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부산일보 희곡부문 당선 작
30년대 어느 마을에서 태어난 동님이라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다. 태어나서 자라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죽음을 맞아 여자의 장례식에는 다 자란 그녀의 아이들이 그녀를 보내고 있다. 앞집의 선흥댁이나 옆 마을의 방영댁도 다 그렇고 그런 삶을 보냈으니 어찌 보면 극히 평범하게 삶을 살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픔이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작은 필요 조건이라 해도, 그녀와 그녀의 남자들,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은 모두 심하게 삶을 앓았다. 삶의 중간중간에 끼인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만들어졌던 미움과 증오, 오해와 시련, 그리고 되풀이 되는 반목과 용서들. 어디까지 용서하고 어디까지 용서받아야할까 끝까지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막을 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 꼭 한 가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가족이었다는 것 몇 천 년을 살아온 이 시대는 삶 이리저리에 흩어진 제각각의 가족들에 의해 지켜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남모르는 용서와 표현할 수 없는 사랑에 의해 존속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조용히 삶을 지키고 그렇게 삶을 맺었던 한 여자를 그린다.
'장흥댁'은 한마디로 교과서처럼 쓰여진 자연주의 계열의 희곡이다. 요란한 21세기에 이런 작품이 오히려 희귀한 경우처럼 느껴졌는데,작가의 전라도 방언을 다루는 솜씨가 빼어났다. 말의 성찬이 아니라 말의 속내,말에서 묻어나오는 정서가 맑고 따뜻했다. 아직도 이런 희곡이 쓰여질 수 있구나 하는 반가움,그리고 연극은 역시 인간적 속내에서 묻어나오는 감동이 귀중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 준 작품이었다. '장흥댁'을 당선작으로 천한다.
당선소감
겨울인 대구는 2년 만이다. 집이 찼다. 아버지와 엄마는 작은 전기장판 위에서 생쥐처럼 주무시고 계셨다. 태어난 순간부터 피노키오이던 나를 늙은 제페트 영감이 될 때까지 기다리신 엄마와 아버지다. 우습지만 정말 눈물이 났다. 피노키오의 뒷이야기는 모른다. 사람이 된 피노키오는 제페트 할아버지를 잘 모시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아니면 여전히 역마살 때문에 늙은 그를 두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녔을까…. 두렵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작되려는 듯한(?) 엄마와 아버지를 두고 다시 긴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당선소감은 부모님께 숨길 작정이다). 하지만 또,그렇게 두렵지도 않다. 제페트 영감님은 사람으로 변한 피노키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피노키오를 사랑했고,나의 엄마와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사랑한다. 감사한다. 그것이 단 한 번뿐일지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으로 변한 피노키오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어쩌면 이것으로 아버지와 엄마는 다시 2년 아니,그보다 더를 기다려 주실 것이다. 단 한번도 나를 매어놓은 끈을 놓지 않은 나의 신과그리고 그가 주신 최고의 선물인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동생에게 감사한다. '장흥댁'에서 흙냄새를 맡으셨다던 김흥우 교수님,1년간 내겐 아버지 같으셨던 이종대 교수님,연극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늘 일깨워주신 김소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이윤택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약력:1980년 대구 출생. 경북대·한동대 중퇴. 현재 동국대 연극학과 2학년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