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주인공 리어왕, 오델로, 맥베드, 햄릿. 이들은 저승의 대왕 앞에서 자신들의 비극적 운명을 심판 받는다. 왕이었으며 왕이 될법하였던 이들 네 인물의 삶과 죽음에 대해 알려진 해석과 평가와는 전혀 다른 상반된 해석과 평가가 드러난다. 대왕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이들의 죽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며 자신은 또 다른 권력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토하고 판결의 임무를 자신의 광대에게 넘긴다.
한 나라의 사회와 역사를 비극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이들. 그 영향으로 개인은 물론 가족사와 사회와 역사를 비극적 운명에 처하게 하였다. 이것은 불행한 과거이며 이 불행을 극복하는 길은 과거의 청산에 있다. 그러나 이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과거청산과 역사적 심판은 미루어지게 되고, 결국 이들의 심판은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과제로 남겨진다.
절망적인 운명, 비극적 인생, 파멸에 몸부림치는 네 명의 왕들! 그들은 고뇌했지만 악덕했고 살아 숨쉬었지만, 갈망하였다. 죽어서도, 저승에서도 그들은 심판의 무대에 올라앉아 세상을 향해, 관객을 향해 소리치며 새로운 판결을 기다린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가리켜 성격비극(性格悲劇)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인간의 대립과 갈등, 고뇌와 슬픔 등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이 작품 속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왕에게>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나오는 주인공들(리어왕, 맥베드, 햄릿, 오델로)의 사후세계를 그린 이색적인 작품이다. 한 나라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비극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장본인들의 운명을 심판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주인공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동양과 서양을 조우케한 극적 구조가 흥미를 돋운다. 서양의 왕들과 동양의 염라대왕의 만남이 바로 그것인데 이 이질적인 만남의 이야기를 작가는 교묘하게 풀어나간다. 또한 이 작품은 다섯 명(염라대왕 포함)의 왕들, 광대, 코러스들이 펼치는 광대놀이를 통해 제의와 놀이의 성격을 기술적으로 잘 조화시키며 교차시킨다.
저승의 대왕 앞에서 자신들의 비극적 운명을 심판받게 되는 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기존의 그것과 상반된 해석과 평가가 드러난다. 대왕은 이들의 결론지을 수 없는 죽음을 심판할 권한이 없으며 자신은 또 다른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토하고 판결의 임무를 광대에게 넘긴다. 광대는 국가와 사회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이들을 통해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와 만나게 되며 그 불행을 극복하는 길은 과거를 청산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과거청산은 미뤄지고 심판은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과제로 남겨진다.
삶과 죽음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우울증 환자 햄릿과 간신배의 말장난에 놀아나 마누라를 목 졸라 죽인 오델로, 궤변과 역설의 세계를 음모했던 맥베드, 그리고 실정한 독재자 리어왕은 자신들의 권력과 복수에 대한 집착을 합리화시키려 할 뿐 반성할 줄 모른다. 이 작품에서 갈망하고, 절망하고, 고뇌하고, 파멸하는, 인간의 본능과 욕심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이들은 왕 이전에 한 인간이다.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변명과 독선과 위선으로 일관하는 이들에 한숨짓는 염라대왕의 모습에서 작가의 의도가 범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염라대왕은 자신이 그들을 심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광대에게 맡기고 떠나버린다. 염라대왕 역시 별들의 제국의 또 다른 권력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설정, 자신의 무능에 고뇌하고 슬퍼하는 등의 인간적인 모습은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아쉬운 점은 네 명의 왕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비해 염라대왕의 인물 설정이 미완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염라대왕에 대한 정체성과 개연성이 다른 왕들에 비해 다소 모호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극 <왕에게>에 진정한 왕은 없다. 위험하고 가련한 네 명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우리의 모습이자 우리 삶의 한 단면이다. 이 시대에 ‘왕’다운 ‘왕’을 기대하는 것은 몽상가의 몽환 속에 존재하는 허상인 것일까?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주인공들을 한곳에 모으는 신선한 발상과 동서양의 만남을 통한 표현형식의 새로움,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소재의 여운 등은 이 작품이 갖는 매력이다. 그러나 그 매력이 독이 되기도 한다. 왕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는 모티브에 치중하다 보니 새로운 사건과 갈등이 상대적으로 미약해 흥미가 반감되고, 무대와 의상, 배경음악 등은 동양적인 데 반해 왕들의 생각과 행동은 서구적인 스타일이라 때론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네 명의 왕들이 염라대왕이 아닌 제우스 신 앞에 불려 나갔다면 좀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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