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마저도 차마 애도하지 못하는 죽음이 있다. 갑작스러운 자식의 죽음 앞에서 슬퍼할 권리조차 박탈 당한 부모는 단장지애(斷腸之哀)의 고통 속에서도 그 자식을 가슴에 고이 묻을 수 없었다. 자식이 다른 아이를 죽이고 자살한 살인자이며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왜 그랬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다면 해명도 변명도 할 수 없는 가해자의 유족들은 남겨진 비난과 책임만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연극 <견고딕-걸>은 가해자의 유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배제를 감수한 채 견고한 슬픔의 그늘 속에 갇혀버린 수민이 가족의 이야기다.
<견고딕-걸>은 가해자나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유족을 등장시키지 않고 가해자의 가족에만 철저히 집중한다. 2년 전 어느 날, 가족들은 독서실에 간 줄 알았던 쌍둥이 동생 수빈이가 급행열차가 지나가는 선로에 한 사람을 밀어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경찰의 연락을 받은 엄마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서둘러 문제가 될만한 수빈이의 물건들을 파기한다. 이로 인해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은 수빈이가 왜 그랬는지 알 기회를 놓치고 만다. 명백한 고의적 살인 앞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조차 큰 죄책감이 되어 그들의 삶을 옥죈다.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기는 관객도 마찬가지이다. 가해자인 수빈이와 피해자인 한지은과의 관계는 물론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전혀 알 수 없기에 사건의 실마리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가해자나 유족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도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두 가족의 심정을 감히 비교하는 것은 불경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수민이네처럼 범죄를 예견할 수 없었던 가해자의 가족 역시 그동안의 살아온 삶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분노 속에서 개인의 존재마저 부정당한다.
<견고딕-걸>은 가해자 가족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애도의 방식을 고민한다. 수빈이와 사건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알게 되는 것마저도 두려운 수민이 가족에게는 원망과 자책만 남는다. 일란성 쌍둥이이기에 수빈과 똑같이 생긴 수민이는 많은 괴롭힘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동시에 그 똑 닮은 얼굴로 피해자 가족에게 사죄하고 싶다. 학교마저 강제로 그만두고 성형수술마저 고려하던 수민이는 피해자에게 각막을 이식받은 미나의 접근으로 피해자의 심장을 이식받은 현지까지 만나게 된다. 이들과 함께 한 여정에서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구할 용기를 얻게 된 수민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적응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자 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운이 좋다면 내일도 그럴" 평범할 수 있던 일상으로 수민이와 가족들은 돌아갈 수 있을까.
<견고딕-걸>은 청소년인 수민이가 가해자 가족으로서 자신만의 애도의 방식으로 상처를 끌어안고 내면을 치유하고자 하는 성장 드라마다. 열여덟 살 수민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극은 단편소설을 연상케 하는 내레이션과 짧고 가벼운 대사들이 운율과 리듬을 살린 랩처럼 연기된다. 간결하게 압축된 느낌의 장면들은 말장난이나 농담 같은 언어유희로 진지한 주제의 무게감을 상쇄하고 과도하 게 느껴질 만큼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수빈이 사건으로 수민이와 부모님은 각각 싱크홀, 블랙홀, 맨홀과 같은 구멍 난 자신의 세계를 실감하는데,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라임을 맞추고 놀이처럼 과장된 액션으로 희화화하여 관객의 감정적 거리 유지를 돕는다. 공연은 터미널에서 미나를 만나는 첫 트랙 이후 2년 전 사건 당일부터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빈 무대에서 짧은 트랙들의 시공간 전환이나 다소 비약적으로 느껴질 전개도 연기와 간단한 소도구만으로 상상하기 충분하고 무리 없이 연결된다.
박지선 작가는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한 범인 엄마가 쓴 책에서 이 극의 창작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살인 범죄이지만 가해자가 사망함으로써 공소권이 소멸된 상황에서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디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가족의 범죄를 공모하거나 방조하지 않은 이상 가족에게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가해자는 남겨질 가족을 생각해봤을까? 일단 가해자 가족의 고통과 실상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수빈 엄마의 말처럼 '가정환경이 불안하거나 부모나 애가 문제가 많거나' 또는 학교폭력 등의 사정이 있었다는 점이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직접적인 사과도 받지 못한 피해자의 엄마는 가슴에 대못이 박혔지만 죽은 자식의 장기를 기증했다. 이에 비해 수빈이의 부모는 피해자 부모를 찾아가 용서를 빌지 않았다. 자기 자식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며 알아내려 했고 가족들조차 일축해버리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우기는 수민이 엄마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 자기 계발 서적을 내고 스타강사로 활동했던 수빈 엄마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범죄였고 그만큼 수치심이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수빈의 장례식장에서 죽은 피해자에게 미안해서 자식의 극락왕생도 빌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수빈이를 보고 싶어 하는 것조차 안 된다고 생각하며 가해자 부모 모임에 나가는 엄마의 심정은 “괴물이 괴물을 낳는다"라는 대사에 담긴 자괴감과 죄책감이며 스스로 형벌을 내리는 것이다. 자식의 다이어리를 펼칠 용기가 안날만큼 자식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기에 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에 비해 남극기지 기상관측 사였던 아빠는 '이미 벌어진 일'이라며 '잊혀질 권리'를 운운하며 사건을 잊고 싶다고 말한다. 가해자 가족이 사건을 접하고 받은 충격과 데미지를 수민이의 트랙에서는 씽크홀, 엄마의 트랙에서는 블랙홀 그리고 아빠의 트랙에서는 가장 구멍이 작고 강도가 낮아 보이는 맨홀로 표현한다.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는 아빠의 자책에도 불구하고 혼자 집을 떠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모습은 외면 또는 회피로 보여 엄마와 아빠가 도식적으로 그려진 점이 없지 않아 아쉽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인 만큼 수민이 가족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가해지는 사이버 폭력으로 고통받는다. 공익이라는 명분의 신상 털이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익명을 기반으로 한 비난과 욕설의 악플을 사회정의 구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수빈이와 똑같이 생긴 수민이에게는 항상 수빈이의 해시태그가 붙었고 거기에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인격모독과 저주를 퍼부어 댔다. 뉴스를 통해 반성 없는 가해자와 그를 두둔하는 가족들의 2차 가해를 수없이 목격하며 누적된 분노와 피로감이 증오와 혐오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차별한 집단공격을 받고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을 연쇄적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비극에 누구나 등장인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용서한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무분별한 오해를 피할 수는 있지 않을까. 피해자 지은의 부모님을 만나 용서를 빌겠다는 수민의 말을 듣고, 엄마는 강연장에 다시 서고 아빠는 수민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촬영하려 카메라를 켠다. 엄마도 아빠도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눈이 부시다'고 조명과 카메라를 끄는 것은 눈물을 차마 보일 수 없어서 일까. 대본의 마지막 장에서 미나의 손을 놓고 이를 악물고 뛰어가는 수민의 눈물이 보이는 것도 같은 마음으로 읽혀진다. 삶의 희망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수민이 가족의 리셋! 처럼 말이다. 가해자의 가족이기 이전에 평범한 가정이었고 인격을 지닌 한 인간이라는 점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견고딕-걸>은 '태풍이 쓸고 가도 울 수 있는 매미처럼 그들이 침묵하지 않고 충분히 애도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좌절의 순간에 피해자 한지은의 장기기증으로 새 삶을 얻은 미나와 현지가 수민을 도왔듯이, 타인에게 연민을 갖고 내민 손이 견고한 아픔을 녹여내기 시작할 것이다. - 이유라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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