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일상에 빠져 인생의 꿈을 잃어버린 베로니카, 남자친구도 끊이지 않고, 도서관이라는 안정된 직장도 있고, 가정이라 부를 만한 집도 있고, 다정한 친구와 가족들도 있는 그녀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슬로베니아의 위치에 대한 국제적 무관심을 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기로 마음먹는다. 류블라나의 빌레트 정신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그녀는 자살 시도로 인한 심장장애로 앞으로 1주일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빌레트에서 그녀는 비로소 활기를 찾는다. 정신병자에게 정상적인 행위란 있을 수 없으므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그녀는 자신을 화나게 하는 남자를 때리기도 하고 금욕적인 정신분열증 환자 앞에서 자위를 하기도 하고, 피아노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끝내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부모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힌 에두아르와 사랑에 빠진다. 에두아르라는 인물은 작가인 코엘료 자신과 소설 속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몇 가지 중 하나이다. 그는 세 번째 장에서야 등장해서 예술적 성향 때문에 정신병원에 들어오게 된 사연을 밝힌다. 이렇듯 직접 한 개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을 놀랄만큼 단순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전기충격 요법이나 인슐린 쇼크, 그리고 정신병 환자들에게 행해지는 다른 치료법들은 우리로 하여금 “제정신”이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점점 엇비슷해지고, 개성을 잃어가고, 고립되어가는 세계에서 이 소설은 20세기 말의 기원과 세계의 종교적 감상, 자기수양의 각도,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질식시키는 사회적 모럴만 아니라면 인생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일주일 남짓한 생의 시간 속에서,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죽음과 선택치 않은 죽음 사이에서 사랑을 알게 되고, 생을 빛으로 채우기 시작하는데.. 명성에 걸맞은 열정이 깃든 시적인 문체로 생의 드라마를 이끄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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