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조병 '세상 어머니의 노래'

clint 2022. 4. 9. 13:33

 

 

 

이 작품은 다복하게 자녀를 두고 건실하게 살아오는 우리의 여느 부부가 근현대사 질곡에서 겪는 상처를 구체화하면서 어머니이자 아내가 가족의 씻김을 위해 이승저승을 넘나들다가 스스로 저승을 가는 이야기이다. 현대사의 질곡은 우리에게 무참했다. 젊은이는 간첩 누명, 시위 참여, 가족 형제 구하기 등에 얽혀 죽는 시절이었다. 과거에 속하는 질곡의 전사지만 그 후유증은 현존하고 있다. 개인이나 가족의 상흔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으로 질곡은 진행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어머니는 절망 속에서 헤어나는 힘이다. 그런 어머니가 분노가 지나 자괴감 속에서 저승으로 가서 가족을 만나 해원의 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일상과 환상을 교차시키는 사건 전개, 연기자의 다양한 변신을 토속적 타악기의 음률과 판소리의 품제로 연결한다. 한국화적, 민화적, 놀이적 구도로 집중시켜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질타하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나타낸다.

 

 

 

 

엔지니어로 촉망되던 장남 석일이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연행되고 그후 그는 행려병자로 떠돌다가 가족과 만나는데, 식물인간이듯 자폐자 시설에 수용되었다가 죽는다.

장녀 난일은 충격을 받아 지문 안 찍고 사는 나라 찾아 미국인과 결혼이민을 하는데, 먼 이국에서 어머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냉대로 지금은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니고 그저 서서히 소멸되어 가고 있다. 둘째 석이는 대학생으로 시위대에 섞였다가 체포되어 횡사한다. 가족의 항의에 당국에서는 사인을 규명한다고 사체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토막토막 칼질해서 심장마비로 결론을 짓고 성급히 화장해서 뿌린다. 사실은 심장마비가 아니고 매질에 죽은 것이다.

둘째 딸 난이는 두 오빠의 일에 분노해서 시위, 방화, 치상 등 과격한 행동을 거듭해서 결국 사형수가 된다. 그녀는 1심에서 3심 확정선고까지 세번 죽고 아침에 눈 뜰 때마다. 간수 구두소리가 들릴 때마다. 감방문이 열릴 때마다. 수인번호를 부를 때마다. 다른 사형수가 불려 나갈 때마다 수없이 죽어가는 위기 속에서 견디고 있다.

셋째 석삼이는 가슴에 수많은 사연을 감춘채 10대에 가출 해서 행방불명이다.

남편 김익수는 고급관료로 일에 열중이지만, 나약한 성격으로 자식들을 위해 한마디 못하고 침묵하다가 끝내는 자살로 아내와 가족에게 사죄를 한다주인공 이순옥은 어머니로 아내로 이 가정을 버티어온다. 그러는 중에 막내아들 석삼의 행방은 요원하고 막내딸 난이의 사형집행일이 다가온다. 순옥은 이승에 더 있을 수도 없고 있을 필요도 없다고 직감한다. 저승으로 가서 먼저 간 두 아들과 남편을 만나고 곧 올 딸 난이의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 주고 막내 석삼이가 거기 왔는지 아직 이승에서 헤매는지를 알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녀는 남편의 제사를 치르면서 결심을 결행한다.

 

 

 

 

작가의 글 윤조병

‘60년대 초, 데뷔를 위해 쓴 희곡은 대체적으로 단막은 부조리극이고 장막은 정통극이었다.

의도해서가 아니고,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제2차 세계대전과 육이오를 경험했기 때문에 독일의 비트링 거, 프랑스의 이오니스코, 영국의 오스본, 미국의 올비 작품이 그럴 듯 해서였다. '70년대와 80년대에 나는 체질에 따라 자연 럽게 리얼리즘 작품을 발표해왔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가 사용하지 않은 다른 양식(style)을 찾아야겠다는 고민을 했다.

<세상 어머니의 노래>는 역사를 민화로 여인의 가슴에 안기는 양식으로 실험하느라고 많은 시간이 걸렸다. 현대사 중심에서 연행, 고문, 횡사, 사형, 자살, 침묵, 아첨, 협력 등 소멸하는 삶을 살아온 한 가정의 어머니가 남편의 제삿날을 맞아 청동제기를 닦아 제사를 지내는 동안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 이승과 저승등 시공을 넘나들면서 가족을 만나 속삭이면서 진실을 알고, 어머니는 자살을 결행하는데 그 과정이 이 연극이다.

넘나들기는 코러스와 박달나무 막대, 작은북, 장고, 캐스터내츠, 탬버린, 아코디언 등을 활용한다. 나무막대는 진우조로 호통치고, 타악기는 적화 제로 속살거려 연극적 기호를 확대한다. 민요조(혹은 단계면조) 절반노래로 상황을 열고, “, , 훠어이!" 의 역설적 쫓음으로 상황을 닫는다. 고갯길을 넘어오는 영혼들의 움직임과 그들이 만드는 '가족 조각상''홀로 조각상' 이 비구상적 언어와 정서를 만들도록 했다.

대통령은 고유권한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왜곡시킨 쿠데타,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사건, 한보사건, 비리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12.12 5·18 관련자, 여러 선거사범에 대해 사면복권을 실시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역사를 거꾸로 세우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법치 기준을 지키지 않고 역사의 법정에 선 사람들을 죄 사면했으니 혼령인들 답답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사면된 무리와 법망으로 빠져나간 무리가 남북화해, 언론개혁, 금융개혁, 정당과 정부개혁에 사사건건 흠집을 내면서 활개치고 있으니 영혼을 향해 무슨 말을 할까.

어떤 힘이 이 엄청난 상처를 원형으로 복귀시킬까. 이것이 연극의 핵심이다. 이 핵심을 일상과 환상의 교차, 토속적 타악기의 음률과 판소리적 소리, 민화적 정서, 놀이적 구도로 집중시켜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어머니의 품격과 생명력으로 질타하고 반성하도록 했다.

연습에 참여하지 못해 공연의 결과를 예단하지 못한다. <세상어머니의 노래>는 선택과 공연에서 호사다마를 연상시키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왜 이렇게 모두 힘드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들의 또 하나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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