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의 구두는 유리 구두가 아니라 빨간색 가죽 구두였다?!
오랜 시간 춤을 추려면 유리로 만든 구두로는 안 된다. 그것은 아마 빨간색 가죽 구두였을 것이다. 게다가 계단에서 신발이 벗겨진 것은 발에 잘 맞지 않는 구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가정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애초부터 신데렐라의 발에 맞지 않던 구두로 어떻게 신데렐라를 찾겠는가? 구두는 주인을 찾아온 세상을 돌아다니게 된다.
여기, 신데렐라의 빨간 구두와 마주하는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여배우는 아버지에게서 빨간 구두를 선물 받지만, 발에 맞지 않아 친구에게 선물한다. 하지만 친구도 구두가 발에 맞지 않자 임산부 언니에게 전한다. 역시 발에 맞지 않는 구두는 이후 유리천장에 갇힌 시인,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 왕자와 결혼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녀, 궁합이 맞지 않지만 고통을 숨기는 애인, 남편과 이혼을 요구하는 당당한 여자, 강물에 물고기를 방생하듯 구두를 던진 수다쟁이, 모터보트를 타다 이 구두를 우연히 발견한 여고생, 하지만 그런 구두를 신을 기회조차 없던 말괄량이가 등장한다. 또, 사고로 한쪽 발이 잘린 꿈이 사라진 여자, 자동차로 친 구두를 우연히 얻게된 질주하는 여자, 표와 돈 대신에 구두를 건네받은 톨게이트 여자, 아나바다 가게에서 신발을 발견한 알뜰한 여자, 앞으로 보지 못하는 그녀의 딸, 짝사랑을 잊지 못하는 여자, 뒤바뀐 구두를 이리저리 찾아 헤매는 숨가뿐 여자, 이별편지를 작성하는 촛불 앞 여인, 마지막으로 난해한 시구절을 반복해 들려주는 잠 못 드는 여자까지. 그렇게 빨간 구두와 만난 여성들은 그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신데렐라>에서는 빨간 구두의 주인을 찾기 위한 여정을 스물한 가지 에피소드로 그린다. 배우, 시인, 학생, 엄마와 딸... 그리고 노파까지! 단 세 명의 배우들이 펼치는 무한한 캐릭터 변신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 <신데렐라>의 빨간 구두가 주인을 찾아 헤매듯 각각의 인물들의 욕망이 구두를 중심으로 서로 엇갈리고 교차된다. 누가 구두의 주인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찾는 그 무엇일 수도 있고, 살아가는 이유일 수도 있음을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세 명의 배우가 등장하지만 모노드라마 형식을 띄고 있다. 이에 걸맞은 미니멀한 무대와 빠른 무대 전환으로 여러 인물의 욕망을 표현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이 다시 등장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주인을 찾지 못해 다시 돌아온 빨간구두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되새긴다. "내가 오래 살아봐서 아는데, 맞지 않는 구두에 억지로 발을 맞추는 건 괴로워. 그런 인생은 불쌍해. 안 맞거든 신지 마. 그래야 발도 편하고 마음도 편해서... 인생이 행복하지.“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 속 구두 이야기다. 유리로 만든 구두를 신고 춤은 커녕 몇 발자국 걸을 수도 없는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사실 '빨간색 가죽 구두'였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강백 작가는 '알레고리의 대가'로 통한다. '파수꾼', '결혼', '북어대가리', '봄날' 등의 연극에서 상징화된 인물과 이야기로 현실을 풍자했다. 이번 작품도 각종 은유와 상징이 넘친다. 이 작가는 급히 궁전을 떠날 때 계단에서 구두가 벗겨졌다는 건, 그녀의 발에 구두가 꼭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설정한다. 주인을 찾기 위해 온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는 빨간 구두에 얽힌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무엇보다 여성 인물이 드물었던 이 작가의 극에 여성 캐릭터만 등장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최근 이강백 작가와의 서면인터뷰다
-'신데렐라'는 맨 처음에 어떻게 구상을 하신 건가요?
"'신데렐라'를 쓴 때는 '어둠상자'보다 먼저였지요. 그러니까 공연이 늦어진 것입니다. 이미 연극계에서는 '신데렐라' 희곡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 분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공연하려면 소위 임자가 나타나야 합니다. 마치 구두에 발이 맞는 신데렐라가 나타나야 하듯이요. 김화영 선생님이 그렇게 나타나 지원금 없이 제작비를 부담하고,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 강애심 씨도 동참해 '신데렐라'는 마침내 공연하게 됐습니다. '신데렐라'의 발상은 오직 여성 인물만이 등장하는 파격적인 희곡을 써보자는 것이었어요. 제 희곡들은 여성 인물이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여성을 싫어하거나 모른다는 오해도 받았습니다. '신데렐라'에는 스물다섯 명이 넘는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그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려면 신데렐라가 가장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데렐라는 정말 유리 구두를 신었을까 하는 의문점을 갖게 되셨다고요.
"유리 구두를 신고는 단 한 걸음도 걸을 수 없거든요. 왕자와 춤을 추려면 유리 구두 아닌 다른 구두를 신어야 합니다. 구두 중에는 빨간색 가죽 구두가 가장 예뻐요. 하지만 그런 발상만으로는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신데렐라'의 핵심은 구두가 발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데렐라는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왕자와 춤추느라 무척 고통스러웠고, 더 이상 참지 못해 자정이 되기 전에 궁전을 나갔으며, 궁전 계단을 내려오다가 구두가 벗겨지자 그냥 둔 채 떠났습니다."
-신데렐라의 구두가 '맞지 않는 구두'였다는 상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신데렐라 하면 금방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떠오릅니다. 그 말은 처음 누가 만들었을까요? 아마 왕자가 만들었을 것입니다. 왕자는 계단에 벗겨진 빨간 구두가 발에 맞는 사람이 신데렐라다 믿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여자에게 구두를 신겨보지요. 하지만 맞는 여자가 없습니다. 사실 신데렐라 구두는 신데렐라가 신어도 맞지 않아요. 그게 신데렐라구두의 모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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