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백으로 시작되면 나는 죽었고,
저승에서 생전에 존경하던 선생을 만나고,
술 한잔 하며 그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어느 여성포르노 배우의 촬영 현장에 뛰어들어 칼로 그녀의 유방을
절단하고 구속되어 정신과 병원에 수감된다.
여기서 의사와의 대화로 흉기 사건의 진의를 조사받는다.
어머니는 지하 갱도에서 마늘을 까는 일을 한다.
봉급을 받고 하는 일이고 무진장 마늘이 들어오기에 수다를 떨면서도
마늘을 까는데, 최근에 그녀는 머리가 빠지며 두통이 심해진다.
아버지는 화장장에서 일한다. 그런데 도통 손님이 없기에
동료들과 걱정이 늘어간다. 게다가 아버지는 다리 한쪽이
조금씩 짧아져 가고 그 걱정 때문인지 두통에 시달린다.
큰 딸 은희는 관광가이드로 교육을 받고 본격적으로
일본인 관광객을 만나 가이드를 한다. 그리고 관광이 끝난 후,
호텔로 모시고 와 동침을 한다. 그렇게 교육도 받았고
그래야 돈도 제법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둘째 손녀 소영은 극락교라는 사이비 종교에 푹 빠져 있다.
나는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약물치료도 받고 의사의 질의에 조금씩
흉기 사건의 의도를 밝힌다. 나는 입산 수도하여 백일기도를 올리고
깨우치려 했으나 안 되자, 자살을 결심하고 뛰어내려 죽으려는 순간
한 혼령 ‘그’를 만나 그의 계시를 받게 되는데 녹두(동학혁명)의 수인으로
그에게 “팔도의 의병은 조선의 가장 더러운 피로써 제를 올리고 진군하라!”고
명을 내린다. 그래서 포르노스타 윤석자를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계속 두통에 머리는 빠지고,
아버지는 동료들의 부추김에 짧아진 다리를 잘라 화장하고 제사를 지내면
다리도 다시 낫고, 이 화장터도 번성할 거라는 꾐에 다리를 자른다.
은희는 임신을 하게 되고, 병원을 찾는다.
나는 어느덧 그와 동일시 되어 말과 행동이 더욱 투철해지자 의사는 치료라는
명복으로 강한 약을 쓰게 되어 어느 날 깨어나자 못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화장장에서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극락교 교주가 주제하는 장례식을 치른다.
어머니는 머리가 빠지고 아픈 게 더 슬프고,
아버지는 잘린 다리를 더 아프게 외친다.
은희의 배는 남산만하다.
나는 저승에서 선생과 술을 마시며 막이 내린다.
< 미친 사나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박근형 작, 연출의 <아스피린>은 극단 76에서 1994년 공연되었다.
나를 중심으로 할머니, 부모, 그리고 두 여동생의 사연들이 조각조각 연결되는 이 작품은 100여년전 동학 때의 일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일이 얽혀 있고, 일본인 기생관광과 부조리한 사회의 만연된 성 풍조, 사이비 종교 등등을 비난하면서도 재미있게 짜여진 대본으로 서글픔과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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