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아르바이트 퇴근길 동준은 우연히 불 켜진 미술관 앞을 지난다.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에 이끌리듯 들어간 그곳에서 그는 의문의 큐레이터를 만나게 되고 둘은 결국 문이 잠긴 미술관에 갇히고 만다. 불평도 잠시 동준은 샤갈의 그림 하나하나에 숨겨진 그의 인생 여정에 빠져들게 되고 조금씩 자신의 삶을 그의 그림에 비추어 보기 시작한다.
작품 속 동준은 20여 년을 무명화가로 보낸다. 꿈과 열정 가득했던 첫 마음의 자리에는 어느새 긴 시간이 안겨준 열등감과 패배의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현실과 이상 사이 그 애매한 자리에서 오늘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비단 동준만이 아닌 우리에게도 익숙한 자리일지도 모른다. 사회가 정해 둔 생애주기, 만약 지금 우리가 그 궤도 밖에 서 있다면 우리는 이미 뒤쳐 지거나 혹은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또는 인생의 통과의례를 멋지게 넘지 못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그다음의 삶은 없는 것일까요? 지극히 평범한 남자 동준의 특별한 그날 밤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에게 그 물음에 대한 힌트를 주는 듯하다. 화려한 색채 속에 가려진 샤갈의 치열한 삶의 단면, 그 삶을 통해 지금 우리가 선 자리 역시 또 하나의 온전한 궤도가 될 수 있음에 확신을 갖기를 희망한다.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제국 벨라루스의 비테프스크(Vitebsk)에서 태어났다. 1895년 유태인 초등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00년 왕립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을 접하게 된다. 당시 샤갈은 소묘와 기하학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샤갈은 1906년 벨라루스에서 활동하는 화가 예후다 펜(Yehuda Pen, 1854~1937)의 화실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하게 된다. 그 뒤 세인트피터즈버그(St. Petersburg)의 왕립 예술학교를 거쳐 레온 박스트(Léon Bakst, 1866~1924)가 운영하는 미술학교에 들어가는 등 샤갈은 당시 러시아 화가로서의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나간다.
그 시절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샤갈의 운명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면서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활동 무대를 파리로 옮긴 이듬해인 1911년, 샤갈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와 공동으로 화실을 빌려 창작활동에 불을 지핀다. 화가로서의 개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던 그 당시 샤갈의 작품을 가리켜, 시인이자 예술평론가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9)는 "초자연적 스타일"(surnaturel)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젊은 이방인 화가의 작품에 대해 이처럼 독특한 평가를 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느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샤갈 역시 파리 앙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 1884년 프랑스의 살롱전에 반대하여 설립된 무심사 미술전람회–역주)에 참가했다. 1912~1914년 3년 연속 앙데팡당에 참가하면서 샤갈은 프랑스 미술계에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항상 고향을 그리는 연약한 청년 샤갈은 파리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1914년 고향으로 돌아온 샤갈은 때마침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한동안 러시아에서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혁명의 소용돌이에 바람 잘 날 없던 러시아는 샤갈이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곳이 못 되었다. 조국 러시아를 떠나면서 샤갈의 보헤미안 인생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1923년 가족을 이끌고 파리로 이주한 뒤, 브뤼셀과 뉴욕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전시회를 열면서 그의 명성도 세계적으로 퍼져 간다. 샤갈은 193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1940년 들어선 프랑스 비시 정부(Gouvernment de Vichy France,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40년 7월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패한 뒤부터 1944년 9월 연합군에 의해 파리가 해방될 때까지 필리프 페탱이 통치하던 괴뢰정권–역주)로부터 핍박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정치적 격변기마다 여러 나라를 떠돌던 샤갈 인생의 종착지는 역시 프랑스였다. 프랑스 방스(Vence)의 생폴(Saint Paul) 산장에 정착한 샤갈은, 1985년 3월 8일 생을 마감하며 마지막 눈을 감는다. 자화상 속 강렬한 눈빛이 드디어 안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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