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인파가 가득한 경성(서울)역에 전민, 전혜숙 남매가 도착한다,
부모님의 반대에 집을 박차고 나온 두 남매. 오빠 전민은 활동사진의 변사가 되고 싶어 했고, 동생 혜숙은 노래를 하고 싶어한다. 추천서를 품고 서울의 동방극단에 찾아왔지만, 추천서를 잃어버린 오빠 덕에 둘은 무작정 극단에 머물기 시작한다. 극단은 기생출신의 이월과 연출겸 배우 정구의 다툼이 잦은 편인데, 유쾌한 다른 단원들인 박출, 한철과 함께 이들은 점점 극단에 어울리기 시작하고... 혼란스러운 일제 강점기 상황과 맞게, 노천극장은 때로는 대한독립을 외치는 항일운동가들이 찾기도 하고, 돈을 달라는 여관주인, 연극을 전혀 모르는 덕에 상황을 오해하는 정구의 아내 등이 찾아오며 왁자지껄한 상황이 이어진다. 그렇지만 여전히 즐거움을 선사하는 극단의 사람들. 동방극단의 3주년. ‘인형의 집’이 발표되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데, ‘신여성’을 둘러싼 남녀 간의 대화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변사로 데뷔한 전민의 활동사진 공연, ‘홍도야 울지마라’가 성황리에 마무리된다. 그렇지만 이런 즐거운 분위기도 잠시. 총독부 순사와 총독부 산하에서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조선연극문화 협회장’이 찾아오더니 대대적인 일제의 지시를 내리기 시작한다.
모든 작품은 일본어로만 할 것이며,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에서는 무조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라는 그들. 그것을 거부하면 징용당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선전포고를 한다.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이들도 있지만, 단원 한철과 박출은 ‘유랑극단’을 제안하며 연극 생활을 이어 가고자 한다. 과연 동방극단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행복할 수 없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제국의 강제점령기, 그 마지막 문화 말살정책, 거기에 6.25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그렇지만 극 자체는 상당히 유쾌하게 흘러간다. 슬픈 시대를 슬프지만은 않게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랄까? 또 이 작품은 굉장히 많은 당시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사의 찬미, 홍도 등등! 이름만 알았던, 또는 이름도 몰랐던 작품들을 연극 여우만담을 통해 처음 만나보는 재미도 있다. 그렇지만, 너무 넓은 시대를 다루며 많은 인물이 등장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우 만담>. 아니 정확하게는 <여배우 만담>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당대 여배우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했다고 한다. 문제는 연극에서 여배우의 삶을 조명하는 것으로 느껴지지도 않으며 대체 왜 여배우의 삶을 조명하려고 하는지 즉, 여배우의 삶을 조명하는 것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 가장 명확한 것은 시대 배경이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전쟁 직후 즉,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즈음이라는 형식 뿐이다. 무대를 채우는 의상, 소품, 음악은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의 한국을 잘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여우만담>은 일제 강점기의 동방극단이라는 극단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편집없이 그냥 찍고 있는 카메라 같은 시선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편집 없이 그냥 찍고 있는 카메라라고 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 즉, 주제가 있다. 하지만 <여우 만담>은 그저 찍고 있는 카메라 같은 시선으로 일제 강점기의 어느 한 극단을 재현만 할 뿐 재현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관객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지루한 공연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데에는 주제와 인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과 주제와 관련해서 장면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진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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