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진희 '슬푸다, 이도 꿈인가 하니'

clint 2024. 1. 7. 13:49

 

 

인간들이 지나치게 잘 먹고, 잘 살던 어느 날, 하늘에 태양이 사라졌다.

땅이 솟아오르고 하늘이 꺼졌다. 탐욕스런 인류가 종말을 맞은 그때,

몇 천 년 전에 가라앉았던 혼돈의 몸뚱이가 떠오른다.

살아남은 이들은 혼돈의 몸뚱이에 기어올라 마을을 만든다.

무질서한 마을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해골노인은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 사람들을 이끈다.

해골노인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국솥에 넣고 끓여

마을 사람들 모두 나누어 먹게 하였다.

어느 날, 여자가 우물에 빠져 죽고 하늘에 달이 사라졌다.

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아는 이들이 혼돈의 몸뚱이를 찾아온다.

 

 

 

한국형 판타지 연극, 그 신화의 시작.

오래 전, 이 땅에는 사흥(四凶)이라 불리는 신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흉측한 신은 눈도 귀도 코도 없는 혼돈이었다.

어느 날, 사흉들은 하늘님의 꼬챙이를 훔쳐다 혼돈이에게

, , 코를 뚫어 주었다.

혼돈은 뚫린 눈, , 귀로 세상 온갖 더러운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괴로워하다 죽어버렸다.

결국 혼돈의 몸뚱이는 바다 깊숙이 버려졌다.

 

 

작가의 글 박진희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연극을 하면서 함께 하는 작업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작업은 개인적인 작업이기에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 늘 의문이었습니다. 특히나 희곡은 공연화 과정을 거쳐야지만 완성될 수 있는 글이기에 늘 조바심 내는 시간을 가져왔던 거 같습니다. 이번 창작 희곡 작품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당선되면서 제가 가진 조바심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 던 거 같습니다. 또한 단순히 글을 쓰는 것에서 나아가 현장 작업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지식들을 많이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설화를 바탕으로 희곡을 완성해 나가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이원기 튜터 선생님을 통해 희곡을 조금 더 연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인물의 성격을 입체화 시키는 방법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설화가 과거의 것만이 아닌 현대의 연극무대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창작희곡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이원기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박진희 작가

 

튜터의 글 - 우리 것에 대한 사랑, 그 긴 여정의 출발 : 이원기(극단 전원 대표, 청운대 교수)

제목을 대하는 순간부터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전율이 느껴졌다. 우리 것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글의 면면에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설화이고 무속적이고 숙명적인 삶…. 이러한 것들은 무한히 매혹적이지만 극화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소재이다. 가능한 한 우리 것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최대한 잘 도와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분명히 새로운 목소리이다. 잘만 인도한다면, 그렇다. 나는 한편으로는 루이지 피란델로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1923년 파리의 연극계에 몰고 왔던 충격이나, 존 오스본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로써 1950년대 앵그리 영맨의 돌풍을 몰고 온 사실을 떠올리고 있었고 (솔직히, 1953년 초 바빌론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던진 핵폭탄 같은 위력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향가나 고려가요를 대할 때 느껴지는 우리 민족만이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흐릿한 안개 속 저편에 어른거리는 절세의 미인을 마음만 안달복달한다고 어찌 손쉽게 만날 수 있으랴. 나의 천학비재함과 공교롭게도 주어진 기간 동안의 제반 여건으로 인하여 머릿속에 흘러가는 그 빛나는 대상을 완벽하게 육화시키는 작업을 최상의 상태로 이끌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베케트 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집필 중일 때 했던 말대로 진행 중인 작품이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한국 드라마의 한 획을 긋게 될 걸작이 되리라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상의 모든 걸작들이 그랬듯이, 실체도 없이 버티고선 저 거대한 존재를 완전히 포획하기 위한 고심참담하고 참절처절한 사투를 숙명인 양, 행복인 양 여기시라고 왜냐면 걸작은 걸작이 될 수밖에 없는 삶을 통한 또다른 감동적인 드라마를 원하기에 그것은 어쩌면 다시 돌아오면 스쳐 지나가는 던진 말 한마디를 믿고 길고 긴 눈물의 세월 끝에 극적으로 피워 올린 지상의 유일무이한 꽃한송이 일지도 모른다. 아니, 피와 땀과 눈물 외에는 원치 않는 걸작의 오만함에 적수공권으로 담대하게 맞서는 견인불발의 자세만이 필요한 것이다. 작가에게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을 거듭 밝 히며, 모쪼록, 이대로 돌아서지 마시고 한층 더 애정 어린 마음으로 새로이 다가서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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