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의 세속 이름은 카롤 보이티야였다. 로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보이티야는 1920년 5월 18일 폴란드의 바도비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한때는 유럽의 막강한 힘을 가늠하였으나 150년 동안 남의 지배를 받으며 팝박과 고난에 허덕이던 폴란드가 독립을 되찾고 난 다음, 새로운 세대가 열리기 시작했는데, 보이티야는 바로 이 새로운 세대에 속했던 것이다. 신생 독립국가의 새 세대는 그러나 역사적 난관을 겪어야 했다. 1차 대전이 끝나자 폴란드 국민의 애국심은 더할 나위 없이 견고해졌다. 그들의 애국심은 가톨릭에 대한 신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비록 희랍정교나 루터교, 그리고 유태교도 있었지만 가톨릭은 절대다수의 국민이 신봉하는 종교이다. 오늘날 공산체제마저도 완전한 통제력을 구사할 수 없는 것을 볼 때, 그들의 카톨리시즘에 대한 일면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 는 것이다.
보이티야의 유년시절은 행복하지 못했다. 시대적 역경 때문이기도 하였고, 아버지의 초라한 연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경제적 빈궁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것들보다는 오히려 어머니의 병약한 건강 때문이었다고 하는 게 더 합당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머니는 마침내 그가 겨우 아홉 살 때,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년의 가슴은 찢어질 듯한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 뒤 4년 후에 의사 수업을 받고 있던 그의 형이 성홍열로 사망하게 되어 그의 고통은 극에 달해 있었으나, 그 고통을 수렴하려는 그의 의지 또한 극에 달해 있었다. 직업 군인으로서 강인한 의지력을 소유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양심과 근면과 순종을 교육하였다. 아들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강인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그는 때때로 아들을 냉방에서 지내게 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하였다. 로렉은 학술면은 물론 모든 분야에 뛰어들었다. 잘생긴 용모에다 굳은 의지력을 가진 그에겐 여자들도 항상 따랐고, 스포츠에 대한 열망도 높아 축구. 스키 · 스케이트. 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그의 카누 솜씨는 빼어났으며 노래에도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보이티야는 어려서부터 성직자의 면모를 보였는지 1932년 그를 알게 된 바도비체의 본당신부는 어린 보이티야가 앞으로 성직자의 길을 택하게 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58년 주교에 서품된지 10년도 못되어 67년에 생존하는 추기경 중에서 두번 째로 젊은 추기경이 된 보이티야는 예나 조금도 다름없는 성직자이자 학자로서의 삶을 영유하였다.
그의 詩 <채석장>은 1940년 겨울 아버지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또 일자리를 나찌 군에 의해 강제 징용당해 독일로 끌려갈 위험이 있었으므로 키드린스키와 츠코키의 집안의 딸 포즈니아코바의 주선으로 크라코프 근처 자크조삐에 있는 채석장에 나갈 수 있었던 경험에 의해 씌어진 것이며 <보석상>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젊은 시절에 발표했던 일종의 시극이다. 외세의 침략에 의하여 무참할 정도로 짓밟힌 동포들을 위안하고 계도하기 위해 사제로서 직분을 다하는 가운데 쏟았던 문학적 열망의 산물인 것이다. 보이티야(교황의 세속명)는 묵상적인 성격과 행동적인 면모를 고루 갖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부터 그래왔다고 한다. <보석상>이 《즈낙》이라는 문예지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던 1940~41년 사이엔 더더욱 그러했다. 라프소디라는 극단을 조직하여 배우와 제작일을 맡아 하면서 연극에 몰두한 것도 명상과 행동 즉 언어와 행위의 조화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보석상>은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 무대 장치(아니, 무대 그 자체)가 마련될 수 없는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전개되는 연극이었으니, 다분히 언어의 문제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보이티야의 말대로 언어는 극적인 효소를 만드는 효소이다. 이 효소를 통해서 인간의 행위가 샘솟고 효소로부터 그들의 동력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대사들은 하나하나가 독립된 의미를 이루고 또 이 독립된 언어들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교향악을 이룬다.
작품 <보석상>은 현대인들에게는 하나의 경고가 될 수 있는 작품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관능적, 이기적 욕구의 연장에서 사랑을 타락시키고 권태, 또는 증오나 혐오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이 시대에 보이티야의 <보석상>은 무엇인가 반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결코 높은 목소리로 부르짖거나 질타하는 법은 없다. 낮고 부드러운 음조로, 그리고 풍부한 비유의 화법으로 사랑과 결혼의 깊은 의미를 헤아리게 해주는 것이다.
믿음, 사랑, 소망- 그러니까 세 가지 신덕의 따스한 가르침과 같이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형식에 있어서 독특하고 참신한 느낌을 준다. 테레사와 안드레아, 안나와 아다모. 크리스토포로와 모니카 등 3쌍의 부부를 등장시켜 사랑과 결혼의 탐구 및,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는 작품이다.
번역의 글/한형곤 (외국어대 이태리어과교수)
<보석상>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젊은 시절에 썼던 작품이다. 바로 그가 우릴 찾아오고 있다. 찬미 받아 마땅할 그가 이 땅에 오는 의미를 일일이 기록할 필요가 있겠는가?
요한 바오로 2세는 전통적인 보수성이 강하면서도 젊은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풍만하다고 한다. <보석상>도 이같은 맥락에서 씌어진 작품이기에 일단은 젊은이를 위한 작품으로 아울러 젊은이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는 작품이길 원하기도 한다. 작가가 젊었을 때 영혼 깊은 곳에 차곡차곡 담그었다가 정성껏 걸러냈던 사랑의 메시지인이 <보석상> 속에는 우리를 와락 부등켜안는 밀어가 가득하다.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싯구로 표현된 이 밀어들이 속삭이듯 부드럽게 우리의 귓전을 울려주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가슴과 영혼에 와 부딛칠 땐, 포효가 되어 그만 우리를 사로잡는다. 내면 세계 전체를 도취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연출의 글 - 주요철
결혼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부각시킨 이 作品 읽고 소명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평소 천주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던 자신에게 한없이 따사로운 부름을 받은 것 같아 한순간 정신의 충일감 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연극 형상화를 생각했을 때 막연한 감정 만이 머리를 흔들었다. 어떻게 이 작품을 심성 깊숙히 파고드는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그림을 보듯 인간의 영적인 교감을 구체적인 동작으로 표출시킬 수 있을까? 읽는 희곡에서 보이는 연극으로 끌어갈 수 있을까? 그렇지만 아파트 지하에 소극장 무대를 만들어 놓고 나치의 감시를 피해 연극을 했고 협소한 공간에서 제작비의 제한 속에 열렬히 연극에 열중하는 청년 카롤 보이티야의 그 순수한 영혼이 나를 사로잡았다. 용기를 내 작품에 임하면서 시적 언어와 성서적 상징이 배경으로 깔린 사랑에 관한 명제를 정적인 움직임 속에 동적인 고요함을 나타내기로 생각했다. 동작을 억제시키면서 언어의 표현을 살아 숨쉬는 교감으로 이어나가 따로 떨어져 나간듯한 전 3막을 하나의 교향곡으로 만들기로 하였다. 무대효과를 보다 높이기 위해 장치와 소리와 빛을 서로 조화롭게 하여 배우의 연기를 충분히 받쳐 주면서 그것 자체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언어가 갖는 위력을 중요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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