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아직 불법이다. 구체적인 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상태이나 국가는 죄로 규정한다. 생명 경시 풍조로 본다. 여성한테 문란함을 간접적으로 추궁한다. 한때 단체로 불임수술을 받아야 했고, 태아에서부터 남아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었던 존재가 여성이었음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성관계부터 피임, 임신, 출산까지 국가의 개입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 근간에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일면 강제한다는 증거다.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여성에게 ‘주체’ 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기 결정권은 없다. 이데올로기 안에서 가임기 여성은 인구분포에 따라 뽑아지는 수치일 뿐이다. 누구에 대한 통제이며 강요인가?
세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엄마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재은과 여고생 딸 희원, 그리고 희원과 같은 반인 수진. 의사 재은은 아이돌 그룹 중 하나를 낙태수술 해주었다. 같은 시기 딸 희원이의 낙태까지 진행했으나 아이돌 수술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인격살인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딸 희원은 격렬한 불안에 시달리며 스스로 죄인임을 자처하고 엄마 재은은 딸과 함께 시골로 거처를 옮겨, 재기에 힘쓴다. 과거를 지우고 낙태 반대자라는 가면을 쓰고 아무 일 없는 듯 지내는데, 희원의 학우 수진이 찾아와 낙태를 요구하며 파장이 인다.
재은은 정당한 대가를 치렀다 여기지만 딸 희원과 같은 경험을 거쳐 정신적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수진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재은 자신도 가해자임을 깨닫는다. 수진과의 대화에서 재은 자신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사회권력과 다르지 않은 가해자임을 통감한다. 세 명의 인물은 낙태라는 소재로 마주한다. 그러나 낙태 문제는 사회적 시선이라는 본질로 자리가 바뀐다. 재은과 희원, 수진은 저마다 입장에 서서 마주한다. 강제로 작용하던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불안은 안정으로 걱정은 희망으로, 그러나 장담할 수 없는 미래가 그들 앞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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