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조정일 '기억할 만한 지나침'

clint 2023. 1. 25. 20:31

 

 

한 회사의 인사과, 과장과 대리가 해고 대상자에게 통보 문자메시지를 보내려 문구를 잡고 있다.

결국 인터넷에서 샘플을 찾아 통보를 한다. 그 중에 과장과 외모가 비슷한 한국인(안경으로 통칭. 안경만 벗으면 과장과 똑같다는 데서)이란 계약직 청년이 있다. 그 친구 얘기를 한참 하는데, 얼마전 부친인지 모친인지 상을 당했다는 걸 기억한다. 과장은 오늘 점심을 사줬다는 얘길 하는데, 알고 보니 회사 식당에서 식권을 놓고 온 그에게 식권을 줬다는 것. 과장은 눈이 침침해서 안약을 살 겸 퇴근하고, 대리가 홀로 남아 마무리를 하는데그 안경이란 직원이 온다. 과장님을 뵈러대리가 퇴근했다고 하자 대신 전해달라고 식권을 여러 장 건넨다. 곧 해직하니 필요가 없기 때문. 대리는 문득 회사에서 준 완도 김선물을 그에게 준다. 그리고 헤어진다. 밖에는 눈이 오는데 대리는 아직 일 때문에 퇴근을 못한다

 

기형도

 

이 희곡은  기형도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란 시를 모티브로 조정일이 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 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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