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태린 '크리스마스웨딩'

clint 2020. 12. 8. 10:56

 

 

“크리스마스웨딩”은 작은 출판사에 다니다 퇴직한 시인을 꿈꾸던 아버지,

그리고 시를 쓰기 위해 어머니를 고생시켜 죽음으로 몰고 간 아버지를 증오하는 딸,

그리고 아버지의 진심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친구 학수,

딸 서연이 사랑하는 남자 우진 (등등) 을 통해 전개된다.

아버지와 딸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드러나는 아버지의 병,

그리고 딸의 행복을 위해 병을 감추려는 아버지의 슬픈 행동들,

아버지와 딸 서연의 고통스런 갈등이 아버지의 친구 학수를 통해 드러나면서 갈등은 해소된다.

아버지의 진심과 죽음 직전까지 진행된 병의 존재가 밝혀짐으로써

딸 서연은 한없이,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절규한다.

아버지의 죽음 뒤, 1주기를 지내기 위해 모여앉은 딸 서연과 남편 우진, 그리고 친구 학수의 대화는

해소된 갈등의 끝에 희망을 두는 역할까지 하는 것 같아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다.

 

 

 

 

크리스마스 웨딩은 가족과 연인의 달 12월에 어울리는 ‘축복’과도 같은 맑은 작품이다.
극은 표면적으로, 부녀간의 갈등과 화해를 담고 있지만, 그 속에서 녹아나는 겨울의 정취와 연인과의 로맨스가 곁들여져 최고의 감동과 웃음 그리고 잔잔한 슬픔을 전해주고 있다. 물론, 극의 전편에 관통하는 근저에는 도시인들의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야기된 소통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 작품에 스며있는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는 희극적 요소가 가미된 줄거리와 짜임새 있는 대사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절묘하게 대체시킨다. 따라서, 크리스마스 웨딩은 슬프지만 처연하게 슬프지 아니하며, 코믹한 요소가 담겨있지만 웃음을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유유히 전개되는 일상의 상황속에 잠재되어 있는 극적인 요소들을 무대에 끌어다 놓는다. 이 작품은 2001년 초연되어, 매년 12월. 거리에 쏟아져 나온 젊은 연인들의 감성을 자극해온 매혹적인 레퍼토리로 어느덧 자리 잡았는데 흰눈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만 같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연인 혹은 가족들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순수’하고 ‘투명’한 작품이다.

 

 

 

 

극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딸 서연, 사윗감인 우진, 아버지 친구 학수, 그리고 딸의 구혼자들은 마치 그 성격이나 역할이 적역이다. 그만큼 자신의 역할과 이미지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극중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살아있다젊은 시절 시인을 꿈꾼 글쟁이 아버지는 다정다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능한 전직 출판업자이다.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 뒷바라지를 하다 숨을 거둔지 오래되었고 그는 혼자서 딸을 키우며 살아왔다. 딸은 어머니의 고생과 죽음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아버지는 이렇다 할 변명도 하지 않은 채, 그런 딸에 대해 변함없는 애정을 가지고 딸만을 위해 일상을 살아간다. 극의 중심에 이렇듯 한없이 헌신적인 아버지 상이 놓여있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호감은 극 자체에 대한 호감으로, 그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시를 쓴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고생시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언제나 냉랭하고 차가운 딸은 극에서 갈등의 원인이자 응어리를 제공하는 인물로서 관객은 그녀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녀가 아버지와 화해하기를 바라게 된다. 이 두 사람의 갈등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역할을 맡은 이들은 바로 아버지의 친구 학수와 사위 우진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번번이 이웃 동네로 따라서 이사를 할 정도로 친한 배꼽친구, 마치 순정만화에서 곧장 튀어나온 듯한 핸섬하고 매너 좋고 선하고 사려 깊은, 모든 미덕을 갖춘 사위 감, 몇 가지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진 구혼자의 역할을 혼자서 변신을 거듭하며 능청스럽게 소화하는 일인다역의 배우 등 꼭 필요한 인물들만으로 극은 구성되어 있다.

 

 

 

차갑고 반항적이던 딸이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는 계기는 아버지의 친구나 세심한 사위의 설득 때문이라기보다는 결국 극중 주인공인 아버지가 앓는 지병과 시한부 삶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유한한 삶을 살지 않는가? 그녀의 때늦은 후회는 그녀의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게 하려던 아버지의 배려 때문에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작품의 결말이 이렇다 하더라도 흐름은 결코 무겁지 않으며 극을 보는 동안 관객은 시종 유머와 웃음으로 인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등장인물들의 유쾌한 성격, 그리고 흔히 희극에서 다루어지듯 극중 인물보다 관객이 정보의 면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웃음 등에서 그 즐거움은 기인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지병을 친구의 것이라고 둘러 대고 그것을 믿은 사위는 아버지의 친구를 충심으로 위로하면서 뜻하지 않은 웃음거리가 생겨난다. 어리둥절한 학수와 진지한 사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웃음 짓게 된다. ‘크리스마스 웨딩는 부녀간의 이야기이자 친구간의 훈훈한 우정 이야기, 그리고 젊은이들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이다. 극이 해 주는 이야기 하나 하나를 전해 들으며 관객은 자신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비추어볼 수 있다. 혹시 우리 자신은 일에 빠져서 가족을 게을리 하고나 있지 않은지, 처음 사랑을 키워 나가던 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평생을 함께 하다가 무덤까지 따라 올 그런 징글징글한 친구는 있는지 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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