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광수 '순교자'

clint 2016. 12. 12. 09:49

 

 

 

춘원 이광수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그가 소설 외에도 몇 편의 희곡작품을 쓰고 번역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광수는<규한>,<순교자>라는 두 편의 희곡을 썼고<어둠의 힘>,<줄리어스 시이저>라는 두 편의 희곡을 번역했다. 그러나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춘원의 소설에 비해, 희곡이나 논설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춘원의 희곡 중,<규한>보다는 더 근대적인 희곡이라고 할 수 있는<순교자>의 특징과 한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순교자>는 1920년 1월에 탈고된 작품으로, 전 1막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광수 개인으로는<규한>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대원군 시대의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던 때이다

 

 

천주교를 믿는 주인공 남매는 가정 내에서는 어머니와의 갈등, 가정 밖에서는 천주교도를 잡아들이려는 대원군과, 여동생을 첩으로 삼으려는 송씨와의 갈등을 겪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이 작품에는 총 5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한다. 우선 돌이와 순이 남매가 있다. 이들은 20대 초반의 천주교를 믿는 젊은이들이다. 돌이는 근대적인 사상을 알고 있으며, 훌륭한 인간성을 지녔다. 남매의 어머니인 백과부는 아들 돌이를 장가보내고 농사지을 땅도 좀 얻기 위해 순이를 송씨네 첩으로 보내려고 한다. 송씨는 양반으로, 부자이긴 하나 여러 여자를 첩으로 삼아 희롱한 후 버리는 타락한 사내이다. 그리고 돌이가 존경하는 마보래 신부가 있다. 그는 서양인으로, 포교를 하기 위해 조선에 와서 박해를 피해 다니는 중이다. 인물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작품의 순차적 진행을 살펴보자. (1)백과부와 돌이의 대립; 딸을 첩으로 보내는 대신 아들을 결혼시키고 땅도 얻으려는 어머니에게 돌이가 반대한다. (2)마신부의 방문; 서울의 천주교도 검거를 피하기 위해 마신부가 돌이를 찾아온다. (3)돌이가 성직을 물려받음; 마신부는 앞으로의 일에 대비해 돌이에게 성직을 물려준다. (4)백과부가 송씨와 순이의 신방 급조; 백과부는 송씨와 짜고 돌이를 멀리 보낸 후 둘의 신방을 급조한다.

이 희곡은 이광수의 전작인 [규한]과 더불어 말해주듯 관념적이며 계몽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춘원 선생>-모윤숙
시와 연극 활동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나는 1930년대의 초반기를 충성한 우정 가운데에 보냈다. 이 무렵에 각별히 친하게 지냈으며 지금까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선배 겸 친구로는 소설가 박화성씨, 최정희씨, 이선희씨와 시인이며 이전(梨專) 1년 후배인 노천명씨 등이 있다. 변영로씨가 가르쳐 주신 아나톨 프랑스 작인<타이스>라는 명작에 감명을 받았던 나는 한때 소설을 써 보고 싶었던 적이 있는지라 특히 작가인 박화성씨와 최정희씨를 좋아했었다. 당시<白花>라는 처녀 소설로 인기를 얻었던 박화성씨는 성격이 쾌활하면서도 자상해서 나의 상처받기 쉬운 성격을 감싸주곤 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소설을 쓰는 것을 편견과 질시의 눈으로 보던 세상이어서<百花>가 박화성씨의 작품이 아니라는 헛소문까지 나돌았다. 하나 대범한 성격의 박화성씨는 터무니없는 소문을 꾸준한 창작 활동과 굳은 의지로 잘 극복해 내었다. 나는 또한 [삼천리사]에 근무하는 최정희씨와도 자주 어울리며 친했는데 목욕탕까지도 함께 드나들 정도였다. 살짝 내민 덧니를 감추느라 얼굴을 돌리며 웃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가식이 없는 밝은 성격을 지금까지 좋아하고 있다.
[삼천리] 잡지의 인쇄비도 채 내지 못하면서 친구나 문인(文人)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는 [삼천리사]의 주간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씨의 비합리적인 경영 방침도 우리들의 화제에 끼어들곤 했다. 그 무렵에 파인은 최정희씨를 일방적으로 사모하고 있었으나 최정희씨는 그의 연정(戀情)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른 정열로 마음을 태우고 있었다. 훗날 그들은 다정한 부부로 결합했는데 사랑의 신은 장난기로 요술을 피워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나는 그해 여름 세브란스의 ‘부스’박사의 비서로 일하고 있던 김수임(金壽任)을 데리고 휴가차 함흥 집으로 갔다. 고아인 수임이 우리집을 가보고 싶다고 졸랐기 때문이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웃음을 잃은 적이 없는 수임은 당시 나의 문우(文友) 선배들 사이에서 ‘귀여운 여자’로 불리곤 했었다.
8월 중순쯤이었던 어느 날 여름 과일과 생선을 실컷 먹으며 동심에 젖은 채 함흥 집에서 머물고 있던 내게 함흥 호텔에서 전갈이 왔다. 춘원 선생이 건강이 쇠약해져서 휴가차 부전고원(赴戰高原)에 들르러 오신 길에 내게 안부를 전해 주신 것이었다. 틈이 나면 같이 구경을 가자는 초대에 수임이 먼저 들떠서 소풍길에 나설 것을 종용했다. 위병으로 누워계셨던 아버지도 그분의 여행소식에 기뻐하시며 나와 수임의 소풍을 허락해 주셨다.
건강이 많이 상하신 듯 주위분들의 권유로 여행을 떠나오신 춘원 선생이 내게 준 첫 인사는 ‘시를 많이 썼느냐’는 질문이었다. 춘원 선생과 동행한 C라는 분과 나와 수임은 부전고원을 향해 떠난 뒤 해발 1445m에 위치한 부전 호수까지 잉글라인을 타고 올라갔다. 어린아이처럼 산딸기와 고산식물을 따는 나와 수임에게 선생은 부전고원의 유래부터 들어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분과의 얘기는 또다시 문학으로 돌아갔고 주로 아나톨 프랑스의 문학관을 얘기했던 사실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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