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어들의 거리』는 슐츠가 갈리시아의 드로호비츠에서 보낸 어린 시절 추억들을 일련의 미로와도 같은 이야기들로 탈바꿈시킨 단편집으로, 매혹적으로 단순하고 환상적으로 기이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마켓 스퀘어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그의 집 - 수많은 방들은 하숙을 주고, 또 다른 수많은 방들은 아예 잊혀져서 아무도 살지 않는 - 은 너그러운 어머니와 유리된 아버지가 그를 관습에서 자유롭게 교육시킨 배경이 된다.
정신적으로 종잡을 수가 없는 아버지가 가족들을 앞에 놓고 늘어놓는 길고 복잡한 “강연”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관심을 가졌던 여러 이슈들을 예고한다. 비록 그 일관성에서 점점 떨어지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강연들은 각각의 작품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야기의 끈을 한데 매듭지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을 통해서 슐츠는 악화되어가는 아버지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이로 인해 가족들이 받는 영향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희극성은 비감상적인 리얼리즘과 초현실적인 감수성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게끔 한다.
슐츠는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따라서 고골리와 카프카와 동일 선상에 있는 작가이다.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이었던 그는 1942년 나치 친위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가 남긴 단 두 권의 단편집은 최근까지도 거의 묻혀 있다시피 했으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문학적 찬사도 받지 못했다.

이 작품을 에니메이션 영화화 했다.
폴란드의 카프카로 불리며, 폴란드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지만 재능을 더 꽃피우지 못하고 나치에 의해 총살된 그의 작품은 1934년에 출간한 단편집과 그 이후 여러 잡지에 소개된 중·단편을 모아 출간한 작품집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80년이 지난 지금 그 두 권의 작품집을 모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다. 읽을수록 빠져드는 그의 작품이 이것뿐이라는 것이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매력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시작 부분이 낯설고 기괴한 느낌을 줘서 긴장감을 갖고 읽게 되는데,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며, 끝은 늘 나쁘지 않게 끝난다. (당시 종교계의 반발을 사지 않을 수준의). 괴팍하거나 험상궂은 첫인상의 사람이 굉장히 재밌고 엉뚱하며 따뜻하고 진지한 느낌까지 줘 썩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의 기분이랄까, 이 책은 그런 느낌을 준다. 처음 시작은 뭔가 쉽지 않을 것 같고 어두운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생뚱맞게 분위기를 전환하고, 이야기가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흐르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새 이야기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1934년 출간한 단편집 『계피색 가게들』은 소년의 1인칭 시점으로 풀어 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주를 이루는 몽환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게 전개되는 상상력의 나래들로 이루어진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집이며, 『모래시계 요양원』은 마음에 둔 소녀가 나폴레옹 왕가의 숨겨 놓은 딸일 거라고 생각하는 소년의 이야기, 미소를 머금게 하는 어느 연금 생활자의 이야기 등 작품의 소재가 더 넓어지며 작품 길이도 단편만이 아닌, 중편이 섞여 있고 작가의 심오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좀 더 많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이야기를 묶어 놓았다 해도 이 작품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라는 끈으로 묶여 있으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매력과 흥미와 재미를 더해 준다.

브루노 슐츠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인 초현실성과 신화 성을 대변해 주는 등장인물, 아버지. “그 어느 작품 속 아버지보다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아버지를 만나다.”
늦둥이로 태어난 슐츠는 병약했는데, 그의 아버지도 그다지 건강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20대 초반인 1915년에 돌아가셨고, 그 죽음은 슐츠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는다. 그리고 이후 여러 작품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대단히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때로는 점점 병약해지고 자기세계에 빠져드는 사람으로, 때로는 선지자 같은 느낌을 풍기며 추종자를 거느리는 사람으로, 때로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사람으로 여러 이야기에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개성을 뛰어 넘어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는다.
슐츠의 아버지는 새, 바퀴벌레, 파리, 벽, 게 등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런 변신은 작품에 독특한 색과 재미를 주는데, 사실 그 변신은 아버지의 죽음을 부정하고 아버지의 재등장을 설명하는 기제이며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이다. 이런 희망은「모래시계 요양원」에서는 아예 시간을 되돌려 아버지를 살려 내려고 한다.
아버지 외에 슐츠의 작품에 또 다른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그가 화가라는 점이다. 슐츠의 작품에는 이야기와 그림이 섞여 있다. 슐츠는 작가이기 전에 화가이기 때문에 소설에서도 그림 같은 장면을 묘사하려는 시도를 자주 했다. 뚜렷한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 없이 나타나는 여러 장면들이나 도시와 자연의 풍경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슐츠 특유의 초현실적인 문체로 묘사하는데, 이것이 그의 작품에 독특한 색을 만들어 낸다.
그 외에 신화나 미로 같은 요소들이 그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슐츠의 상상력과 결합해, 독특하고 기발한 이야기에 목말라하는 독자에게 기쁨을 안겨 줄 '상상력이 뻗어 나가며 만들어 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이야기'가 된다.

‘황금 아카데미 훈장 수상’
“카프카와 비견할 만하지만, 슐츠의 재능은 독특하다.”, “슐츠는 상상력으로 모든 것을 변모시키고 확장시키고 왜곡하여 꿈으로 바꾸어 버린다.” - 체스와프 미워시(Czesław Miłosz, 1980년 노벨문학상 수상)
<줄거리>
포목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몸이 점점 약해지면서 기이한 언행을 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바퀴벌레로 변해서 아델라의 빗자루 질에 쓸려 나가기도 하고 새에 푹 빠져 다락방에 각종 새들을 키우다 자신도 새가 되려 하는 등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마술 같은 일들을 펼쳐 보여 추종자들이 생기기도 하고, 너무 심오해 이해하기 어려운 강의를 하기도 하며, 때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와 담판을 져 포목점을 7년간 번영시키기도 한다. 그런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시간을 되돌린다는 모래시계 요양원에 보내지는데…….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에 찾아간 주인공은 이 이상한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슐츠의 작품 세계를 흔히 고골이나 카프카를 연상시키긴 하는데, 흔히 같은 카테고리 안에 묶이지만, 실제로 보면, 서로 같은 카테고리 안에 묶일 수 없는 작가들처럼, 슐츠 또한 고골이나 카프카라고 할 수는 없다. 슐츠의 작품에서 환상적인 소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갑작스레 현실에서 벌레로 변신하는 카프카류의 단편과 달리, 슐츠의 환상은 말 그대로 몽황적이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환상이라기보단, 꿈 속에서의 환상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변신>보다는 <소송>이나 <아메리카> 쪽이다.
단편들이지만, 모든 단편은 '나'인 프란츠를 중심으로 한 가족에 관한 단편들이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 하녀 아델라가 슐츠의 세계에서 핵심적인 인물이고, '나'는 오히려 단순히 관찰하는 서술자에 가깝다. 카프카의 강압적이고 신적인 아버지와 달리, 슐츠의 아버지는 비록 영향력은 있지만, 오히려 나약하다. 현실적이고 위압적인 아델라에게 말 그대로 복종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이 아버지란 인물 자체는 매우 몽환적이라, 발명가이자 시인, 혹은 예술가이고, '데미우르고스'적인 존재다. 그는 철학자이자, 선과 악을 탐구하는 이상주의자이고, 현실인 아델라에게 빌빌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특히 그의 일련의 '강연'들은 꽤나 슐츠의 작품 세계를 요약한 일종의 해설서처럼 보여 진다. 눈여겨볼 것은 슐츠는 거의 모든 세계를 일종의 '미로'로 만든다는 점인데, 이 점은 악어들의 거리나, 계피색 가게로 찾아가는 길목이나 심지어 요양원이나 광장, '나'와 가족들이 살아가는 도시 자체 등 말 그대로 열려있어야 할 공간들을 협소하고 단절된 공간으로 바꾸어놓는다. 어쩌면 유대인들의 게토일지도 모르겠다.
작품 자체는 사실 성격을 정의하기 꽤나 힘들다. 사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고, 희극적이면서도, 오히려 그로테스크하다. 꽤나 유대교 적이며, 종교적인 상징들과 미로와 같이 단절되고 답답한 세계, 그리고 말 그대로 정신이 분열될 듯한 몽황 적인 묘사 등등이 모여 굉장히 독특한 색채를 만드는 것은 읽는 행위 자체의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꽤나 즐겁긴 하다. 슐츠가 직접 그린 그림들도 더러 삽입되어있는데, 꽤나 기괴하긴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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