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오월, 어린이들은 자기들만의 놀이세계에서 자라나고 있다. 어머니와 소녀는 물동이를 이고 길을 가다가 어린이들의 놀이를 지켜본다. 총소리. 소녀는 들고 있던 풍선을 놓친다. 어머니 총에 맞아 돌아가시고, 소녀는 초경을 시작한다. 의사들은 어머니의 사인을 은폐하고 신 군부와 파티를 연다. 군인들은 저들의 논리를 내세우며 수탈 역사를 이끌어간다. 학교에서도 이들의 논리를 강요한다. 소녀는 그 속에서 교육을 받는다. 소녀는 이상한 질문을 하다가 퇴학당한다
시간은 흐르고 소녀는 처녀가 된다. 파시즘의 형태는 교묘해지고 미시화 된다. 군인은 사라진다. 공원과 지하철에서 처녀가 된 소녀는 그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파시즘에 의해 상처 입은 남자들에게 훼손당하는 것이다. 소녀는 어머니의 환상을 보고 어머니는 물동이를 내려놓으시고 사라진다. 소녀는 가슴에 달린 수많은 풍선을 물동이 안의 피로 닦아낸다. 그녀는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들의 애들을 생산한다. 그것이 바로 풍선이다. 이 풍선들은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간다
<풍선교향곡>은 풍선이란 사물에 투사한 한국 파시즘의 역사다. 풍선은 극으로 내달아 생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풍선은 자유자재로 몸을 뒤틀어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터뜨린다. 일제시대로 부터 6.25와 군부독재를 거치며 사람들 목을 죄던 폭압의 전체주의는 풍선 하나에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부렸다. 작가가 `빨간장갑단'으로 은유한 군부세력은 사람들에게 명랑성보다는 `각'을 강요한다. 개미 새끼 한마리도 직각으로 구획지어진 그 명령체계를 이탈할 수 없는 `각'의 세계가 지난 반세기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흰 고무신으로 대체된 백성은 피를 뿌리며 `각'을 탈출해 보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풍선이 터지기 직전의 그 애처로운 두려움으로 몸을 떨 뿐이다. 폭력과 반공이 휩쓰는 거리에서 한 소녀는 새 생명을 잉태하고, `엄마'를 부른다. 소녀 몸에 주렁주렁 달린 풍선들이 하늘로 떠가고,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자궁으로 돌아가고픈 본능이 둥근 풍선으로 부풀어오를 때, 작은 생명 교향곡이 울려퍼진다.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적 극구성과는 다르게 삽화적인 장면 장면들이 하나의 완결된 메시지를 전달할수 있도록 하여 구성된 이 작품은 '풍선'이라는 상징적 오브제를 가지고 군부독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 그 속에 투영된 여성 수난의 역사, 파시즘의 폭력성 등을 이미지와 배우들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고 있다. 그리고 그 수난속에서도 풍선의 꿈을 잉태하는 여성성의 크나큰 힘을 보여주려 하였다. 한국 현대사를 꿰뚫고 여성의 수난사를 말하고 파시즘의 폭력성까지 부각하려는 작가의 의도이나, 풍선이란 제약도 공존한다.
작가의 글 - 김태웅
공기의 꿈(풍선의 꿈)과 이 대지의 잔혹한 현실 사이에 놓인 긴장을 표현하고 싶다. 공기의 꿈이 무거운 힘에 의해 좌절되었다 다시 회복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 공기의 꿈은 공기를 담고 있는 오브제(풍선)를 통해 상징화된다. 그리고 이제 막 초경을 시작한 소녀를 통해. 이 소녀는 풍선의 역사를 축적시킨다. 풍선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생산의 역사이기도 하다. 상상의 역사이기도 하고, 희열의 역사이기도 하다. 자유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폭력에도 불구하고 대지는 생명을 잉태한다. 소녀는 희생양이면서 새로운 탄생의 모태이다. 소녀는 수난의 역사를 감내하면서 종당에는 풍선의 꿈을 잉태하고 생산한다. 그래서 이 소녀는 종당에는 대모신적 이미지로 드러난다. 소녀(대지)가 잉태한 풍선의 꿈은 다시 대지에서 날아오른다.
이 작품의 현실적 목적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파시즘을 들추어내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관습으로 받아들이는 파시즘의 폐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데 있다. 우리 현대사를 특징 지우는 가장 큰 폭력은 바로 파시즘이다. 이 파시즘은 가족, 학교, 언론, 군대, 제도 등등 사회화의 기제를 통해 내면화되고 정당화 된다. 이 파시즘의 행보는 육체에 각인되는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작품은 바로 이런 이미지를 포착하며 그것은 풍선에 축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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