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마그다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정신과 의사 융을 방문한다. 굳게 닫혀있던 마그다의 입이 열리고 그녀의 폭력적 성적 유희와 변태적 성행위,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저질렀던 끔찍한 살인에 이르기까지, 마그다의 가슴에 묻혀있던 엄청난 기억들이 갑작스레 폭발해버린 휴화산 마냥 거침없이 터져 나온다. 상담가인 융조차도 눈과 귀를 틀어막으며 몸서리칠 정도의 악마적 비밀은 그 내용 뿐 아니라 이 이야기를 토해내는 그녀의 신들린 모습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다. 숨이 목구멍에 걸려버린 것 마냥. 그녀 내부의 그러한 악마성은 그 원인이 밝혀지며 극에 달한다.
광기어린 욕정과 폭력적 삶의 고통과 죄의식에서 벗어난 참된 삶을 갈구하던 마그다는 자신의 정신병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의 실체를 이해해 줄 또 다른 인간으로서 융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고해성사를 바침으로써 그녀를 수렁에 처넣고 끊임없이 구속해왔던 비정상적 출생비밀과 참혹했던 기억의 올가미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랜 것이다. 관객 역시 마그다의 모습에서 인간의 악마성과 무의식의 기저를 더듬게 된다.
어느 날 그에게 도움을 청하며 나타난 한 여인의 무의식 세계와 충격적인 그녀의 고백.
그는 그 일을 자서전 속 '상담일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 부인이 날 찾아왔다. 그녀는 이름을 밝히길 거부했다. 그녀가 나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차라리 고해성사였다." 이 만남은 모리스 웨스트의 극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빚어졌다. 『유리로 만들어진 세상』이란 소설로. 그리고 지금 무대에 올랐다. 『용서』라는 극으로써...

융의 정신분석학은 의학 전공분야이므로 잘못 해석한 작가의 의도나 연출 방향은 우리의 인식에 큰 오류를 범하게 할 수도 있다. 극단 사하의<유리로 만들어진 세상>(충돌2소극장, 1994.8.31일까지)에서 각색과 연출을 맡은 송종석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통해 여자환자 마그나(김순이)의 속 깊이 감추어진 병인(病因)을 의사 융(원근희)으로 하여금 끄집어내게 한다.
외과 의사만이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도 정신과 영혼의 환부를 도려낼 수 있다. ‘마그나’라는 여인은 분열된 세계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분열증상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은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이다.
성서의 막달레나처럼 그녀는 정신과 의사에게 자기를 다 드러내는 고해성사를 통해 구원받고 싶어한다. 그녀의 인생여정은 사랑의 라이벌을 죽이고 암에 걸린 남편을 안락사시키는 살인 유혹의 원인(遠因)을 무의식 가운데서 찾아내려는 몸부림의 연속이다. 그녀의 잔인성은 그녀가 외과의사라는 직업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 있는 그 병소(病巢)를 도려내고 싶은 데 있다.
마침내 칼 융은 그녀의 분열증 속에 있는 아버지상을 잡아낸다. 그녀가 남편을 교살할 때 그 장면을 지켜본 딸의 시선이 그녀 양심의 가시가 되었다면, 그녀가 어렸을 때 정사하는 부모와 더불어 그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은 근친상간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복선 역할을 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정부가 되었다. 그 엄청난 사실이 달아난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복수라는 사실과 맞닿아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유리로 만들어진 이 세상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 관계는 언제 무너지고 깨질지 모르는 구조 위에 떠 있다.
<유리로 만들어진 세상>에는 옷 벗는 장면은 없다. 정신분석학의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나온 극단 사하는 어떤 의미에서 외형으로 벗기는 연극보다 훨씬 심각한 벗기기 드러냄 현상으로 우리 속에 있는 성적 잠재의식에 다가선다. 근친상간도 단순한 근친상간이 아니라 부녀 사이의, 그것도 복수심으로 형성된 근친상간이 한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가운데 벗기고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약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여러 필명으로 출간된 초기 작품 몇 권을 포함해 약 30권의 책이 27개 국어로 번역되어 6,000만 부 이상 팔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논픽션 〈태양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Sun〉(1957; 〈그림자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Shadows〉이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됨)과 소설 〈악마의 옹호자 The Devil's Advocate〉(1959)·〈어부의 신발 The Shoes of the Fisherman〉(1963) 등이 잘 알려진 작품들이다. 로마 가톨릭의 영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으며, 작품 속에는 교회의 내막이 잘 드러나 있다. 종교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음모 이야기는 종교 스릴러라는 명칭이 붙었다.
웨스트는 그리스도교 형제단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나 수도사로서 규율에 얽매인 생활을 하는 것은 자신의 소명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종신 서약 직전에 그리스도교 형제단을 떠났다. 그 전인 1937년 멜버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근대 언어와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군에 입대해 소위까지 진급했다. 1943년에는 총리를 지낸 윌리엄 모리스 휴스의 비서로 6개월간 일했으나 얼마 뒤 헤럴드라디오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겼고, 나중에는 직접 라디오 방송 제작사를 차리기도 했다. 신학교에서 생활한 경험을 기록한 처녀작 〈내 호주머니 속의 달 Moon in My Pocket〉은 1945년에 발표되었다.
웨스트는 1950년대 초반에 신경쇠약을 겪은 뒤, 세금 납부 부담에 시달리며 〈모래 위의 교수대 Gallows on the Sand〉(1955)와 〈쿤두 Kundu〉(1956)를 썼다. 그는 이 두 책이 어느 정도 팔린 덕분에 이탈리아로 이주할 수 있었으며, 그곳에서 마리오 보렐리 신부와 함께 거리의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다가 영감을 얻어 쓴 책 〈태양의 아이들〉이 처음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에 나온 그의 작품들 가운데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가운데는 〈악마의 옹호자〉(1977년 영화화)·〈벌거벗은 나라 The Naked Country)(1960; 1985년 영화화)·〈어부의 신발〉(1968년 영화화)·〈캐시디 Cassidy〉(1986; 1989년 영화화) 등이 있다. 영화 외에 라디오 드라마나 연극으로 각색된 작품들도 있다.
그외의 작품으로는 희곡 〈이교도 The Heretic〉(1970)와 소설 〈신의 어릿광대들 The Clowns of God〉(1981)·〈나사로 Lazarus〉(1990)·〈연인들 The Lovers〉(1993)·〈소멸점 Vanishing Point〉(1996)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집회의 추문 Scandal in the Assembly〉(로버트 프랜시스와 공저, 1970)이 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소설 〈마지막 고백 The Last Confession〉을 집필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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