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헨리크 입센 원작 하수민 재창작 '슈미'

clint 2023. 2. 11. 14:30

 

 

1890헤다 가블러 2021 서울의슈미 고전을지금, 여기동시대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슈미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 임용을 앞둔 경만은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이들의 친구 애경은 슈미와 경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서 깜짝 귀국한다. 그리고 유완이 영국에서 책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곧 나올 후속 작은 자신이 집필을 도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도규는 슈미와 경만을 호시탐탐 자극하며 슈미를 손에 쥐려 하는데...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슈미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녹아내리는 빙하처럼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신혼을 축하하는 친구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슈미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감정에 빠져들게 되는데... '포도 잎사귀를 머리에 장식하고 디오니소스처럼 아름답게'  '스스로 빛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사랑해' 긍정을 말하는 시대, 여기 타인과 자신의 사랑마저 부정하는 '슈미' 있다. '슈미'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존재 이유와 가치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건 긍정일까? 사랑일까? 아니면 아름다움일까?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은 불안과 광기가 흐르는 디오니소스 축제 속에 있는 아닐까.

 

 

여러 욕망 중 핵심 제재는 슈미와 유완의 그것이다. 유완이 꿈꾸는 완전한 정신적 자유와 슈미가 꿈꾸는 홀로 완전한 인간 개념에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진리`에 대한 고찰과 닮았다. 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과 집착은 결국 좌절 속에서 뒤틀리고, 모순을 낳는다.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자율적 결정에는 배면의 욕구가 존재하는 즉슨 욕망에 추동되는 불완전한 것이라면, 완전한 채로 종결될 수 있으며 원초적 본능을 완벽히 배신하는 것으로서의 결정, 그 어떤 욕구에도 기인하지 않은 철저한 이성적 명령으로서의 선택인 자살이야말로 모든 욕구로부터 초월하는 자주(自主)이자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선택, 곧 인간의 최고 자유라는 이 뒤틀린 개념은 진리에 대한 집착에서 파생되는 모순이다. 논리적 완벽을 추구하다가 보면 실패에 봉착하거나, 모순으로 도피하게끔 되어 있다. 결국 아름다움에 대한 각자의 집착, 갈증은 모두를 파멸시켰다. 경만은 가질 수 없는 사랑인 슈미를 집착함으로써, 애경은 타인에게서 얻은 구원의 허상을 집착함으로써, 유완은 완전한 정신적 자유라는 불가능을 집착함으로써 서서히 파멸해갔고, 도규는 지배와 피지배의 욕망을 탐닉하며 기꺼이 추악한 자가 되었다. 이 갈증에 디오니소스적 광기, 술 취한 신의 축복은 파멸을 재촉하는 방아쇠가 되어준 것이다.

 

 

모두의 마음속에 욕망과 집착, 그리고 좌절과 파멸의 불길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할 때쯤 파티는 열린다. 디오니소스적 광기, 술 취한 신의 축복인 방종과 무질서 속에서 본격적으로 그들은 길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술은 최소한의 이성적 규제와 망설임을 풀어헤쳐 버리는 것으로, 부정적 이미지인 혼돈에 더불어 긍정적 이미지인 자유를 상기시킨다.

물론 최소한의 규제와 책임이 제거된 자유는 방종으로 불리는 것이 보통이나, `지금` 고통스러운 자에게는 이 모든 굴레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만드는 디오니소스의 방종이 곧 아름다움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기도 한 것, 욕망이 일으키는 갈증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혓바닥 위에 닿은 달콤한 축복이었을 것이다. 애경과 유완이 두 손으로 직조해가던 구원은 하룻밤의 광기 아래 부서졌다. 갈증과 포도주, 이것은 동서고금의 유구한 클리셰인만큼 우리 모두의 일이기도 한 것.

결국 유완과 슈미는 모두 죽음을 맞았다. 슈미가 허황한 혓바닥을 놀리며 찬미하던 아름다움이란, 그녀의 최후에 걸맞은 이름이었을까. 그녀는 세상만사에 지루함을 느끼는 스스로를 두고, 이미 죽은 자이자 스스로만을 사랑하는, 스스로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자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생계를 위한 그 무엇도 짓지 않고, 신봉자들의 제물을 받아먹고 사는 그녀는 왕이었을까, 아니면 기생하는 자였을까.

그녀의 권태로운 행복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다른 이의 기꺼운 헌신에 기반하였음을, 그녀는 의식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은 아름다운 자신에게 원래부터 주어지던 것. 그녀에게는 공기 같은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맞은 결말은 그녀의 권태와 나태, 그리고 정신적 허영이 이끈 트랩이지 결코 아름다움으로 불리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