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사방의 벽과 창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들고나는 문에 의해 그 공간은 완성된다. 의식하든 못하든 우리의 삶은 바로 그 공간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의 일상에는 내외면의 무수한 공간이 존재한다. 시스템과 수많은 장치들... 그리고 인생관이니 세계관이니 하는 것도 우리의 또 다른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1막은 한 남자의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방과 내외면의 풍경들... 그의 공간으로 끝임없이 투여되는 일상... 중파, 초단파로 제단된 그의 생활... 절대 사절 되지 않는 그의 신문... 궁극적으로 그의 문은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닫히거나 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2막. 꿈속의 장면처럼 보여지는 화장실 밖과 안에서 안과 밖을 두고 서로 다툰다. 없었던 문이 생김으로 인해 경계가 생기고 그런 문은 더 이상 통과라는 의미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작품은 시간과 공간에 순응하지 않는다.
3막. 여자는 열리지 않는 문을 보면서 남자의 내면을 보고 싶어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면서 자신을 보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여자가 보고 있는 것은 남자의 내면이고 남자는 여자의 보이는 모습만 믿고 있기 때문에. 둘은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도 못하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을 보지만 같은 것을 보고 있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하지만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문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현실, 비현실의 위험한 경계인 것이다.안이 열리지 않으면 밖도 열리지 않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글 - 김태웅
연극은 경계에 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문은 경계의 상징이자 그 자체이다. 안과 밖, 나와 너, 나고 듬, 소통과 단절, 부정과 긍정, 열림과 닫힘, 침묵과 발화, 현실과 가상…
그런데 문은 참 이상하다. 어디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다 속한다.
"나는 2년이 넘게 문밖으로 나오지 않던 사내를 기억한다. 어둠과 침묵이 그의 전부였던 그 사내. 그렇다고 그에게 무슨 통절한 생의 고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고독을 사랑했던 것도 아니다. 그는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내면적 침잠이나 밖으로의 유랑이 가 닿는 지점은 같다고 생각한다.
고통 없이 깨달음을 얻은 자들의 턱없는 명랑성을 보면 부아가 난다. 고통의 훈장을 달고 과잉 제스쳐를 보이는 자들의 행패를 보면 안스럽다. 그들이 나이고 너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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