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배삼식 '벌'

clint 2015. 10. 28. 15:00

 

 

 

 

 

 

근래 점점 사라져 가는 꿀벌과 이와는 반대로 점점 늘어만 가는 암환자의 이야기를, 양봉을 하는 지방소도시의 전원을 배경으로, 펼치는 이야기다.

연극에는 양봉업자들이 모여 있는 한 마을에, 병으로 대량 죽어가는 꿀벌로 해서 양봉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른 인물과 벌써 양봉을 그만 둔 인물, 그리고 양봉업에 고용된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그 발병 원인을 밝히려는 젊은 여성 연구원 두 사람이 등장하고, 암환자의 필수 치료요건인 청정한 물과 공기가 있는 곳을 찾은 미모의 여성 말기 암환자가 간병인과 함께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토지주인의 아들이자 마을의 우편배달부인 청년이 등장해 연극을 이끌어 간다.

꿀벌에는 토종벌과 양봉벌이 있는데, 토종벌은 꽃의 원액을 진 꿀로 저장하지만, 양봉은 업자가 이득을 높이기 위해, 100여개의 양봉 통이 있을 경우에는 꽃이 피어있는 계절이라도 1개월 단위로 설탕 20포, 골든 암피실린 20솔이나 멀티솔 500g, 햅시나 2000cc, 그리고 소금 등을 먹여 양봉하기에, 아열대나, 열대지역에서 생산되는 꿀 이외에는 극동지역, 특히 우리나라의 꿀은 진 꿀이라기보다는 진 꿀 포장의 설탕물과 다름이 없다.

꽃의 원액을 먹지 않고 설탕을 먹는 벌이 어찌 온전하겠는가? 설탕에 찌든 벌이 죽는 것은 당연한데, 멸종 원인을 찾는 여성연구원이 등장하고, 양봉업자들이 환경오염이나, 전염병 탓으로 돌리는 극 전개와, 한 걸음 더 나아가 팸플릿에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생물학자, 환경학자들의 기고가 핵심을 비껴간 내용이기는 했지만, 작가의 작품구성이나 전개가 극적이라 관극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거기에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상물에서, 자신에게 해악을 끼친 인간이나 동물에게, 벌떼가 습격해 온 몸에 새까맣게 달라붙는 장면을 많이 보아왔기에, 암환자의 신체에 새로 분봉하는 벌떼가 새까맣게 달라붙는 설정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독특한 발상이라 흥미를 갖고 극에 몰입되기도 했다. 한 여성 연구원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 양봉업자와 간병인의 접근, 토지 주인 아들의 암 투병 여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벌떼가 여인환자에게 달라붙는 장면의 환상적인 연출과 절대 절명의 장면에서도 꿈과 사랑을 향하는 아름다운 심성표현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대단원에서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 발길을 돌리는 장면에서, 환경오염과 자연폐해, 그리고 생물멸종을 관객에게 여운으로 남기며, 하나의 경고로도 전해지는 그러한 공연이 되었다.

 

 

 

 

배삼식 작가는 “전염병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우리나라의 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병들어 죽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벼랑 끝의 몰린 벌들의 무리가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이 세계는 무의미하고 목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견뎌야 할 것인가, 이 작품의 이야기는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말기 암 환자인 온가희를 비롯, 통풍 환자, 벌침 앨러지, 도박중독증, 만성신부전증, 향수병 등 저마다의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등장하는 이번 작품을 두고 김동현 연출은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태어나서 살다 죽어가는 이야기, 그 안에서 완성될 수 없는 사랑을 담은 이야기로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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