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착취당하는 노동 이야기로 재탄생된다.
빨간 모자, 양치기소년, 라푼젤, 성냥팔이소녀 등 동화 속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현실과 그 구조 속에서 착취되고 소모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헨젤과 그레텔'은 아직도 숲속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늑대에게 위협받고 마녀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을 구성하는 동화들에 대해 직접적인 설명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동화를 연상하게끔 만든다. 숲속에 사는 나무꾼 부부는 너무 가난하여 당장 먹을 것조차 없다. 제비 새끼처럼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굶주림과 가난이 두렵다. 그래서 버려질까 더욱 두렵다. 동화처럼 헨젤과 그레텔은 부모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 길을 잃는다. 아이들은 숲속에서 부모에게 독립하게 된 아기돼지 삼형제를 만난다. 첫째는 공부에 치여 죽고 둘째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4년 내내 받은 학자금 대출 압박에 죽는다. 셋째는 취업하기 위해 쓴 입시 지원서 무게에 깔려 죽는다. 늑대들은 사회가 아기돼지들을 죽게 만드는 바람에 졸지에 할 일이 잃고 실업자가 된다. 빨간 모자는 하루에 200개가 넘는 택배를 나르는 택배 노동자다. 빨간 모자는 마지막 고객인 할머니에게 택배를 전하다가 죽고 만다. 빨간 구두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습지노동자다. 일할수록 빚을 지지만 빨간 구두를 벗을 수가 없어 발목을 잘라버리고 싶을 뿐이다. 아이들은 숲에서 만난 이들의 비참한 죽음들을 목도하며 숲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불안에 싸인다.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도 살아남을 작은 길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다는 위로의 말을 하기도 하지만 정말 현실도 그러할까. 배고픔과 마녀와 거인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한 헨젤과 그레텔들은 숲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추위를 잊기 위해 성냥을 켠 성냥팔이 소녀 앞에 구의역 스크린 도어사고로 죽어간 청년이 나타난다. 이유도 모른 채 백혈병으로 죽어간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나타난다. 할머니의 환영 대신 소녀 앞에 나타난 것은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환상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이다. 소녀는 비참한 얼굴로 죽고 만다. 소녀는 동화가 주는 어떤 환상도 어떤 행복도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극단 백수광부의 공동창작 작품들은 참여하는 단원 모두가 토론과 즉흥을 통해 작품을 구성하고 완성해가면서 내밀한 단체의 역량과 그 열정을 끌어내왔다. 백수광부의 공동창작 시리즈는 2006년 '야메의사', 2009년 '햄릿아비' 등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극단 백수광부가 예술창작집단으로 동시대 사회를 조망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각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극단 백수광부는 꿈과 환상의 대명사인 동화들을 모아 모아 현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동화로 재창작해냈다. <헨젤과 그레텔><양치기 소년><아기돼지 삼형제><베짱이와 개미><빨간 모자><빨간 구두><라푼젤><성냥팔이 소녀>. 극 속에 등장하는 동화들은 모두 국민 동화 반열의 작품들이다. 하지만 동화의 소재를 빌려 왔을 뿐 등장인물 모두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 작품은 집단 창작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라는 숲속에 버려진 우리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있는 여기부터는 아무도 길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 아무도 이 숲에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숲에서 길을 잃는 또 다른 헨젤과 그레텔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길잃은 헨젤과 그레텔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작의
헨젤과 그레델을 떠올리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생각했다. 누구도 끝을 알 수 없는 갚은 숲과 같은 이 사회. 어쩌면 우리는 이 자본의 숲속에서 길을 잃은 한헨과 그레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보아왔던 많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꼭 알아두어야만 할 수많은 동화들처럼 느껴졌다. 이 대본은 사회에 대한 고발이라기보다는 사회와 노동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언제고 누군가 읽어보며 새로운 교훈을 찾는 동화처럼, 이 얘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했던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무서운 자본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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