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은 자유분방한 소녀 엘리자벳이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하면서 황후가 되는 과정이 전개된다. 황후가 된 후에도 시어머니 대공비 소피의 간섭과 자식의 죽음, 남편인 황제 요제프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그녀는 자유를 갈망한다.
2막은 헝가리의 독립활동을 지지해오던 엘리자벳이 헝가리의 왕비가 되어 국민들의 환호를 받지만 엘리자벳의 정치적 영향력을 두려워한 대공비 소피는 요제프와 엘리자벳을 갈라놓기위한 계략을 꾸민다. 엘리자벳은 자신을 배신한 요제프와 왕궁을 벗어나 방황을 시작하게 되고 그리고...자유를 갈망하던 엘리자벳의 방황의 끝엔 죽음이 기다린다.
엘리자벳은 당시 유럽의 모든 왕실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던 여인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씨씨(SiSi)라는 애칭이 생길 정도로 민중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했지만, 동시에 아름다움을 향한 시기와 질투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녀를 힘들게 한건 황후의 자리 그 자체였다. 바이에른 국왕인 막시밀리안 요제프와 바이에른의 공주 루도비카의 둘째 딸로 태어나 자유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던 그녀에게 황후의 왕관은 무겁고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왕실의 혈통 유지를 위해 근친결혼을 시행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아내로 지목한 건 엘리자벳이 아니라 그녀의 언니 헬레나였다. 조신하게 신부수업을 받아오던 헬레나가 아닌 승마와 수영을 즐기던 엘리자벳에게 손을 내민 건 프란츠 요제프, 어머니 대공비 소피의 그늘에 짓눌려 있던 그의 선택이 한 여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게 된 것이다.
“아침이면 감옥에서 눈을 뜬다. 무거운 족쇄를 차고 있는 것과 같다. 자유! 그건 나를 외면하고 저 멀리 떠났다.”
엘리자벳은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쉬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뿐 자유롭게 날아오르진 못했다. 황실의 규율과 대공비 소피의 권력에 짓눌린 엘리자벳은 첫째 딸의 죽음을 기점으로 궁에서 점점 멀어졌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민중을 무기 삼아 헝가리의 왕비로 즉위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한다. 이때만 해도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 황태자 루돌프의 자살은 그녀의 삶을 검은 상복 속에 가두었고 외국을 떠돌며 방황하던 그녀는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의 칼에 찔려 암살당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허망한 죽음인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역사의 주인공으로 박제되는 순간이었다. 오스트리아가 사랑한 엘리자벳은 그렇게 거스를 수 없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자유와 죽음의 유혹, 그 사이의 삶
그녀의 비극적 삶의 궤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극성 때문에 무한한 생명력을 얻었다. 백 년의 시간에도 아랑곳않고 오스트리아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오스트리아의 마음을 훔쳤던 그녀가 여전히 오스트리아가 사랑한 단 한 명의 연인임은 오스트리아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다. 그런 그녀의 삶을 담아낸 소설과 드라마가 쏟아져 나온 건 당연지사, 뮤지컬 [엘리자벳]의 등장 또한 당연히 예정된 수순이었다. 1992년 빈에서 초연한 뮤지컬 [엘리자벳]은 독일권 뮤지컬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그 성공의 중심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황후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던 한 여인이 있었다. “엘리자벳이 합스부르크 왕궁에 들어오면서 죽음을 데려왔다”는 오스트리아 민담을 모티브로 ‘죽음(Der Tod)’이란 추상적 개념을 의인화한 것은 뮤지컬 [엘리자벳]의 신의 한 수였다.
항상 죽음에 도취되어 있던 그녀의 삶을 무대 위에 재현하기에 이보다 더 탁월한 선택은 없었다. 서구 문화에서 죽음을 의인화하는 것은 오랜 전통에 기인한 기법이다. 하지만 뮤지컬 [엘리자벳]의 죽음은 새장 속에 갇힌 삶을 살았던 엘리자벳의 연인으로 등장함으로써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도입을 장식하는 “위대한 사랑”이란 대사가 선포하듯 무대 위의 엘리자벳은 위대한 사랑이자 동시에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갈망하던 사랑의 대상이 남편이자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가 아니라 죽음 그 자체였다는 설정은 뮤지컬 [엘리자벳]을 매혹적으로 완성시켰다. 극을 완성한 미하엘 쿤체의 “그녀는 죽음을 숭배하는 시를 쓰고, 죽음에 굴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죽음 자체를 사랑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엘리자벳 주변을 맴도는 죽음의 존재는 뮤지컬 [엘리자벳] 특유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만큼 역사적 사건과 시대의 분위기를 무대 위에 배치하지만 일반적인 전기 뮤지컬과는 다른 노선을 확보한다. 엘리자벳을 살해한 루이지 루케니를 무대를 이끌어가는 화자로 설정해 모순으로 가득했던 엘리자벳의 삶을 관객에게 고발한다. 그녀의 인간적 약점을 비웃고 자신의 죄를 그녀에게 되돌리는 도발도 서슴지 않는다. 그 도발에는 지배 계층을 향한 날카로운 풍자도 함께 한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이러한 태도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현대에 와서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1992년 초연 이래 24년 동안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헝가리 등 유럽 전역을 장악하고 아시아까지 진출하며 960만 관객을 돌파한 저력이 여기에 있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세 개의 극장 테아테 안 데빈, 라이문트 테아테, 로만허 테아테를 중심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비엔나 극장 협회(VBW)의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일궈낸 성취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대부분의 뮤지컬을 제작하는 비엔나 극장 협회(VBW)의 작품 중 세계무대에 알려진 작품은 [엘리자벳]을 비롯하여 [모차르트!], [황태자 루돌프], [레베카]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오스트리아’라는 국적 외에도 하나가 더 있는데, 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의 작품이란 것이다. 강렬한 드라마를 품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서사가 짙은 음악을 더하는 쿤체와 르베이 콤비의 장점이 가장 도드라지는 작품을 뽑으라면 단연 [엘리자벳]이다. 미하엘 쿤체의 영리한 선택과 집중으로 완성된 대본과 실버스터 르베이가 완성한 아름답고 기품 있는 음악은 엘리자벳의 삶과 죽음을 관객들의 가슴 깊숙이 새겨 넣기에 충분하다. 특히 단번에 귀에 꽂힐 만큼 호소력 있는 아리아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선 느낄 수 없는 유럽 뮤지컬 특유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오케스트라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선율은 엘리자벳의 고독과 슬픔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1) | 2022.12.12 |
---|---|
기 알루슈리 원작 민준호 재구성 '사랑의 형태' (1) | 2022.12.11 |
제프리 레인 '비열하고 썩어빠진 사기꾼들' (1) | 2022.12.02 |
카롤 보이티야 '보석상' (1) | 2022.11.29 |
헨리크 입센 작 김미혜 역 '우리 죽어 깨어날 때' (2) | 2022.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