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위성신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clint 2017. 2. 17. 09:37

 

 

 

 

‘사랑에 관한 다섯 가지 소묘’는 사랑에 대한 여섯 가지의 대표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 부부의 사랑, 노총각 노처녀의 사랑, 버릴 수 없는 사랑, 황혼의 사랑 등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을 묘사한다.
#1. ‘권태’에서는 사랑의 감정이 무색해져버린 권태로운 사랑을...
#2. ‘Love Start’에서는 통통 튀는 젊은이들의 좌충우돌 사랑의 모습을...,
#3. ‘노총각 노처녀’의 사랑’ 에서는 말그대로 사랑과 우정사이!! 우리는 사랑일까??
사랑을 알지 못한 채 두근두근 콩닥거리는 가슴만 안고 있는 사랑을..
#4. ‘전라도부부’에서는 알콩달콩 농익어가는 부부의 사랑을...,
#5. ‘버릴 수 없는 사랑’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이별을 결심하지만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보내지 못하는 사랑을...,
#6. ‘황혼의 사랑’에서는 저물어 가는 인생의 끝에서 만나는 아련한 첫사랑을
쥐지도 놓지도 못하는 아쉬움의 가슴 저린 사랑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는 1996년<사랑은 해도 외롭다>이후 계속된 사랑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연극의 제목만 봤을 땐 왠지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가 제목인만큼 영화나 드라마같이 아름답고 해피엔딩인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을 가볍게 스케치해서 보여주듯이 극을 풀어내고 있다.
연극은 여섯가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극 전환 역시 재빠르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포함시키지 않아 제목엔 다섯개의 소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는 한 여관을 배경으로 삼아 끊임없이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랑'을 이야기 한다. 언뜻보면 각각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 듯 하지만, 극은 교묘하게 맞물려 전개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에피소드가 끝날때마다 흐르던 노래들은 내용과 궁합이 너무도 잘 맞아떨어져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6가지 이야기 중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사랑과 우정.. 차이를 이야기해주는<노총각 노쳐녀>이야기이다. 노총각 김현태의 귀여운 표정, 전소운의 깍쟁이 연기 다 좋았다. 우연히 한 침대에서 자게 된 20년된 친구사이의 자잘한 이야기 중에서 시간에 흘러도 계속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가 있다. 잠잘 때 이불을 발까지 덮어야 하는 남자와 다른 곳은 다 덮어도 발만은 이불을 덮지 않고 자는 여자의 실랭이 장면이다.
이 두사람이 결혼하면 어떻게 싸움을 해 나갈지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서 써라. 아니다 어차피 중간부터 짜서 써도 치약을 끝까지 쓰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그렇게 해야 되나 등등.. 그들이 피튀기면서 싸우는 장면은 제 3자의 눈엔 왜 그리 재미있는지. 자꾸 웃으면서 무대를 바라본다. 작은체구인 여자가 핏대를 높이면서 여관집 주인과 싸움을 하는 장면(여자는 일명 싸움닭으로 불린다) 역시 기억에 생생하다. 이 여잔 이렇게 목소리가 크니 결혼해서 부녀회장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더욱 웃음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첫사랑:다시만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백의 미도 다소 있는 듯해서 여운 역시 남는다. 앞에서 나온 <개그맨과 여자> 에피소드를 보여주었던 최요한과 송숙희는 결국은 헤어졌다. 남자의 지겨운 개그이야기에 질린 것처럼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하다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이 때 흘러나오는 음악 역시 적격이다. 오랜만에 듣게되는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가사는 구구절절 맞다는 생각을 들게 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헤어진 채로 극이 끝났다면 상투적인 극으로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머리가 벗겨지고 흰머리가 늘어난 채로 그들은 다시 만난다. 할머니가 된 여자는 젊었을 땐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끄러움까지 챙겨서 돌아와 더욱 사랑스럽다.
노년의 푸근한 사랑이야기를 보니 <늙은 부부이야기>역시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돋보기를 통해서만 사물을 자세히 볼 수 있게된 그들이지만 가방속에 고히 숨겨둔 말랑말랑한 젤리를 서로 나눠 먹는 한쌍의 오래된 커플이 왜 그렇게 정겨워보이는지.. 그 장면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느껴보지 못할 것이다.
6개의 에피소드 중 감칠맛 나는 에피소드는<사랑은 축척된다:경상도 부부>이야기이다. 3천원짜리 머리핀 선물을 그냥 무심코 준비했다는 듯히 건네는 남편과 작은 선물에 감동하는 뽀글머리 부인의 모습은 우리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가의 손길 때문에 감칠맛 난다.
제일 상투적인 에피소드는<불치병:버릴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그 에피소드 하나를 떼어놓고 볼 때는 드라마에서 많이 본 듯한 뻔한 이야기로 보인다. 불치병환자인 남편과 그 아내간의 처절한 싸움은 지금까지 보여준 에피소드들과는 다르게 눈물을 자극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는 여자에게 참으로 모질게 군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극을 너무 많이 본 걸까? 옆에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자 배우가 얼굴이 벌개진 채로 악을 쓰면서 여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장면을 보면서도 극이 너무 밋밋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면서 '아차'하면서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극 초반에 뭔가 휙 지나가버렸내 라는 생각을 줄 정도로 순식간에 보여주는<사랑을 검색하다:권태>이야기에 나온 권태로운 연인들이<버릴 수 없는 사랑>에 출연한 그들이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권태로운 연인>은 헤어지지 않고 결국 결혼을 하게되지만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불치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해 미운정이 차곡 차곡 채워지지 않은 채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연출가가 말하고자 한 바가 뭐였을까? 생각해본다. 오래된 연인은 나중에 노년에 가서도 사랑의 끈을 연결해 갈 수 있지만, 권태로운 연인이 결혼을 하게되면 결국은 끝이 안 좋다는 말을 하고자 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이렇게 돌려서 생각을 해보니<버릴 수 없는 사랑>에피소드가 참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때 흘러나오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 역시 다시생각하니 너무 좋다는 느낌을 준다. 극을 보면서 생기는 궁금증 한가지. 그런데 왜 하필이면 공간적 배경을 여관으로 잡았을까? 너무도 개인적이고 은밀한 사랑은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가 여관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배우들이 여관에서 보여주는 사랑 이야기를 관객들이 몰래 훔쳐본다는 느낌을 갖게 해 재미를 배가되게 하려고 한 의도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에는 소풍에 대한 이야기가 짬짬이 나온다. '돌려 받지 못한 돈 45만원' 역시 중간 중간 생각거리들을 던져준다. 하지만, 45만원에 대한 이야기는 극의 이미지가 그리 잘 맞아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줘서 아쉽다.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한 의도로 비춰진다. 극 속엔 나온 모든 커플들은 소풍을 가고싶어한다. 하지만 다들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어렸을때부터 '소풍'은 '설레임'을 동반하는 단어이다. 비가와서 소풍이 취소될까봐 조바심나게도 한다. 그래서 '걱정'을 동반하는 단어이기도 한다. 극 속에서 커플들은 사는 게 바빠서 소풍을 자꾸 미루거나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도 한다. 이렇게 '소풍'은 자꾸 연기된다. 하지만, 소풍 즉 사람이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가슴 설레는 소풍은 1년에 한두번 정도는 꼭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이 시들지 않고 연장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