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같은 대학의 강사직에 지원해 면접장 로비에서 만난 동기 두 명이 보인다.
우연한 마주침이 반은 반갑고 반은 얼떨떨했던 둘은 근황을 묻는다.
그러다 둘의 연락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말하며
이제 그 과거에는 별다른 힘이 없음을 깨닫는다.
대화를 나누다 면접에 늦고 집에 가는 버스도 놓치지만
둘은 어쩐지 처음보다는 밝아진 모습이 된다.
별다른 갈등이 없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였지만, 주변적인 공간에서 만난 두 주변인의 대화에는 편안한 매력이 있었다. 긴장하지 않은 채 타율이 좋지 않은 유머에 가끔 피식 웃음이 나고 마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삶에서도, 면접장에서도, 집에 가는 길에도 종일 서성거리는 모습뿐이지만 그랬기에 친구를 만날 수 있었던 우연이 좋았고 적당히 반갑게 푸는 회포가 좋았다. 그러면서 은근히 극에 담아낸 일상에의 위로가 와 닿아, 극장을 나오며 몸이 가뿐해졌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머무르고 지나치는 공간과 순간은 얼마나 될까 너와 내가 만나 안부를 묻고 나누는 인사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네가 서성일 때>는 로비라는 특정 공간의 특성을 살려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스쳐 지나가는 길과 어딘가 속해지는 장소 그 연결선상에 있는 로비를 통해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사소하지만 특별한 순간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마주하거나 스쳐가는 것이 아닌, 서성이는 한때의 중요함과 무게감을 공유하며 많은 것이 스쳐 지나칠 수 있는 로비에서 서성이며 서로의 상처를 알고 위로한다는 것. 아주 낯선 사람들, 환경에서 우리들은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살고 있기에 지금까지 함께 어딘가를 서성이며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품은 지연과 준기의 우연한 재회로 시작된다.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에도 나는 알지 못했다. 둘 사이에 있던 이야기와 그들이 갖고 있는 사연은, 그들을 깊이 알고 난 후에야 보였다. 오랜만의 재회에 그들은 서로에게 닿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고, 많은 눈물도 필요했다.
작품을 통해 나는 "너와 나의 서성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너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서성임. 끝내는 지나쳐야 했던 인연도 있었고, 결국 마음이 닿았던 인연도 있었다. 면접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던 로비의 사람들처럼, 삶이란 어쩌면 쉽게 정의 내려지지 않는 그런 서성임이 아닐까. 그들이 서성이며 눈을 맞추던 순간에서, 나는 그들의 삶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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