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희곡 1984> - 극작 워크숍에 수록된 작품이다. 한상철 교수가 지도했던 것으로 머리글도 썼고… 여기에 실린 이 최인석의 <도둑 천가>를 읽었고 읽는 도중에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떠올라 최인석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았는데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작이며 제8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초연되었던 극단 민예극장의 <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의 밑 대본인 것이다. 장소와 등장인물, 특히 초고의 다소 거친 듯한 대사도 일부가 잘 가다듬어져 있어, 대한민국 문학상도 수상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배경은 일제시대. 신의주 북쪽 압록강 가까운 조용한 작은 마을
외면적으로는 큰 탈 없이 조용하게 살아온 것처럼 보이던 이 마을에
대규모의 일본군이 투입 되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일본군이 투입된 이유는 이렇다. 얼마전, 이 마을에 한 명의 광복군이
침입했었고 그는 부상을 바로 이 마을에서 치료받았으며,
나중에는 광복군 활동자금으로 금괴까지 이 마을에서 제공받아서 도주하였는데,
일본군들이 그를 체포하여 이런 모든 사실들을 자백 받았다는 것이었다.
일본군들은 만일 그 광복군과 내통한 자가 자백하지 않을 경우에는
마을 주민들 전원을 총살하겠다고 위협한다.
공포와 폭력이 이 마을을 뒤덮은 가운데, 마을 주민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나타내며 극도로 비인간화 되어 가고,
평소의 조용한 외면 밑에 음험하게 감춰져 있던 비 인간성과
잔인하기까지 한 이면이 노출된다.
동네 건달인 천도욱은 외견으로 고아이며 노름에 술에
난봉꾼으로 알려 있고 입바른 소리로 마을 훈장이나
진사에게 썩 좋지만은 않은 껄끄런 인물이다..
진사와 훈장은 이 도욱을 지목해서 범인으로 내세워
총알받이로 삼자고 하나 대부분 사람들은 도욱이가 의리 있고
남 도울 줄 아는 사내라고 옹호한다.
민진사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하기만 하다..
동네사람 들을 일일이 붙잡고 땅을 주겠다고
설득도 하고 협박도 하나 죽음 앞에선 모두 발을 뺀다.
결국 이런 민진사의 행태를 전부 지켜보던 도욱이 민 진사를 우롱하나
그 다음날 일본군 앞에서 손들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다.
그리고 부패한 마을 사람들과 일본에 대한 욕을 하고는
독립군의 권총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결한다.
인간척도의 가치기준을 어떤 것으로 어떤 방향에서 제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참으로 까다롭다. 인간이 인간 답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여러 조건들이 그것들 나름대로의 보편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상황을 결정지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살아 가는데 꼭 필요한 만큼의 지식이나 금력이나 권력 등등의 구조가 평형을 잃거나 주관화 될 때에는 분명히 하나의 폭력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란 말이다. 폭력은 물리적인 폭력이나 불가시적인 폭력 포함- 필연적으로의 명백한 흑백논리구조를 가지며 나름대로 白의 주장을 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고 그를 구사한다. 이 점이 바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으로 심지어는 흑의 편에서 있는 사람조차도 白의 폭력이 타당한 것처럼 믿는다. 이같이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속성을 남에게까지 강요하여 동일화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바램은 어떤 형식의 폭력으로 변하고 이 폭력은 주위의 그와 비슷한 모든 처지의 군상들에게도 행해진다. 일찍이 인간척도의 가치기준이 현대와 같이 왜곡되고 모호했던 때는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원하는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주위의 평화가 허물어진다 해도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거개의 우리들은 자신 나름대로 인간을 가늠하는 올바른 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설사 조금 구부러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노력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 여지가 좀 더 좋은 어떤 몇가지의 무엇으로 채워질 때 바람직한 우리들의 관계가 이루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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