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옥타비아와 그녀의 유모가 자신들의 고난과 가문의 붕괴를 탄식한다. 유모는 옥타비아에게 안전을 위해 네로에게 굴복하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옥타비아는 네로를 향한 적개심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시민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예전 로마시민들이 폭군들을 어떻게 몰아냈는지 노래한다. 이어서, 그들은 네로가 그 폭군들과 유사하게 아그립피나를 죽인 것을 회고한다. 처음엔 해양사고를 가장해서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다가 그것이 실패하자, 칼로 죽였다는 것이다.
세네카가 등장하여, 자신이 평화로운 망명 생활로부터 소환된 것을 노래로 한탄한다. 그는 인간들의 악이 점점 더 커가는 것을 꼽아본다. 이제 그것은 절정에 도달해 있다.
곧이어 네로가 등장하여, 우선 어떤 두 인물을 처형하라고 명한다. 세네카는 네로에게, 백성들에게 자비를 보이고 그럼으로써 인기를 얻는 것이 안전을 확보하는 더 나온 길이라고 설파한다. 하지만 네로는 권력이란 공포와 무자비를 통해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네카는 네로에게 네로가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폽파이아와 결혼하는 것을 시민들이 지지하지 않으리라고 한다. 네로는 그 충고를 비웃으며 바로 내일 결혼식을 거행 겠노라고 선언한다.
둘째 날
아그립피나의 혼령이 나타나서, 살인마인 자기 아들과 그의 결혼식에 저주를 보낸다. 아들이 살해될 것을 예언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옥타비아가 왕궁을 떠난다. 그녀는 자신이 이혼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을 품고 있다. 시민들이 격앙하여 왕궁으로 돌진하려 한다.
셋째 날
폽파이아가 침실로부터 달려 나온다. 정신이 나간 채 간밤에 꾼 악몽을 전한다. 그녀는 자기 시어머니의 혼령이 횃불을 흔드는 것과, 자기 전 남편과 아들을 꿈속에 보았는데, 네로가 뛰어들어 남편(또는 네로 자신의 목을 칼로 찔렀단다. 어제의 화려한 결혼식과 완전히 대조되는 무겁고 수수께끼 같은 꿈이다. 그녀의 유모는 그 꿈을 좋게 해석하려 애쓴다. 폽파이아에게 우호적인 무리가 폽파이아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전쟁이 달려와서 대중이 플라이아의 조각상을 뒤엎고 있으며, 이제 궁전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전한다. 동시 합창단이 궁전을 공격하는 무리를 비난하며 사랑의 신을 이길 순 없다고 노래한다. 분노한 네로는 도시에 불을 질러 폭도들을 응징하고 모조리 거지로 만들어 버리기로 결정한다. 그는 근위대장이 그저 폭동을 가라앉히는 것에 만족하 고 있다고 질책하고는, 옥타비아와 그녀의 지지자들을 추방하고 처형하라고 명한다. 대중의 호의가 당사자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고 말한다.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폽파이아와 결혼하는 것을 시민들이 지지하지 않으리라고 경고한다. 네로는 그 충고를 비웃으며, 바로 내일 결혼식을 거행하 노라고 선언한다. 옥타비아와 합창단이 노래로 대화한다. 옥타비아는 자신이 죽을 것을 예상하고 있다. 합창단은 그녀를 동정한다. 그 집안 다른 여성들의 운명을 상기하고 로마가 스스로 멸망하고 있음을 개탄한다.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은, 네로가 아내 옥타비아를 버리고 새로운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면서, 그것에 반대하는 대중의 폭동을 계기로 옥타비아를 추방하고 처형시킨다는 것이다. <옥타비아>의 저술 연대는 이 작품과 관련된 쟁점 중 가장 논란 많은 주제다. 일단 현재로서는 이 작품이 세네카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거의 없어진 듯하다. 문체상으로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 작품 안에 네로의 죽음을 예언하는 대목이 나와서 더욱 그렇다. 작품 속에 세네카 자신이 직접 등장한다는 점도 의혹을 산다. 하지만 네로 몰락 후 어느 정도 있다가 이 작품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전통적으로 플라비우스 가문 황제들(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아들들) 치하에서 나온 것이란 설이 유력했는데, 근래에 갈바 황제(네로 자살 직전에 반란을 일으킨 사람) 때 쓰인 것이란 설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갈바 설의 근거는 이 작품에서 갈바의 정치적 선전과 연관된 내용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플라비우스 시대 설의 근거는 이 작품에서 네로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복권시키려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한편 작품 성립 연대를 작품에서 다뤄지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던 때로부터 되도록 멀리 잡으려는 학자들은 이 작품 내용이 대체로 문서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내용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네로 시대의 역사 기록들과 많이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 내용이 다른 기록들 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랜 시간 뒤에 만들어지진 않은 것 같다. 즉, 작가가 직접 사건을 목격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아주 정확한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다. 한편 운율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이 작품에 쓰인 운율은 세네카 운율과 상당히 가까워서, 작품 연대를 세네카로부터 아주 멀게 잡기는 어렵다. 프루덴티우스까지만 가도 벌써 세네카와 다른 운율을 사용하며, 서기 4세기 문법학자들은 비극 운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옥타비아> 속 사건은 사흘에 걸쳐 일어나며, 전체적으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딸인 옥타비아가네로에게 이혼당하고 이어서 추방되는 내용을 다룬다. 이 사건은 서기 62년 5월과 6월 사이에 일어났다. 실제 사건은 피긴 시간을 두고 일어났지만, 작품 속에서 사흘로 시간을 설정한 것은 당시의 연극 관행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구성은 일종의 '세 장점이 그림'(triptych)처럼 되어 있다. 가운데에 결혼식 날이 있고 그 앞뒤의 날이 서로를 비추는 형식이다. 첫째 날에는 옥타비아와 유모 사이의 대화가 있고 셋째 날에는 폽파이아와 유모 사이의 대화가 있다. 첫째 날에는 네로와 세네카가 토론하고, 셋째 날 근위대장이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과 나중의 장면이 서로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음을 보여줄 때 유용한 방식이다. 이 작품에는 합창이 다섯 차례 나온다. 첫째 날과 둘째 날에 각기 한 번 씩, 셋째 날에 세번. 합창단은 두 무리로 구성되어, 첫째와 둘째 날은 로마의 일반 시민들로 셋째 날은 폽파이아 지지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식의 두 합창단을 운용한 다른 사례로 <아가멤논>과 <트로이아 여인들>을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합창단은 무대 위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인데, 이 작품에서는 특이하게도 합창단이 옥타비아를 지지하여 네로의 궁정을 공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옥타비아>지만 사실 옥타비아는 대사 비중이 별로 크지 않다. 세네카 네로 아그림피나, 폼파이아 등 여러 다른 등장인물에게로 초점이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옥타비아의 상황과 그녀의 심리 상태가 주목되는 부분은 첫째 날 첫 장면뿐이다. 이 작품에서 옥타비아는 소포클레스 <엘렉트라>의 여주인공을 본떠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로서는 네로와 옥타비아 사이의 직접 충돌을 기대하게 되지만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네로가 그녀를 처형하려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에게 맞섰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중이 그녀 때문에 폭동을 일으킨 것에 화 나서다. 셋째 날 부분은 여러 장면이 짧게 교대되어 매우 빠른 호흡을 보이는데, 이는 세네카 방식이라기보다 당시 역사극들의 특성이다. <옥타비아>는 로마의 실재 인물들이 등장하는 비극 중 온전히 전해지는 유일한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서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세네카 비극이나 희랍국과 다른 옥타비아만이 보이는 특성들은 다른 로마 역사극들도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흘간의 사건으로 극을 구성한 것이 대표적 사례인데, 이런 방법을 통해 긴 시간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사건들을 한 작품 안에 넣을 수 있었다. 이 런 곡들은 장면 전환도 매우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아마도 세네카의 것은 아닌 듯하지만, 세네카의 산문을 많이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세네카의 독백 부분과 네로와 세네카의 토론이 세네카의 <관용에 관하여>(De clementia)와 <헬비아에게 드리는 위로>(Consolatio ad Helviam) 내용을 많이 빌려 썼다고 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많은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세네카 특유의 어떤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는데, 이따금 등장인물이 던지는 날카로운 경구가 그것이다. 작가가 그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혹시 당시에 세네카의 문제에 대한 비판이 있어 거기 대응하는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추정도 있다.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 또는 서기 1~65년) 스페인 코르도바 출신으로, 로마의 철학자, 연설가, 정치인, 작가이다. 폭군 네로의 어린 시절 스승으로 널리 알려졌다. 어려서 로마로 이주해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리와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대에 원로원 의원을 지냈다. 서기 41년 칼리굴라 누이인 율리아 리빌라와 간통했다는 혐의로 코르시카로 유배되었다가 아그립퍼나의 초청을 받아 서기 49년 네로의 스승이 되어 복권한다. 훗날 피소의 네로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고 고발되어 목숨을 잃는다. 주요 작은 스토아 윤리학을 담은 철학적 에세이 14 편지 124편이다. 그에드 자연과학 저작인 <자연의 문제들> (Naturales Quaestiones)과 <클라우디우스 황제 호박 만들기> (Apocolocyntosis divi Claudii)가 있다. 비극작가이기도 한 세네카가 남긴 비극 작품 10편은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유일한 로마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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