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새봄 '강철여인의 거울'

clint 2023. 5. 24. 21:14

 

혼자만의 방안에서 상상속에 빠져들기 일쑤인 노처녀강철에게

알 수 없는 거울이 배달되고, 강철은 그 크고 오래된 거울 안에 살고 있는 유령을 발견한다.

내키지 않는 거울 유령과의 동거가 시작되고,

본 것을 그대로 말하고 싶어하는 거울 유령의 참견 때문에

제멋대로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강철의 일상은 엉망이 되어간다.

특히 강철을 애태우는 남자나만도를 둘러싼 진실에 대해서는

강철거울이 서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이 보는현실을 고집한다.

결국 둘은 각각 자신들의 전부를 걸고 진실을 알아보기 위한 내기를 하는데,

결과는 강철의 참패. 강철은 거울유령의 말대로 오랫동안 외면해오던

끔찍한 현실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고, 충격과 혼란, 고통 속에서

강철은 내기에 대한 약속도 잊은 채, 유령이 사는 거울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진짜 희망은 깨진 거울조각들을 밟으며 비로소 성큼성큼 다가온다.

 

 

<강철여인의 거울>은 어느 노처녀의 독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주인공인 노처녀 강철은 자신만의 공간에 숨어 꿈꾸기를 즐긴다.

그녀가 꾸는 꿈은 현실 직시를 피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끊임없는 자의적 오해와 의도적 착각만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아름다운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말하자면 자신만의 공간에 숨어 실제적으로 일어났던

하룻동안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아름다운 동화로 각색해 내곤하는 여자다.

그러던 그녀에게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거울이 찾아오고,

짓궂은 거울은 그녀가 각색한 현실과 실제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심하게 실패한 연애를 운명적인 비극으로 믿고 싶었던 노처녀 강철은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려다가 오히려 처참한 현실 앞에 서게 된다.

오해없이 바라봐야 하는 현실이란 그녀에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현실에서는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되버린 강철은 거울 속 세계로 가버린다.

현실이 방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세계로.

인간이란 언제나 아름다운 오해를 통해 꿈꾸고 그 아슬아슬한 행복을 부여잡으려고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나약한 꿈을 꾸는 인간에게 모질고 처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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