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레르몬토프 '이상한 사람'

clint 2023. 1. 11. 08:37

 

<이상한 사람> (1831)에서는 이전 작품들이 장르를 '비극'으로 명시하고 5막 구성을 유지한데 비해, 막 구분 없이 13장으로 이루어진 '낭만적 드라마'라는 새로운 형식을 취한다. 내용면에서는 전작과 거의 유사하여 전작의 개연성과 구성의 문제를 보완한 개정판이라 볼 수 있다.

 

 

블라디미르의 부모는 어머니가 저질렀던 부정으로 인해 오랜 기간 별거 중이다.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블라디미르의 어머니 마리야는 죽기 전에 남편과 화해하기 위하여 모스크바를 찾는다. 아버지 파벨은 세간의 이목과 또다시 기만당할 가능성을 두려워하여 화해를 거부하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비난한다. 부자간의 불화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악화되고 아버지는 아들을 저주한다. 주인공인 블라디미르는 사교계의 아가씨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적극적으로 구애하거나 청혼하지는 않는다. 주인공을 사랑하는 공작 영애 소피야는 그들 사이를 교묘하게 이간질한다. 결국 나타샤는 블라디미르를 버리고 주인공 친구인 벨린스키의 계산적인 청혼을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죽음과 실연으로 충격을 받은 블라디미르는 실성하여 죽는다.

 

작가의 글 

나는 평생 날 괴롭혀왔으며,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실제 사건을 극의 형식으로 서술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묘사한 인물들은 모두 실제의 삶에서 취해졌으며,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후회가 그 사람들의 영혼을 찾아갈 터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불행한 이의 영혼을 변호하려 했고, 또 그래야만 했다! 나는 사회를 정확히 묘사했는가? 모르겠다! 최소한 내게 있어 사회는 언제나 극도로 오만하고 무감각하며, 천상의 불의 가장 작은 불꽃이라도 간직한 영혼에 대한 질투로 가득 찬 사람들의 모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사회의 판결에 나 자신을 맡기는 바이다.

 

 

 

극의 행위는 약 6개월에 걸쳐 발생하며 각 장의 시간 간격이 점점 줄어들고 후반에는 같은 날 안에 긴박하게 진행되는 양상을 띤다. 1장은 도입부로 한 장면 안에 주 플롯의 反인물인 파벨과 부 플롯의 反인물인 벨린스키가 주인공과 대조되어 등장하는 효율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2장에서는 사각관계의 여성인물들을 소개되고 부플롯의 자극적 계기인 소피야의 복수 결심이 등장한다. 3장에는 주플롯의 한 축인 마리야의 등장과 자극적 계기인 마리야의 건강 악화가 제시된다. 4장에서는 주인공의 시가 주인공 또래 청년들의 경박한 민족주의를 대조적 배경으로 깔고 소개된다. 시를 통해 드러나는 주인공의 천재적 면모는 현실적인 사교계의 배경에서는 드러날 수 없는 그의 실체로 사건 진행을 멈추고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는 독백이 시의 형태로 동기화되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멈춤은 극작술 상으로는 앞 장면의 효율적인 진행과 대조를 이루어 완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장면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지 않으며 사건 진행과 무관하다는 점은 구성상의 약점에 해당한다. 5장과 6장에서는 벨린스키와 소피야의 계략에 의해 부플롯이 상승한다. 정점인 7장은 파벨과 마리야의 화해가 거의 성사되었다가 결렬되는 장면으로 블라디미르의 실패한 행위는 그의 죄의식으로 이어지고 8장의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결정적인 파멸로 몰아간다. 9장에서 나타샤는 벨린스키의 청혼을 승낙하여 부플롯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다. 짤막한 10장에서는 아버지의 저주가 하인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인간과 열정」의 정서적 정점을 이루었던 장면을 제3자의 입장에서 간략하게 처리한 것은 독백을 시로 처리한 선택과 더불어객관화를 위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아버지에게 저주를 당한 후 하인과 나누는 대화는 거의 바뀌지 않고 다시 사용되었으나 이어지는 긴 독백은 훨씬 짧고 차분한

것으로 바뀐다. 12장의 파국은 사각관계의 종결에 해당한다. 주인공과 나타샤의 관계는 다시 한 번 시로 표현되며 동기화되지 않은 독백이나 방백은 거의 사라진다. 13장의 에필로그 에서는 주인공의 파국인 광란과 죽음이 역시 제 3자의 입장에서 묘사된다.

 

극작품 「이상한 사람」에서는 선명하게 구분되는 주플롯과 부플롯이 합세하여 주인공을 압박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두 개의 플롯은 反세력으로서의 사교계에 기반을 두고 있어 전체적으로 주제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또한 각 사건의 단계 중 상당 부분이 무대 밖에서 진행되고 비교적 객관적인 거리를 둔 인물의 사후 보고를 통하여 전달됨으로써 행위자들의 자기 정당화와 복잡한 행위(혹은 비행위)의 동기가 여과되어 객관성을 얻게 된다. 주인공의 독특한 면모 역시 타인의 보고를 통해 전달됨으로써 객관성과 논평자들과 주인공의 간극을 강조하는 효과를 동시에 얻는다. 관객이 볼 수 있도록 선택된 무대 위의 장면들은 이중 플롯의 사건을 하나의 흐름처럼 인식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흐름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전체 사건을 부분적으로 감추어 절제하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거리를 두고 그의 경험에 공감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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