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은희 '동숭동 연가'

clint 2016. 12. 8. 21:23

 

 

 

귀에 익은 노래들과 음악들로 소란한 동숭동의 밤거리.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들, 관상을 보는 사람들, 연극인, 그리고 내일의 스타를 꿈꾸는 무명가수, 연인들, 노점상들, 경찰관, 취객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어우러지며 동숭동의 새벽은 밝아온다. 희뿌연 아침안개 사이로 청소부 이씨와 그의 아내 양씨가 어질러진 거리를 쓸고 지나가면 이 거리의 터줏대감인 생맥주집 성주 아저씨가 하품을 하면서 빈 맥주상자를 들고 나온다. “오늘도 기막힌 날씬데”하는 성주아저씨의 혼잣말 위로 “오늘도 연극쟁이한테 외상주면 이혼이유!”하는 안성주의 밉살스런 소리가 들린다. 삼수생 유하영은 출산으로 입원한 고모를 대신해서 고모 꽃가게 일을 거들기위해 아침 일찍 꽃시장에 가서 꽃을 잔뜩 사들고 오다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진수와 부딪친다. 진수는 생계 때문에 대학로에서 테이프 노점을 하며 노래연습을 하는 가수지망생이다. 한눈에 하영에게 반한 진수는 하영의 꽃들을 가게까지 운반해주며 관심을 보이고 그런 호의가 싫지만은 않은 하영. 자신의 노점은 관상보는 정도령에게 맡기고 매일 꽃가게 앞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진수. 거리의 화가인 환섭은 뮤지컬 단역배우인 명희에게 반해서 사랑을 고백하지만 스타를 꿈꾸는 명희는 그런 환섭의 태도에 쌀쌀맞게 대하며 취재온 피디에게 접근을 한다. 자신의 진심을 외면당한 환섭이 실망하여 거리로 돌아오는데 예전에 함께 일했던 일당 중에 한 명이 환섭에게 모사하는 일을 하라며 돈으로 꼬드기지만 예술혼을 돈에 팔지 않겠다며 그런 그를 쫓아버리는 환섭. 밤거리와는 다른 활기없고 조용하기만 한 동승동의 낮거리. 그러나 그런 곳에 활기를 넣는 것은 바로 진수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됨 없이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때로는 방황하는 10대들의 상담자역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런 진수의 모습에서 더욱 진실함을 느끼는 하영. 하영의 꽃집에선 두 사람의 사랑이 무르익는다. 어느날 명희에게 가수매니저란 인물이 스타를 만들어 주겠다며 명희에게 접근해 온다. 명희는 단역으로 출연하던 연극을 중도에서 그만둔 채 매니저에게 가지만 매니저는 명희를 유흥업소로 팔아넘겨 버린다. 명희로 인해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환섭은 술에 취해 밤거리를 헤매고 그런 그를 말리다가 청소부 이씨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비가 막연한 이씨를 위해 거리 식구들이 모두 나서서 묘안을 생각해 보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환섭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유흥업소에 팔려간 명희는 간신히 탈출을 하여 연극무대로 돌아오지만 연출가는 명희를 받아주지 않는다. 절망하는 명희를 다독이는 배우들, 그리고 꽃배달을 왔던 하영이 명희를 위로하면서 참사랑은 항상 옆에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며 환섭의 진실된 맘을 깨닫게 해준다. 병원비를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술집에서 일을 하겠다는 이씨의 아들을 나무라며 현실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거리식구들에게 하영이 자선공연을 제안한다. 모두가 만장일치로 자선공연을 찬성하는데 환섭이 나타나 거액의 돈을 거리식구들 앞에 내놓는다. 그림을 모사해 주기로 하고 받은 돈이라는 것을 직감한 진수는 환섭을 비난하며 돈을 받지 않고 하영은 그런 진수에게 좀 더 넓은 포용력으로 환섭의 아픔까지도 안으라고 충고하며 꽃집으로 사라진다. 자선공연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 지리멸렬하게 되어 거리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성주아저씨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 어딜 간다며 사라진다. 정도령과 단둘이 남게 된 진수. 그러나 모사일을 하지 않고 무대 그림을 그리겠다며 다시 나타난 환섭을 힘껏 껴안는 두 사람. 세 사람이 힘들게 세트를 만들고 있는데 하영에게 환섭의 소식을 들은 명희가 온다. 자리를 비켜주는 정도령과 진수. 묵묵히 세트를 세우고 있는 환섭에게 명희가 다가온다. 사랑의 이중창이 무대를 수놓으면 서로의 시선이 마주 치면서 서로 포옹을 하는데 세트가 와장창 무너지며 숨어서 보고있던 정도령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겸연쩍어 한다. 드디어 자선공연의 막이 오르는데 성주 아저씨가 고설봉을 비롯하여 많은 배우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이런 좋은 일에 우리가 빠져서 되나. 우리 공연보다 더 잘해 보자구!” 고설봉씨의 격려에 모두 환호하는 거리식구들. 목발을 짚고 아내의 손에 이끌려 공연장에 온 이씨, 그 모습에 새삼 눈시울이 붉어진다. 거리 식구들의 ‘거리사랑’의 노래소리가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가면서 서서히 막이 내린다.

 

 

 

 


문예진흥원의 창작극 지원금을 받은 극단 맥토의 창단 20주년 기념공연<동숭동 연가>는 대학로의 풍경들을 엮는 뮤지컬 풍속화의 일종이다. 풍속화이기 때문에 삶의 많은 파편들이 있고 숱한 인정들이 오고 간다. 그런 정경이 대학로 동숭동이라는 거리에서 이루어진다. 이 ‘거리’는 뮤지컬의 고전처럼 되어 버린<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등의 거리처럼 음악의 공간 그리고 무용의 공간임을 드러낸다. 이 특정적인 공간에 음악과 무용이 줄거리의 흐름을 유동적으로 끌어간다. 따라서<동숭동 연가>에서는 스토리 전개의 미숙함을 따질 것이 아니라 미숙한 줄거리 전개를 윤색시킬 만한 음악과 무용이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 옳다. 사실 이 뮤지컬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니까 작은 인정 하나하나가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셈이고, 그 인정들이 모여 대학로 동숭동이라는 현대적인 문화공간의 풍습들을 그려내는 것이다. 큰 줄거리는 이 문화의 거리에 피어 오르는 젊음의 꿈이다. 한 가수 지망생의 연정과 결부되어 있는 큰 줄거리 주변에 저마다의 꿈을 가꾸는 미완의 예술가 군상들의 삶의 궤도가 그려진다. 말하자면 ‘동숭동’이라는 문화공간에는 커나가는 청춘의 좌절과 방황과 비애와 정열과 그 결집으로서의 작은 극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뮤지컬<동숭동연가>에는 작가(오은희)의 따뜻한 시선이 있고, 그 현대적 문화의 거리를 사랑하는 연출가(이종훈)의 훈훈한 입김이 있다. 12장으로 나누어진 구성에 따라 스피디하게 장면전환을 꾀하는 무대진행은 뮤지컬인 만큼 대사를 통한 줄거리의 전달보다 무용으로서 보는 즐거움과 음악으로서 듣는 즐거움 그리고 짓거리로서의 연극적 즐거움을 내세운다. 서울예술단에서 단련된 송용태, 박철호, 이정화 등이 무엇보다 진가를 발휘한다. 대학로 동숭동의 젊음은 어떤 의미에서 강남 압구정동의 젊음과 대비된다. 다 같은 젊은 풍속도를 그리면서도 전자는 생산적인 방황의 거리이고, 후자는 소모적인 방황의 거리이다.
동숭동에도 압구정동의 오렌지족 같은 방황이 없지 않다. 그러나<동숭동 연가>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방황과 좌절 속에도 예술이 있음을 주목하고 그 예술이 비록 미완의 것이고 미숙한 것이라 할지라도 예술에 대한 그 젊은 집착은 건강한 삶에 기인하고 있음을 긍정한다. 따라서 건강한 삶에 기인하는 인정이 동숭동의 무질서를 구원하는 시그널이다. 그리하여 동숭동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들-주로 기성세대인 어른들이 보는 시각에서-도 예술을 위한 정열, 건전한 사랑, 때묻지 않은 순수, 서로가 돕는 ‘동숭동’ 공동체의식에 의해 사그라진다. 그것을 굳이 부상당한 청소부 아저씨에 대한 치료비 충당 자선공연 형식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
뮤지컬이 대체로 가볍다는 것은 상식이다. 뮤지컬이 복잡한 내용을 담기 힘든 형식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뮤지컬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음악적 정서의 공명에 따라, 혹은 무용적 정서의 신명에 따라 결정 난다는 것 또한 상식이라면 뮤지컬<동숭동 연가>는 우리 젊은 세대에게 가까운 소재, 쉽게 이해되는 주제 그리고 음악(작곡 최종혁)의 대중성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창작 뮤지컬이기 때문에 소재의 일상성이 번역물 뮤지컬에서 오는 낯선 느낌보다는 친근감의 증폭에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 음악극에 대한 앞으로의 방향설정에 이<동숭동 연가>공연도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성행하기 시작한 뮤지컬 공연들이 번역물 일색이라는 사실은 우려할 만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음악극 형식을 추구하는 창작 뮤지컬의 기획진행과 그에 따른 창작 활성화 기금의 지원 그리고 이웃 예술 장르끼리 예술단체의 동조체제와 협동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종현 '궤변'  (1) 2016.12.12
이광수 '순교자'  (1) 2016.12.12
윤조병 '성-시뮬라크르'  (1) 2016.12.06
'나운규, 필름 아리랑 '  (1) 2016.12.05
김현탁 '화무십일홍'  (1) 2016.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