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타르튀프 혹은 죄지은 어머니> (1792)는 보마르셰의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Le Barbier de Seville)>(1775),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1784)과 더불어 피가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른바 '피가로 3부작'으로 일컬어진다. 한 가문의 25년에 걸친 변전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그려낸 이 3부작은 주인공 '피가로'를 중심으로 연작형식으로 집필되기는 했지만 각각의 작품들은 동일한 등장인물들을 출현시키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저마다 내적인 구조나 특성, 장르에 있어 개별성과 독립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이 작품들은 혼외정사, 사생아와 미혼모 문제 그리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귀족들의 초야권 등 사회적 악습과 풍속의 악덕을 고발하고 나아가 권력층의 횡포와 권력 남용 문제, 신분 질서에 대한 저항,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 문제를 좀 더 전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충실히 재현한 작품들이라 볼 수 있다.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자 보마르셰의 유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5막 구조로 <피가로의 결혼>으로부터 20년이 흐른 시점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알마비바 백작 부부는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이주하고, 피가로와 쉬잔은 여전히 알마비바 백작 부부를 섬기고 있다. 극은 백작과 백작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도박판의 결투에서 죽고, 또 다른 아들 레옹이 백작이 후견하는 처녀 플로레스틴과 사랑에 빠진 상황에서 출발한다. 백작은 레옹이 자기 자식이 아니라 로진과 자신의 하인이었던 셰뤼뱅(전작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의 하인이자 백작부인의 대자였다)의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이라 판단하고는 레옹을 배척하고 그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가문의 전 재산을 탕진해 버리고자 한다. 그리고 레옹과 자신의 피후견인인 플로레스틴의 결혼을 반대하고 그녀를 아일랜드 출신 부관인 베제아르스와 결혼시키려 한다. 피가로와 쉬잔은 베제아르스의 의도와 불순한 속내를 의심하고는 그의 정체를 캐내기로 작정한다. 베제아르스는 셰뤼뱅의 옛 동료로, 그가 죽자 그의 유품과 편지를 백작부인에게 전달해준 인물이다. 그는 로진과 셰뤼뱅의 관계 전모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백작에게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백작부인의 보석함을 열다가 실수인 척 부서뜨려, 셰뤼뱅이 백작부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발각되도록 유도한다. 백작은 플로레스틴을 베제아르스와 결혼시키면서 막대한 금액의 지참금을 베제아르스에게 건네기 위해 피가로에게 멕시코에서 도착한 금회를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피가로는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공증인 팔 씨에게 맡겼다고 말한다. 한편 로진 또한 베제아르스를 세상에 둘도 없는, 가문의 선량한 구세주로 평가하며 두 젊은이의 결혼을 추진하려 한다. 베제아르스는 자신이 편지를 빼돌린 게 들통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인에게 세뤼뱅과 관련된 모든 문서들을 태워 버리라고 재촉한다. 백작은 레옹에게 몰타의 기사단으로 피가로와 함께 떠날 것을 명령하고, 그날 베제아르스와 플로레스틴의 결혼식이 있을 거라 선포한다. 플로레스틴의 결혼 소식에 절망한 아들 레옹의 소청에 못 이겨 백작부인은 백작에게 아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 탄원해보지만 이는 도리어 지금까지 억눌러 온 백작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백작의 맹렬한 분노에 겁먹은 부인은 기절한다. 부인이 거의 죽음 직전 상황까지 내몰리자 정신을 차린 백작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 모든 상황이 베제아르스 때문에 야기된 것임을 깨닫는다. 그는 부인을 용서하고 플로레스틴과 베제아르스의 결혼을 중단하려 한다. 백작부인 또한 플로레스틴이 백작이 밖에서 낳아 온 딸임을 알게 되나 그녀에 대한 온정으로 그녀를 입양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가로에게 얼른 팔 씨에게 가서 베제아르스에게 돈을 건네지 말 것을 부탁하게 한다. 그러나 베제아르스는 이미 팔 씨에게서 돈을 찾아 다시 백작의 집으로 돌아온다. 피가로는 모두에게 아무 내색 말고 그를 안심시키자고 제안한다. 그의 의심을 따돌리려는 모의에 안심한 베제아르스는 이 돈이 사실은 백작의 돈이었음을 스스로 자백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금화는 백작에게 돌아가게 되고, 백작은 베제아르스의 정체를 밝히며 그를 집에서 쫓아낸다. 그러고는 이제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남남인 레옹과 플로레스틴의 결혼을 허락한다. 결국에 피가로가 가문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베제아르스의 음흉한 이욕의 실체를 밝혀내면서 백작 가문을 위기에서 구하고, 백작이 지난 20여 년간 회한과 죄의식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온 로진을 용서하고, 플로레스틴과 레옹의 결혼을 허락하는 것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피가로 3부작'은 커플들이 반대 세력의 방해와 갈등을 극복하고 모두 행복한 결혼에 이르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세비야의 이발사>에서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진의 결혼,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피가로와 쉬잔의 결혼, 그리고 <또 다른 타르튀프 혹은 죄지은 어머니> 에서는 백작과 백작부인이 각각 외도를 통해 낳은 자녀인 레옹과 플로레스틴의 결혼이 그것이다. 요컨대 3부작은 귀족의 결혼, 하인의 결혼, 그 자식들의 결혼까지 한 기문의 구성원 전체의 결합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원제는 ‘또 다른 타르튀프 혹은 죄지은 어머니’이다. 일반적으로 제목이 '혹은' 내지는 '그리고'로 연결되어 있으면, 앞의 표현을 주된 제목으로 내세우는데 반해,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뒤의 표현을 제목으로 내세워 <죄지은 어머니>로 명명한다. 그 이유는 앞의 표현인 ‘또 다른 타르튀프’에서 타르튀프가 이미 17세기의 희극 작가인 몰리에르가 사용한 제목이자 그의 작품 주인공 이름이므로 자칫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목에서부터 우리는 이 작품과 몰리에르의 연관성을 짐작해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이 작품은 극의 내용이나 기본 구도 면에서 몰리에르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몰리에르의 타르튀프가 오르공 가문에 들어가 오르공의 부인을 유혹하고 가문의 재산을 가로채려 했던 것처럼 보마르셰의 베제아르스 역시 알마비바백작 가문에 들어가 백작의 친딸인 플로레스틴과의 결혼을 추진하고 백작을 구워삶아 그의 재산을 자신에게 넘기게 하려는 협잡을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넓게 보면 이 작품은 몰리에르의 <타르튀프> 다시 쓰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마르셰가 몰리에르 다시 쓰기를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몰리에르 다시 쓰기는 17세기 대작가인 몰리에르에 대한 오마주의 일환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몰리에르라는 안전한 틀을 바탕으로 자신의 장르적 실험이 갖는 위험성을 어느 정도 줄이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 장르적 실험은 이 작품이 앞의 두 작품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앞의 두 작품이 18세기의 전형적인 희극장르에 속한다면, 이 작품은 드라마 장르에 속한다. 보마르셰는 작가 생애 초반에 디드로의 드라마 이론에 경도되어 드라마 장르를 시도했으나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희극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젊은 시절 실패했던 장르에 다시 도전한 것이다. 드라마가 진지함과 웃음을 뒤섞으며 부르주아의 덕목을 강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이 극은 전적으로 드라마의 이상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부인의 배신에 대한 백작의 분노, 백작부인의 눈물에 젖은 시름으로 침울함과 어둠이 한 견에 자리하고 있다면, 피가로와 쉬잔, 베제아르스가 경쾌하고 발랄한 희극적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비극과 희극의 균형감을 절묘하게 연출해 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극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장르가 달라지다 보니, 등장인물의 성격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전작들에서 명랑하면서도 거침없는 반항정신을 보여 주던 피가로는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어, 정의롭고도 진중한 인물로 변모해서 오로지 주인댁의 화평을 위해 애쓴다. 피가로는 백작 부부를 이간질하고, 자신의 잇속을 위해 거짓을 일삼으며 가문의 모든 구성원을 조종하는 베제아르스의 비열한 술수를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그의 실체를 밝히려 한다. 그는 백작 가문의 재산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발군의 전술을 발휘하지만 앞의 두 작품에서와 달리 당장의 금전적 이득에 촉수를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예 돈에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마저 보인다. 피가로의 이와 같은 변모는 일정 부분 '드라마'라는 장르 속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부르주아의 미덕을 그려내며 어느 정도 교육적 목표를 지향하는 만큼, 혁명을 통해 하인 계급에서 서민 계급으로 부상한 피가로는 이제 얄팍한 잇속이나 챙기는 계산적인 인간에서 신의와 충정을 중요시하는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인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프랑스혁명이 발생한 직후에 발표되었다. 실제로 집필 진행은 혁명 기간에 이루어졌다. 프랑스혁명 이전에 발표된 <피가로의 결혼>에서 피가로가 신분 질서의 부당함과 불공정함에 대해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혁명 이후에 바뀐 사회의 모습을 사소한 일상의 변화를 통해 보여준다. 극 초반, 백작은 피가로와 쉬잔에게 더 이상 '나리(Monseigneur)'란 호칭을 사용하지 말고 자신을 ‘므시외 (Monsieur)' 라고 부르게 하며 프랑스에 왔으면 프랑스 관습을 따르는 게 옳다고 말한다. 호칭은 기본적으로 신분과 지위 둥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자 타자와 나를 구별 짓는 가장 뚜렷한 경계 짓기의 표지다. '나리'에서 '므시외’로 호칭을 변경하려는 의지는 그야말로 이제 귀족 신분이 갖는 특권과 우위를 내려놓고 모든 서민과 대등한 입장에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상하의 수직적 위계에서 수평의 포용적 관계 맺음이 기능해졌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라 볼 수 있다. 혁명의 영향은 호칭 뿐아니라, 생활환경의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쉬잔은 "이제 마님도 외출할 때 하인을 대동하고 나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 대목은 귀족들이 일상생활에서 누리던 섬김의 예법이 상당 부분 폐기되었음을 알려 주는 지점이다. 이 같은 사회상의 변화는 피가로의 마지막 대사에서 집약적으로 표현된다. “어느 날 별안간 우리 신분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압제자도 없고 건방진 위선자도 없고요!” 피가로의 발언은 견고하던 계급질서가 무너지면서 평등사회의 첫발자국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이 작품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오늘날 공연되는 빈도는 높지 않다. 아마도 앞의 두 작품에 비해 희극성의 밀도가 떨어지고 최루성 멜로의 통속성이 두드러진 탓일 것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꼽자면, 전작들이 로시니와 모차르트 등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에 의해 오페라로 제작되면서 그 성공의 수혜를 한껏 입을 수 있었다면, <또 다른 타르튀프 혹은 죄지은 어머니>는 프랑스의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에 의해 오페라로 제작되기는 했으나 그 성과가 미비해 전작들과 같은 수혜를 입지 못한 탓도 일정부분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오페라의 성패와 상관없이 이 작품의 가치는 보마르셰의 계몽주의 사상의 완결 편이라는 점, 그리고 혁명정신에 부합하는 드라마이론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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