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늘, 식민지로 살다’는 근래 역사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자 대체역사 기법을 차용한 작품이다. 일제 식민 지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그래서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잃고 역사를 모르고 자란다면 우리의 모습이 어떠할지에 대해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당연히 일본인으로 살고 있겠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고 껍데기 같은 삶을 영유하고 있지 않겠냐는 물음표를 던진다.
단 2명의 인물만이 등장한다. 시기는 일한병합이 100여년 지난 2013년 경성. 일본의 황국신민으로 충실하게 살고 있는 황국신민화 교육을 담당하는 형사 노다와 우연한 기회에 조선어와 조선의 역사를 알게 된 경성제국대학 교수 야스다. 야스다는 학술 세미나를 위해 일본에 갔다가 교토 도서관에서 조선의 역사와 말에 관한 책을 복사해 경성으로 돌아오다 경성부 종로 경찰서에 붙잡힌다. 황국신민 사상범을 담당하는 노련한 형사 노다는 경성 제국대학에 입학한 딸이 총독부에 취직해 내지인을 만나 이등국민 취급을 받는 조선 반도 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 한다. 야스다처럼 반도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선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현실에 충실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황국신민으로 충실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노다와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찾아 독립해야한다는 야스다의 치열한 싸움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작가의 글
근래 역사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에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광복 후 친일부역자를 단죄하지 못하고,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어릴 적 최남선, 이광수와 서정주 등을 민족주의자이자 훌륭한 예술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에 이들의 이름이 수록된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일본이 전쟁에서 질 줄 몰랐다!’ , ‘조선이 해방될 줄 몰랐다!’
일제가 강압적으로 조선 반도를 통치했지만, 반도의 근대화와 산업화애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은 아직도 건재하다. 지금도 ‘반일 종족주의’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6·25전쟁을 거치며 그들의 지위를 유지, 발전시키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반민족행위를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아, 오늘도 우린 식민지로 살고 있구나.’
연극 〈오늘, 식민지로 살다〉는 우린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껍데기 같은 삶을 영유하고 있다는 아찔한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본 작품은 국가와 민족의 감정적 대결구도를 강화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야스다’ 와 ‘노다’ 라는 대비적인 두 인물의 설전을 통해 개인, 민족, 국가의 의미를 되새기기 바라는 마음에서 쓴 작품이다. 어쩌면 상상 속 오늘, 우리 역시 벗어날 수 없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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