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도
불확실한 이야기, 이름도 주소도 없는 희곡은 어쩌면 필요 없는 정성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의도한 것은 우리 각각의 머릿속에서 치르는 장례와 불꽃놀이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일이었다. 사 년 전 어느 늦은 여름, 한강에서 일어난다는 세계 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서울행 지하철을 타던 날이었고 그 축제는 이미 유명했는지 지하철역부터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은 헤엄치기 어려운 강을 건너는 물고기처럼 불편하게 파닥이고 있었다. 덥고 습한 내부. 두 시간째 계속되는 운행,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도통 모르겠던 지하철에선 딱, 죽은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상상 속에서 열심히 죽었다. 그나마도 도착한 한강 다리에선 수많은 인파 때문에 화장실을 가기도 어려웠다. 아뿔싸, 우리가 보러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불꽃놀이가 관람시킨 건 무엇이었나. 천천히 슬퍼질 때 즈음 폭죽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웃어도 되는 걸까 하는 얼굴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죽음과 삶은 얼마나 가까운가. 1호선 길이만 할까? 이상하게 불꽃들은 그런 기분이 들게 했다. 그 마음을 확장하여 죽음은 때때로 우울함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종종 얼결에 어둠을 믿는다. 그리고 장례를 치른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그런 종류의 어둠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내까 말하고 싶은 것은 예기치 못한 불꽃놀이의시끄러운 폭발음에 있다. 추적할 수 없는 돌. 하늘에서 화석이 될 소리가 죽은 인간에게 단말마의 경적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마지막 똥이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모두 불꽃이다.
작가소개
무대 소품이던 전화기와 시계를 보면서 그러니까 그냥 전화와 시계가 아닌 것들을 사랑하면서 스무 살에 귀신이었다가 재작년엔 창녀였던 여배우를 알아가면서 그리고 조명과 객석과 우당탕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소극장을 지망하면서 극작가를 생각했다. 치마를 입고 외출 중인 여자, 자가용이 없는 세일즈맨, 아이였던 남자와 어머니였던 여자들, 보통의 사람만이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의 비밀을 풀어놓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삶이 언어를 물려받은 이들에게 따뜻한 극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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