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투리니는 현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가로, '실험적 언어의 천재 마술사', '가장 예리한 사회 비평가'라고 불린다. 알프스 산 가운데 위치한 외딴 집을 배경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년의 시작장애인과 그를 돕기 위해 맹인협회에서 파견된 한 여성의 사연이 공개된다. 민중극과 철학적 코미디, 스릴러극과 익살극, 맹인 비극과 사기꾼 희극 등 드라마의 거의 모든 장르 요소로 구성돼 있다.
페터 투리니
페터 투리니는 브레히트처럼 자신의 작품을 아주 간단하게 ‘조각작품’이라고 부른다. <알프스의 황혼>은 모두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창은 투리니가 ‘조각들’이라고 호칭했듯이 토막 나 있으며 각장이 끝날 때와 다음 장이 시작될 때의 지시문이 거의 동일하다. 각 장 사이를 단절하거나 연결하는 단어는 ‘정적’인데 ‘정적’, ‘긴 정적(lange Stille)’, ‘아주 긴 정적(sehr lange Stille)’, ‘완벽한 정적(vollkommen stil!)' 등으로 아주 세분화되어 다양한 뉘앙스로 표현된다. 79회나 사용된 ‘정적’과 ‘침묵(Schweigen)’이라는 단어는 지시문과 각 장 사이에 위치해 각 장에 독립성을 부여하거나 지시문에서 정서의 변화를 암시한다.‘ 이 극의 지시문들은 상당히 길고 자세한데 특히 도입부의 첫 장면은 두 페이지 이상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긴 지시문 후 연극 첫 장면에서 맹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여전히 고요하고 어둡군" 마지막 장면에서도 맹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여전히 고요하고 어둡군" 이처럼 극은 원점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이룬다.
무대의 첫 시선은 암흑이다. 몇 초 동안 관객은 장님이다. 그러고는 천천히 방의 윤곽을 인식할 수 있다. 가구가 별로 없는 산속의 집. 한 남자가 나무 바닥에 엎드려 느리고 둔하게 움직인다. 조명이 충분히 무대에 떨어지면, 관객은 노인이 아무것도 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는 맹인 안경을 낀 맹인이다 분명히 비참한 운명임에도 맹인은 의기양양하고 행복하며 흥분한 상태다. 맹인은 40년간 알프스의 오두막에 살면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소리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등산객에게 푼돈을 받고 고향의 새소리를, 뻐꾸기 울음과 말똥구리 새의 외침 등을 흉내 내어 들려준다. 남자는 고독하다. 그는 맹인 협회에 여자를 한 명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캠핑 침대에서 한 여자가 꿈을 꾸면서 한숨을 내쉬고 투덜거리다 깨어난다. 결코 젊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여성이다. 불 같이 새빨간 야한 가발에, 호피무늬 코트와 녹색 원피스를 입었다. 그녀는 입에 각성제를 한 움큼 넣고 위스키와 함께 삼킨 뒤 주머니에서 작은 문고판 책자를 꺼내서 웅얼거리며 암송하기 시작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것은 밤 꾀꼬리가 아니라 종달새였어요…" 그녀는 자신이 재스민이며 창녀라고 말한다. 맹인 협회가 그녀를 산속 맹인에게 고전문학을 읽어주고 필요하다면 좀 더 서비스를 하도록 보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고전작품을 점자로 끊임없이 읽은 덕에 장엄한 연극적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노인이 말한다. “재스민, 나는 당신을 원합니다" 그는 비길 데 없이 품위 있고 우아하게 말한다. 노인의 진지함에 동요해 창녀는 갑자기 창녀 역할을 중지한다. 재스민은 호피무늬 코트를 벗고 화장을 지우고 가발을 벗는다. 그녀는 맹인 협회의 여비서라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엄격한 서류심사로 평생 반려자를 찾아 높은 산의 로미오에게로 왔다고 말한다. 자신은 사랑이 없는 외롭고 슬픈 삶을 살아왔으며 어느 한 남자도 자기를 열망하며 바라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노인은 이제 생생하게 살아난 남성적 갈망으로 열렬히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게 다 드러난 것은 아니다. 맹인은 그라츠시의 부유한 집안 아들로 신문방송학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 갔고 그곳에서 원자폭탄 실험을 참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맹인 또한 그가 처음에 주장한 것처럼 미국의 원자폭탄 실험에서 시력을 잃은 저널리스트도 아니며 옛 나치도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 더군다나 두 번째 인생이야기에서 말한 대로 폭탄을 설치하다 시력을 잃은 것도 아니다. 여비서 역시 무더기로 자신의 인생이력서를 내놓는다. 사실 그녀는 맹인협회의 바짝 마른 여사무원도 아니며 30년 동안 셰익스피어의 줄리엣 역을 연습하고도 배역을 맡지 못한 재능 없는 여배우도 아니다. 정체성에 대한 수수께끼의 최종 결과는 맹인은 유명 연극 연출가이며 재스민은 그의 가장 멋진 여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사실일까? 이 극은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연극인가, 아니면 터무니없는 통속극인가 또는 그 두 가지가 다 포함된 극인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말인가? 가면과 민낯, 거짓말과 속임수를 통한 철학적 존재 극복에서 어느 것이 더 진실인가? 관객들은 그 자신이 보는 것일까, 또는 맹인이 상상한 것을 보는 것일까?
<알프스의 황혼> 결말에서 사랑과 거짓말의 진실게임은 완전히 불투명해진다. 어쩌면 재스민은 평판이 안 좋은 창녀도, 성처녀 같은 비서도 아닌 여배우일지도 모른다. 아마 맹인은 어쩌면 나치였거나 아니었거나 혹은 예술 감독이었을지도 모른다. 여배우는 변신의 달인이며 역할은 드레스와 모자들처럼 교체된다. 최고의 거짓말과 속임수는 무대에서 가장 잘 연기될 수 있다.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약속이며 본질은 외형적 현상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배우들은 더 높은 진실을 제공하는 가장 교활한 거짓말쟁이다. 어디 연극뿐이랴. 모든 예술은 백남준이 말하듯 최상의 ‘거짓말이다. “우리 모두는 예술이 진리가 아님을 알고 있다. 예술은 진리를, 적어도 인간으로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를 파악하도록 가르쳐주는 일종의 거짓말이다·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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