. 그 현장에서 만난 한 구멍가게의 중년부부는 위에 열거한 드라마의 희생자로 살고 있었다. 천막집, 깡통이나 루핑 판자 집, 블록집이 죄 무허가 건물이듯 그들의 삶도 허가받지 못한 무허가 삶이었다. 이들 부부는 정권이 부정한 드라마를 호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을 개조시키고, 인생을 재생시켜서 허가를 내주겠다는 발상에서 벌인 또 다른 드라마에 의해서 육체와 영혼이 파멸되어갔다. 그래서 인생의 오감을 닫아야 했다. 기쁨의 맛도 슬픔의 맛도 잊어야 했다. 언어를 잊어야 하고 글을 버려야 하고 생각을 멎어야 했다. 셋은, 우리는 묵비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외부의 부당한 추궁에 대항해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또 다른 두 가지의 묵비권이 강요되고 있다. 하나는 공포나 도피적 묵비권이고, 다른 하나는 부당한 외부를 보호하는 묵비권이다. 이것은 사회에 대한 묵비권이고, 인생에 대한 묵비권으로 오해된다. 그런 묵비권을 훈장처럼 달고 살아야하는 중년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의 묵비권이 실어증으로 발전했다고도 하고, 실어증 자체가 질병이 되어버렸다고도 했다. 그의 묵비권 혹은 실어증은 이웃에게 많은 궁금증을 갖게 했으며, 그 궁금증만큼 많은 의미를 드러내기도 했다.
3. 수도권의 비탈동네 고샅 무대
그래서 그것들을 풀어보기로 작정을 하고 수도국산 비탈동네의 가파르고 지린내 코를 찌르고 숨을 통해 폐 깊숙이 침투하는 동내 고샅을 수없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전쟁 실향민, 이농민, 도시빈민 들이 도시계획에 밀리고, 환경정리에 밀리고, 새마을운동에 밀리고, 땅 장수에 밀리고, 권력에 밀리면서 산꼭대기에 몸을 감출 밖에 없는 현실과 사람들을 만났다. 오를 때마다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어디, 여기뿐인가. 그래서 수도권을 돌아보기로 하고 몇 날 몇 달을 여기저기 찾아 헤맸다. 서울은 모래내, 북가좌, 수색, 사당, 가락, 석촌, 창신, 홍은, 돈암 까지도 그런 실정이고, 서울에서 쫓기면 안양, 부천, 의정부, 구리, 고양 그리고 인천 등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농촌 대 탈출극이든, 자본 지주에 의해 쫓겨나든, 자연적 빈민이든 그들은 모두 고달프고 아픈 삶의 불확실한 정체에 대항해서 온몸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고발과 저항과 투쟁으로 내다르고 싶었다. 그러나 작품을 쓰는 것이고, 편지를 보낸 그 낯선 여인의 무언의 간절한 부탁도 있어서 토착적이면서 시대적 주제가 되는 여러 문제를 소문만 확대 해석하는 편향적 시각이나 소재주의에서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연적 심성과 자유스러운 사회적 귀속감을 갈구하는 시선으로 그리기로 했다. 다시 말해서 비극적 현실일망정 미래를 바라보는 건강한 인생을 그리는데 창작의 중심을 두기로 했다. 현실을 고발하되 고발자체보다는 소외된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 여인과도 무언으로 단단하게 약속을 했다.
4. 보완집필과 서울 초연
그때 마침 극단 성좌에서 작품 부탁이 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문예진흥기금의 제작비 도움이 필요해서 창작활성화에 넣었다. 그러나 초고가 미숙해서 선택되지 못했다. 이어서 보완작업에 들어가 지금 대본 장면의 짝수 부분을 다시 써넣었다. 그 결과 선택이 되어 나는 작품료 전액을 받고, 극단은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아 공연하게 되었다. ‘아픈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라는 연출의 말을 달고 성좌 대표 권오일이 연출을 맞고, 제작 전 운, 미술 송관우, 무대 강경열, 조명 정수환, 무감 황남진 등 여러 스탭이 참여하여 일천구백구십년 오월에 서울 문예회관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그때 원미원, 윤주상, 이일섭, 김익태, 최동준, 이정성, 박현숙, 김미경, 김명국, 박수진, 이경희 등의 연기자들이 무대에 섰다. 이 공연에서 작품에 대한 해석, 핵심인물, 연기법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넘겨주었으니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보고 언젠가 스스로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면서 서운함을 달랬다.
5. 전국연극제 참여를 위한 자작연출
현장을 답사하고 구상하고 집필하는 과정을 전후해서, 전국연극제 참가를 위해, 극단 미추홀에서 작품 선택과 연출 등 전권을 포함한 작업 요청이 들어왔다. 이때는 인천시립극단 창단이 결정되어 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였으며, 이미 극단 성좌와 약속한 이 작품에 집중하던 터라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미 단체장으로 위촉을 받았으며 단원모집공고, 원서접수 등의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었다. 단체를 창립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신경을 쓰는 일이 많았다. 몇 가지 절차에 이어 곧 단원 공개전형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이 일까지 맡는다면 구설이 있으리라는 예감이 다가왔다. “당신은 욕심이 너무 많아서 지역 연극까지 맡아서 광기를 부린다.” 그간 많이 들어온 말이다. ‘도시의 나팔소리’ ‘휘파람새’ ‘모듬내 뜸부기’는 자작연출로 참가해서 좋은 성과를 얻기도 하고, 실패도 했으며, 타 지역에도 신작과 기왕의 작품을 주어서 출품하는 등 당연한 생각으로 활발하게 움직였더니 여기저기서 내뱉는 말이었다. 이번에도 또 그런 말을 듣게 될 것이다. 하기 쉬운 말, 그저 그런저런 말이지만, 자주 듣게 되면 아픔도 오고 두려움도 온다. 그래서 무척 망설였다. 극단 미추홀에서 집요하게 요구하지 않으면 맡지 않을 생각이었다. 연극제가 경쟁이니만큼 신경적 반응이 있는 건 당연하다. 농담으로 던져오는 말처럼 자칫하다가는 그간 쌓아온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 부담감이 커서 힘도 들었다. 이제 곧 시립극단에서 마음껏 연극의 꿈을 펼칠 텐데 굳이 주경야독할 것까지 없잖느냐, 는 생각도 들었다. 편안하게 걸어가자는 스스로의 유혹이 강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극단 미추홀에서의 요구가 다른 욕심보다도 함께 작업을 하면서 배우고 싶어 하는 순수한 마음이라고 하면서 간곡했다. 체면, 농담, 부담, 바쁨 따위를 극복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선배로서의 경험이 필요하다는데 다른 어려움 때문에 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 작업을 맡은 이상 작품을 선택해야 했다. 너무 망설인 탓에 신작을 준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존의 작품으로도 일정이 빡빡했다. 그래서 부담스럽긴 해도 이 ‘아버지의 침묵’을 선택했다. 이제는 지역 극단에서도 내 지역의 소외된 부분에 대해 관심을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앞에서도 잠간 언급했듯 이 작품의 무대와 인물과 사건은 인천 수도국산의 가파른 비탈에 자리 잡은 어느 달동네에서 얻어낸 것이 아니던가. 작품료 부담도 없으니 극단의 제작비도 줄어들 것이다.
6. 신문지를 찢고, 벙어리를 만들어 수화(手話)하고!
연출을 하면서 설정한 중심축은 현장성이었다. 대본이 현장을 동기로 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무대도 현장의 정서를 찾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했다. 현장에는 확연하게 드러나는 인물과 사건이 있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앙금 같고 안개 같은 분위기가 있다. 김 재호는 실어증환자로 아내 한 씨와 아들의 도움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간다. 그는 도시 영세민촌에서 과거를 완전히 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곳 사람들은 미싱, 도배, 청소, 막노동 등 보잘것없는 벌이로 살아가지만 월세 방에서 전세방으로 옮겨가고, 자녀를 교육시켜 미래를 기대하는 소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을 우울하게 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가난이 싫어서 핏덩이를 버리고 가출하는 여인, 연탄가스에 목숨을 잃는 여공, 뒷산에서 청소년들이 벌이는 사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청소원 부부는 근검절약으로 내 집을 장만해서 떠나고, 편직기 가내업자는 집나간 아내를 기다리면서 쌍둥이와 병든 장모장인을 봉양하고 있다. 천강일이라는 떠돌이 늙은 노동자가 이사 오면서 마을에는 이상한 활기가 돌고, 그의 기억에 의해서 김 재호와 그의 가정의 내막이 밝혀진다. 김 재호, 한 씨, 은경, 우경이의 현실은 사회의 질기고 질긴 가시덩굴에 엮여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살아가지만 또 그 때문에 그들은 갈등의 늪에 빠져야 한다. 이런 여러 인물과 사건이 인간 경험에 의해서 극적 의식으로 재창조되도록 연출의 방향을 설정했다. 더구나, 무대장치를 성좌의 것을 빌려야하는 입장이고 보면 연출구성에 차별이 있어야 했다. 제작비 때문에 사실주의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장치 없이’ 혹은 마대나 가마니장치로 갈까하는 고민을 하다가 한국 무대 측에 사용료와 설치비를 내고 빌려 쓰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여러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현장에 산재하는 개인의 움직임과 집단의 움직임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탄력을 유지해서 현실고발의 시대적 주제와 소외된 삶의 아픔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병행시켰다. 동작의 시각화, 리듬의 친숙, 마임의 극화를 위해서 회화 요소, 무용 요소, 음악 요소, 구음코러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실어증 아버지의 침묵 연기, 미소 연기, 몸짓 연기, 토막 대사 연기와 한 씨의 손짓 연기, 긴장과 이완의 춤, 은경의 손과 발의 연기에 대해서 부단하게 신경을 썼다. 인물들의 일상적 버릇을 만들었는데, 특히 신문 찢기 같은 행위미술, 수갑 찬 손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두드리는 비감한 동작 등을 사용하고, 그런 맥락에서 연기자의 육성으로 심연의 소리(음악)를 끌어냈다. 철책 대신 수갑을 채워 무대에 드러냄으로서 연기 전달의 상승적 악센트를 두었다.
7. 공연 성과와 단원들의 치열한 정신
전국연극제가 그 전통을 수립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연극 환경은 열세하기 이를 데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연기자와 스탭이 시간을 쪼개서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연습해야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연기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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