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에드워드 올비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clint 2016. 11. 13. 11:31

 

 

 

07년 많은 수식어를 남기고 떠난 화제작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누가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는가!>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에드워드 올비의 새로운 화제작이다.

2002년 토니상, 뉴욕비평가협회상, 드라마데스크상, 외부비평가상 등 많은 상을 휩쓸며 미국 브로드웨이를 뜨겁게 달군 작품이다. 2007년 우리나라 초연 당시 서울문화재단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과 아르코예술극장 2007 최고의 기대작 Best&First로 선정되었다. 또한 그 해 한국연극지가 선정한 2007 공연Best7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3의 수상의 영예까지 얻었다.

 

 

 

 

염소와 사랑에 빠진 위대한 건축가 마틴은 자신의 분야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위대한 건축가다.

진실로 사랑하는 아내, 게이이긴 하지만 크게 모난데 없이 잘 자라고 있는 아들, 건축가로서의 최고의 명성 등

어느 하나 모자란 것이 없다.
오늘 50회 생일을 맞은 그는 바야흐로 인생의 최고절정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방송국에 근무하는 그의 오랜 친구 로스가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인터뷰를 하던 중

아무에게도 말 못할 그의 비밀이 밝혀진다. 다름 아닌 ‘염소’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

이 황당한 사실에 로스는 마틴의 아내 스티비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 편지를 보내고,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스티비는 엄청난 혼돈에 빠지고 만다.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는 거장다운 깊이와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유머, 시니컬한 독설과 아이러니, 인간의 모순을 에둘러가지 않는 진실과 용기를 담고 있다. 끊임 없는 웃음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와 욕망, 타인과의 소통, 함께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틴으로 대표되는 우리 현대인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있다. 게다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그리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고, 시도할 필요도 못 느끼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마틴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마틴을 이해할 수 없다는데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마틴의 상황, 혹은 상태, 아니 이미 그의 존재 자체가 고통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차라리 마틴이 성공의 정점에서 교통사고나 불가항력적인 일로 죽었다면 자랑스러운 남편, 아버지, 친구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으면서 이상한 일에 사로잡혀있는 마틴은 그 자체로 자신들의 지위와 일상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가 된 것이다.

 

 

 

 

 

도대체 존재 자체를 용서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드워드 올비가 제시한 이 연극의 또 다른 제목은 ‘비극의 정의에 관한 소고’이다. 그렇다. 무엇이 비극인가? 진정으로 우리가 ‘비극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이렇게 끝도 없이 외로운가? 마틴은 염소를 사랑하게 된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스티비는 마틴과의 관계가 위협 받게 되자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다. 지금까지는 그의 존재 자체가 무한한 힘이요 행복이었지만, 관계가 깨지는 순간 그는 끝없는 분노와 고통을 주는 존재일 뿐이다. 끝없는 나락으로 자신을 밀어 넣은 그에게 가장 강력하게 복수하는 것, 그것은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없애는 일이다. 에드워드 올비의 연극<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는 참으로 불온한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