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의 후속 작임을 드러내며 ‘온달2’라는 부제를 붙인 <열반의 배-온달2>, 최인훈이 작품 전체를 희곡 형식으로 써내려간 첫 번째 사례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그가 연극의 ‘약속된 형식’에 대한 실천적 감각에 다가서기 전에 집필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공연 체험에 앞서 간직하고 있었던 희곡 장르에 대한 입장을 보여준다. 그 입장은, 무대를 통해 증폭될 수 있는 감각적 영역에 대해 고려하더라도 그에 앞서 글의 차원에서 확보될 수 있는 주제상의 갈등과 대립에 더욱 주력하는 것이다.
작품 전반부에는 여러 장교들이 중국과 고구려의 관계를 둘러싼 고민을 토로하고, 후반부에서는 왕자와 대사가 국제정세를 포함해 불교의 구도의지를 피력하는 가운데 토론형식의 대사만이 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상 세부적인 대사들 사이에서는 논쟁보다 상호 동의적 논의 비중이 높은데, 그 전․ 후반부가 각각 대립되는 의견의 한 축을 지탱함으로써 구성상으로 ‘장교들 대 왕자 측’ 간의 토론을 펼쳐놓는 효과를 낳는다. 이 작품이 독립된 희곡으로서 분석될 만한 완성도에 도달했다고 보긴 어렵다. 소위 ‘극적 갈등’이라고 할 만한 작품 골격을 충분히 세우지 않고 있으며 그 갈등을 이끌어가는 정통극적 구성 원리를 살리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연극적 실험정신을 담아낸 부조리극처럼 역설적 의미에서의 극작 방식을 펼쳐 보이고 있지도 않다. 등장인물들 또한 사실주의극의 내면연기를 불러일으킬 만한 심리적 개연성이나 생동감, 혹은 상징주의극의 수수께끼로 읽힐 만한 심오한 비유적 의미, 그 어느 쪽으로도 딱히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 못하다. 이에 대해 작가가 극작에 있어서 역부족이었다는 식의 평가에 멈출 수도 있겠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이런 미흡한 상태로나마 작가가 희곡이란 형식으로 굳이 담아내려 한 특성은 무엇일지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열반의 배-온달2」에서 소설 아닌 극 형식을 선택하면서 중요하게 설정된 요소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배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데 있었다. 이 작품의 첫 두 문장은 ‘무대 정면 안쪽에 창. 멀리 백사장에 큰 배가 보인다.’이며, 마지막 장면은 그 배가 불타는 상황을 다루는 것이다. 그 화재상황을 자세히 지문으로 묘사하고 있진 않으나, 왕자와 대화를 주고받던 대사가 ‘창밖으로 눈을 돌리다가 벌떡 일어서며’ “불, 배가!”라고 외치는 가운데 작품이 막바지에 이른다. 이 작품의 배는 무대전면에 직접 드러나 있지 않고, 무대 안쪽 멀리, 창 밖에 위치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행동을 직접 담아내는 공간이 아니지만 인물들의 배면에서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동인이기에, 배가 자리 잡은 창밖이야 말로 실제 무대장소로 설정된 관내 무관들의 대기실이나 왕자의 서재보다 더 중요한 공간이다. 이렇게 논제로서의 갈등과 최소한의 이미지만 부각시킨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관객이 기대할 법한 극적 충돌의 순간들은 작품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작품이 보여주는 상황은 입장 차이에 대해 기본적인 이성을 갖고 이야기나눌 수 있는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고성이 오갈 수도 있고 다른 입장끼리 부딪쳐 함께 싸우는 선까지 나갈 수도 있을 상황을 마련해놓고도, 이 작품은 어전회의 장면도, 배에 불이 난 직후의 혼란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상태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온달의 등장이 필수적인데, 이 희곡은 전작과의 연속성을 드러내며 부제로 제시된 인물 ‘온달’을 끝내 등장시키지 않는다. 작품의 약점인 ‘극적 충돌의 기피 현상’이 일정 부분 뜻한 바였다고 여겨지는 것도, 그 충돌의 원인이 될 온달을 무대에 끌어내지 않은 것부터 역부족의 결과라기보다 의도된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공유의 지점에는, 작품 전반부 장군들의 대화로 드러나듯 정치 현상에 대한 실질적 감각이 놓여 있는 한편, 후반부에 주로 왕자의 설명을 통해 드러나듯 광대한 세계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며 사유하는 정신적 태도도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사유의 기반으로 삼은 불교적 상상력은 특정 종교로서의 한정된 관점에 머물지 않고, 우주의 조화 및 원리, 그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평화로운 공존의 논리에 맞닿아 있다. 하지만 작품 제목이기도 한 ‘열반의 배’가 불타는 결말부를 통해, 이러한 추구 과정이 난관에 처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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