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정상을 향해 달리던 유망한 배우 '블랜취 헛슨'에게 어느 날 사건이 발생다. 우아하고 매력적이던 '블랜쉬'는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구의 몸이 된 것이다. 제인 역시 아역배우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블랜취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였지만, 이 재능있고 아름다운 자매에게는 질시와 애증이 겹쳐 있었다. 제인 만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지독한 편애는 결국 제인에 대한 블랜취의 증오심을 키워갔고 제인은 제인대로 뒤늦게 시작한 언니의 배우생활이 자기보다 월등하게 탄탄대로로 향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그 사건 이후, 불구가 된 언니를 돌보면서 동생은 죄책감으로 당연히 배우로서의 길을 포기한 채 살아가야 했다. 세상과는 유폐된 채 헐리웃의 한 저택에 칩거해있는 이 자매는 이제 잊혀진 배우들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복고풍의 리바이벌 붐이 일면서 텔레비젼에서 방송되는 옛날 영화가 다시 이 자매의 어둡고도 한때 찬란했던 기억을 불러 일으켜 놓은 것이다. 언니 블랜취의 전성기 때 영화가 방영되자 올드팬들은 편지에 꽃다발이 줄을 이었고 동생 제인은 블랜취에게 횡포를 가하면서 충동적으로 자기도 어릴 때 인기를 모았던 뮤지컬을 리바이벌 하겠다며 일을 벌인다. 제인의 광기는 점점 더 심해지고 식사도 끊긴 채 감금당한 블랜취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가혹하게도 블렌취를 돌보던 간병인마저 살해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공포로 치달아간다.
사이렌 소리와 정적이 교차하는 긴장속에서… 어릴 때 장롱안에 숨어서 놀이를 했던 것처럼 자매는 탁자 밑에 숨어서 과거를 돌이켜 본다.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한의 위기 앞에서 언니 블렌취는 비로소 고백한다. 옛날 그 사건의 진상을…
그러자 어디선가 어린 시절의 음악소리가 스며든다. 동생 제인의 눈에 아버지의 환영이 드리우고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섰던 것처럼 제인은 스커트 자락을 곱게 들고 무대로 향한다. 그 잔혹하고 암울했던 인간들의 한 이면을 드러낸 '현실'이라는 무대를 떠나기 위해.
재창작의 글 – 정복근
오랫동안 사귀어온 아래 친구인 연출가 한태숙씨가 다시 연극을 하게 되었다. 한태숙씨는 내 꾐에 넘어갔다고 하고 나는 나대로 사람을 유혹해내는 내 유인술을 자랑하며 농담하지만 사실은 일상에 파묻혀 누르고 살던 본인의 연극에 대한 열정이 씨가 되었을 것이다. 정교하고 치밀한 심리극 혹은 추리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언젠가 한번 본 미국영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영화의 대본이 사실은 희곡일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우리 무대에 올리는데 대한 의미와 가능성을 타진해보면서 둘이 바쁘지 않게 몇 년을 잘 노닥거리며 보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본인은 살금살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나 본데 막상 기획단계에 접어 들더니 나한테 덤태기를 씌우고 말았다. 각색을 안해주면 연극을 안 하겠다는 생떼였는데 내가 각색을 저어한다는 것을 미리 알아 생떼의 농도가 더 진했던 것 같다. 나는 마지못한 듯 인심을 써가며 응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새로운 연출가로써의 한태숙씨를 경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두 사람의 은퇴한 여배우들의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꾸며보는 재미도 있을 듯해서 생색을 내어가며 어울렸다. 허술한 점이 보이지 않는 정교하고 치밀한 무대. 연극적인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보자는 연출가의 취지에 참여하신 분들 모두가 기꺼이 동의해서 그는 일이 자연스럽고 수월하게 준비되었던 것 같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간에서 그만두기는 쉬워도 하던 일들을 접어두고 중간에 다시 뛰어들기는 정말 어려운 연극으로 돌아온 연출자가 이번 무대를 시작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연극평 – 김미혜
학전 소극장이 개관 3주년 기념기획 시리즈 두 번째로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헨리 페럴 원작/정복근 재창작/한태숙 연출)를 무대에 올려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이 무대 또한 배우들을, 아니 스타들을 소재로 한 스타들의 연극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5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연기력을 갖고 그에 걸맞은 인기를 누리는 박정자, 손숙씨를 기용한 이 작품은 적어도 관객 동원 면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작품 자체의 형상화는 단조로웠고 소설의 각색이 갖는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작품은 시작과 끝이 같은 틀 형식을 갖고 있다. 살인을 한 동생 제인 헛슨(박정자 분)을 감옥에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블랜치 헛슨(손숙 분)이 회상하는 과거가 작품의 내용을 이룬다. 제인과 블랜치 자매는 모두 배우였다. 제인은 아역 배우로 일찍부터 인기를 누렸고 집안에서도 언니를 제치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블랜치는 성인이 되어 배우가 되었지만 제인 못지않게 정상을 달리고 있던 중 어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의 신세를 지게 된다. 이 사고가 자신의 취중 실수로 일어났다고 믿는 제인은 죄책감 때문에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언니를 돌보면 지낸다. 여전히 우아하고 매력적인 블랜치와 이제 뚱뚱하게 살이 쪄 보기 싫게 되어버린 제인은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채 헐리웃의 저택에서 칩거생활을 한다. 헌데 텔레비전에서 시리즈로 방영되는 옛 영화의 리바이벌이 이 자매의 화려했던 과거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영화는 주로 블랜치가 출연했던 것으로 그녀에게는 올드 팬들의 편지와 전화가 쇄도하고 질투심에 찬 제인은 언니를 학대하며 광기에 가까운 히스테리에 싸여 자신의 옛 뮤지컬을 리바이벌하겠다고 일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그야말로 미묘한 애증에 가려진 자매의 관계가 드러난다. 제인은 언니를 방에 가둔 채 음식물마저 주지 않다가 자신의 음모를 알게 된 가정부 바바라를 발작적으로 죽이게 된다. 뮤지컬 배우였던 어릴 때에서 정신 성장이 멈춰버린 것처럼 보이는 제인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언니의 도움을 청하고 이때 블랜치는 옛날의 사고가 자신보다 많은 것을 차지한 동생에 대한 질투와 복수로 자신이 고의적으로 저지른 것임을 밝힌다.
내용에서 보듯 이 작품은 상당히 심리 추리적인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살인을 구성의 거의 말미에 두지 말고 첫 부분에 두어 동기를 설명하는 회상이었다면 작품의 심리적이고 추리적인 요소가 부각되어 단조로움을 상쇄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작중에서 블랜치가 말하고 있듯 "사람들은 스타를 너무 사랑하고 너무 미워한다"는 사회적인 현상도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 더 천착되었더라면 오늘날의 사회문제 중 하나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작품의 맨 끝부분에 블랜치의 입을 빌어 작품의 주제를 설파하고 있는 것은 꼭 피했어야 할 대목이다. 이는 상징과 신호들의 집적물로서 주제가 선명해질 때 특히 연극의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의상 덕으로 뚱뚱하게 중년이 된 제인을 창조한 박정자는 가끔씩 그녀 특유의 오버 액션도 나왔지만 치기어린 순진함과 그로테스크한 광기를 잘 표현했다. 제인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교활한 블랜치로 분한 손숙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부담으로 제대로의 연기를 펼 수 없는 핸디캡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몸 연기가 어려웠다면 언어의 연기로라도 제인보다 훨씬 많은 콤플렉스에 싸여 있는 블랜치의 이중성은 드러났어야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언어 연기는 평면적이었다. 그 때문에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그녀의 실토는 의외이기도 했고 현실감 있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매에게...」는 몇가지 덕목을 보여 주었다. 헐리웃에 있는 저택의 내부를 보여준 박동우의 무대는 고풍스럽고 우아하게, 그리고 극의 기능을 위해서도 잘 꾸며졌고 이층집의 구조와 인물 중 한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있음으로 해서 표현에 무리가 오는 대목이 암전과 분위기를 살리는 음악으로 잘 처리가 된 점 등이다. 또한 관객층의 대종을 이룬 중년층, 특히 주부들에게 예술 향유의 계기와 시간을 마련해 준 점도 큰 덕목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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